은행서 증권으로 '머니무브' 이어질까 관심
증권사는 막판 신규 가입자 확보에 주력
은행은 인력 확보·상품 라인업 확대로 대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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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정부가 추진하는 '퇴직연금 현물이전' 제도가 오는 10월부터 시행된다. 업계에서는 제도 시행 후 퇴직연금 시장에서 '머니무브'가 이어질거란 관측을 내놓는다. 이에 은행과 증권사 등 퇴직연금 사업자들은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대응에 한창인 모양새다.
24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국내 45개 퇴직연금 사업자는 오는 10월을 목표로 퇴직연금 현물이전 도입을 위한 인프라 구축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최근 금융당국과 고용노동부 등에서 각 사업자에 오는 10월까지 제도 도입을 위한 제반 작업을 마무리하라는 주문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 운용사 퇴직연금 담당자는 "10월 중 퇴직연금 현물이전 제도가 시행될 수 있도록 인프라 작업을 마치라는 당국의 주문이 있었다"며 "기한이 늦춰질 가능성을 배제할 순 없지만, 사업자간 합의도 마무리된 만큼 일정대로 제도가 시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퇴직연금 현물이전은 한 금융사의 퇴직연금 계좌를 다른 금융사로 옮길 때, 상품 그대로 이전할 수 있게 하는 제도다. 현물이전이 허용되면 사업자 역량에 따라 대규모 자금이전이 일어날 것이란 관측이 많다.
현재 퇴직연금 가입자들은 다른 금융사로 계좌를 옮길 때 운용 중인 투자 상품을 전량 매도해 현금화한 후 옮겨야 한다. 금융사마다 취급하는 퇴직연금 투자상품이 다른 탓이다.
손실 여부와 관계없이 상품을 매도하고 현금화하는 과정이 번거롭다보니 소비자의 선택권을 제약한다는 문제가 제기됐고, 이에 당국은 지난해 2월 TF팀을 구성해 현물이전 제도 도입 논의를 시작했다. 다만 그 과정에서 퇴직연금 시장의 최대 사업자인 은행권의 반발이 컸던 것으로 전해진다.
금감원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국내 금융권의 확정기여형(DC)·개인형(IRP) 퇴직연금 적립금 규모는 159조5241억원으로 집계됐는데, 이 중 은행이 64.4%인 102조8023억원을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2위 사업자인 증권사(39조1835억원)보다 2배 이상 높은 시장 점유율이다.
은행권이 제도 도입에 반대한 이유는 수익률에 따른 '머니무브' 우려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지난해 3월부터 올해 3월까지 은행업권의 퇴직연금 운용 수익률은 4.7%를 기록한 반면, 증권업권은 6.9%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 연금업계 관계자는 "은행은 보수적 기조 탓에 퇴직연금 상품 심의가 증권사보다 철저해 상품 라인업이 상대적으로 적을 수밖에 없다"며 "증권사가 상품 매매가 용이하고 ETF 등 투자 라인업도 많아 현물이전이 도입되면 증권사로의 자금 이동이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제도 도입을 5개월여 앞두고 증권사는 신규 가입자 확보에 열을 올리는 모습이다. 삼성증권과 한국투자증권, NH투자증권 등은 현재 신규 가입자들에게 상품권과 커피쿠폰 등을 지급하는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고, 증권업계 1위 사업자인 미래에셋증권은 높은 운용 수익률(8.1%)을 앞세워 홍보에 애쓰고 있다.
은행권도 자금 이탈을 방지하기 위해 내부 연금 인력을 보강하고, ETF 상품 라인업을 확대하는 등 대비책 마련에 분주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사전지정운용제도(디폴트옵션) 도입을 앞두고 한 차례 인력 보강에 나섰던 은행들은, 최근까지 물밑에서 연금 인력 확보에 매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증권사 퇴직연금 관계자는 "퇴직연금 시장에서 운용 수익률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상대적으로 운용 경험이 풍부한 증권사의 퇴직연금 담당자의 몸값이 높아졌다"며 "업계 1위인 미래에셋증권 출신의 경우 은행권 오퍼를 안 받아 본 사람이 없을 정도"라고 말했다.
다만 제도가 도입되더라도 단기간 내 자금 이동은 크지 않을 거란 목소리도 나온다. 확정기여형(DC형)은 회사와 금융사간 계약 관계에 따른 것이기 때문에 금융사를 쉽게 교체하기 쉽지 않을 것이란 설명이다.
앞선 관계자는 "금융사를 쉽게 교체할 수 있다고 해서 DC에선 자금 이동이 쉽지 않을 것"이라며 "계약에서 자유로운 IRP에선 그나마 자금 이동이 활발히 일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