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채권자 역할 이해하는데…"하필 이 시기에"
조달 금리에서 증권사는 물론 시중銀도 경쟁 불가
5년 전처럼?…일회성 그쳐도 텀쇼핑 활용될까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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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은행이 에코비트 매각에서 인수금융을 담당하는 것을 두고 민간 금융사들이 부담을 표하고 있다. 태영그룹 기업구조개선작업(워크아웃)이 걸린 문제인 만큼 주채권자가 지원에 나선 것이지만 주선기관 일감이 넉넉지 않은 상황이다. 전방 인수합병(M&A) 시장이 부진하고 금리 인하 전망이 밀리는 때 다른 거래에 영향을 미칠까 우려가 나온다.
오는 31일 태영그룹 종합 환경기업 에코비트 매각을 위한 예비입찰이 진행될 예정이다. 매각 대상은 TY홀딩스와 글로벌 사모펀드(PEF) KKR이 보유한 에코비트 지분 100%다. 현재 국내외 대형 PEF 운용사들이 잠재 후보로 거론 중이다. 매각 측은 연내 매각 작업을 마무리하길 희망하고 있다.
관건은 가격인데, 산업은행이 시중금리보다 낮은 수준에서 최대 1조5000억원 규모 매도자금융(스테이플 파이낸싱) 지원을 약속했다. 사실상 인수대금 절반 수준의 대출이 이미 마련된 셈이다. 태영그룹은 계열 연대보증, 추가 자금 지원 및 채권단 지원금 상환 등을 감안해 3조원대 몸값을 희망하고 있다. 시장 눈높이가 3조원에 미치지 못하니 산업은행이 저리 대출을 지원해 거래 가시성을 높인 것으로 풀이된다.
투자은행(IB)업계 한 관계자는 "인수 후보군 사이 눈높이가 매각 측 희망가에 못 미치는 상황이었는데 산업은행이 대출 금리로 유인을 제공하는 구조"라며 "인수금융 금리를 50~100bp(1bp=0.01%포인트) 이상 낮출 수 있다면 아무래도 구조를 짜기 수월해진다"라고 설명했다.
민간 금융사로선 부담이 적지 않다. 산업은행이 주채권자로서 워크아웃을 성공적으로 마무리 짓기 위해 나선 점은 이해하지만 국책은행과 경쟁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현재 산업은행과 같은 공공부문에서 발행하는 특수채 가산금리(스프레드)는 AAA 등급 은행채나 회사채보다 10~20bp 아래 형성돼 있다. 국가 수준 신용도가 인정되고 있기 때문이다. 증권사는 물론 시중은행 인수금융 부서에서도 산업은행과 직접적으로 금리 경쟁을 벌이기 힘들다.
M&A 시장이 부진한 데다 하반기 금리 인하 전망이 틀어진 상황도 불안을 키우고 있다. 인수금융 주선사들은 전방에 성사되는 거래가 없으니 벌써부터 하반기 걱정이 한창이다. 금리 인하 시점이 내년으로 밀리면서 그나마 늘어나던 차환(리파이낸싱) 수요도 줄어들고 있다.
5년 전을 떠올리는 목소리도 나온다. 산업은행이 '은행은 돈을 벌어야 한다'는 주문 아래 자본시장에서 힘을 내기 시작했던 때다. 당시 산업은행 부서마다 연초 할당된 목표를 채우려 재무자문·회사채 발행 주관·인수금융 주선에서 공격적인 영업에 나섰다. 국책은행이 조달금리를 앞세우면 민간 금융사의 커버리지 영업은 빛을 발하기 어렵다는 점이 이내 드러났다.
은행권 한 관계자는 "일감 기근이 이어지는 중에 에코비트와 같은 조 단위 거래를 산업은행이 단독으로 주선하는 게 부담일 수밖에 없다"라며 "실무자들 사이에서 '산업은행이 또?' 하는 목소리가 나오는데 지금으로선 이번 스테이플 파이낸싱이 일회성 지원에 그치길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산업은행의 에코비트 인수금융 지원이 다른 거래에 영향을 미칠까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산업은행은 조달 금리 외 운용한도(북) 면에서도 언제든 민간 금융사를 압도할 수 있다. 인수금융 시장에서 산업은행 창구가 조명되는 것만으로도 우호적 조건을 끌어내기 위한 저울질(텀 쇼핑)이 쉬워질 수 있다는 얘기다.
다른 은행권 한 관계자는 "인수 후보들도 산업은행이 제시하는 싼 금리에 혹했다가 재무약정(커버넌트)이나 추후 차환 과정에서 곤욕을 치를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긴 한다"라며 "그러나 산업은행 사례를 들어 텀 쇼핑에 나선다거나 하는 곳이 늘어날 수 있어서 예의주시할 수밖에 없다"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