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와 이상기류 감지
대통령실과도 엇박자 내
업계 전반 혼란 가중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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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스(PF)부터 공매도, 대손충당금까지. 금융감독원과 금융위원회, 대통령실 사이 ‘불협화음’이 감지되면서 금융업계 전반에 걸쳐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그간 이복현 금감원장의 강력한 유지력을 바탕으로 제재 및 검사가 진행됐는데 상황이 달라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27일 이 원장은 한 공식석상에서 공매도 재개 시사와 관련한 논란을 재차 언급했다. 이 원장은 “공매도 재개를 위한 전산시스템 구축은 내년 1분기에 가능할 것”이라며 “해당 방침은 변함이 없고, 개인적인 욕심으로 6월 중 일부 재개하는 것이 좋겠다는 차원에서 말한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16일 이 원장은 미국 뉴욕에서 진행된 투자설명회(IR)에서 6월 중 공매도 일부를 재개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뒤이어 대통령실에서 “6월 공매도 재개는 이 원장의 개인적인 희망일 뿐”이라고 일축하며 논란이 일었다. 한술 더 떠 정은보 한국거래소 이사장은 "공매도 시스템 구축에 10개월은 걸릴 것"이라고 발언했다. 금감원은 곧바로 ‘정해진 바 없다’는 보도자료를 냈다.
이 원장의 해명에도 대통령실과 금감원의 ‘엇박자’를 두고 정책 혼선을 초래한다는 시각은 남아있다. 검찰 출신인 이 원장은 취임 후 윤석열 대통령과 돈독한 관계를 바탕으로 각종 굵직한 금융 현안을 이끌어왔다. 이 같은 기류에 미묘한 변화가 생겼다는 의견이 나온다.
대통령실과 금감원의 기류 변화가 감지된 것은 최근의 일은 아니다. ‘공매도 논란’ 이전부터 금감원장과 윤석열 대통령 사이가 틀어진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적지 않았다. 한창 이 원장의 ‘내각 합류설’을 두고 여러 말이 오갈 무렵, 이 원장이 맡을 자리를 두고 윤 대통령과 원만한 협의를 보지 못한 것이 아니냐는 말들이 나왔다. 김주현 전 법무부차관이 법률수석으로 임명되고, 이 원장은 금감원장에 남겠다는 의지를 밝히면서 해당 논란에 설득력이 붙었다.
금감원과 금융위의 알력다툼도 수면 위로 오르고 있다. 지난 4월 금융위는 금감원이 한 자산운용사의 자본시장법 위반 의혹을 처리하면서 금융위를 거치지 않고 바로 검찰에 통보했다는 점을 문제 삼은 바 있다. 지난해 말 불법 자전거래를 한 복수의 증권사 랩·신탁 운용역들의 혐의 사실을 두고도 금융위를 거치지 않았다는 점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이 원장의 공식 임기가 약 1년 남은 가운데 ‘레임덕’이 시작됐다는 의견도 조심스레 나온다. 한동안 이 원장이 임기를 채울지 여부를 두고 설왕설래하며 현안과 관련해 금감원 내부의 동력에 힘이 빠졌다는 평가도 적지 않다.
그간 금감원이 진행해온 검사나 제재들은 대부분 굵직한 현안들인 만큼 금융업계 전반에 미칠 영향은 작지 않다. 홍콩 ELS(주식연계증권)이나 불법 공매도 등은 어느정도 일단락됐다 하더라도, 농협금융 검사나 MG새마을금고 관리·감독 등 앞으로 남은 과제들은 산적해있다. 검사가 흐지부지 된다면 투입 비용 대비 효과가 적은 상황이 만들어질 수 있다.
업계선 이 원장의 레임덕이 예상보다 빨리, 과거보다 심하게 올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그간 금감원의 업무 방식은 그간의 관례와는 결이 달랐다. 빠른 검사 속도와 투명한 정보 공개 등을 앞세워 금융업권 쇄신을 꾀했고, 그 결실만큼 실무적인 부작용도 적지 않았던 탓이다. 업계 불만이 고조된 상황에서 금감원이 진행 중인 검사나 프로젝트들이 완주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일례로 글로벌 IB(투자은행)의 불법 공매도 실태조사나 작년 은행권 불법 외화송금 사태 등은 ‘용두사미’로 끝났다는 평도 나왔다. 금감원의 대대적인 조사가 발표됐지만, 실상은 대표이사(CEO)나 임원 징계 없이 지나간 바 있다. 두산에너빌리티나 카카오모빌리티 등 분식회계 이슈도 마찬가지다. 두산에너빌리티는 금융위로부터 금감원의 요구인 ‘고의’보다 한 단계 낮춘 ‘중과실’로 징계수위가 낮아졌다. 카카오모빌리티 역시 비슷한 과정을 거칠 것으로 업계는 내다본다.
한 증권업계 고위 임원은 “금감원의 기조가 이 원장 임기 들어 급격하고 빠르게 바뀌면서 업계 혼란이 가중되는 측면이 없지 않다”라며 “일례로 최근 금감원이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도 마찬가지다. (갑작스런 규제 변화로) 대손충당금을 추가로 쌓아야 하고, 기한이익상실(EOD)을 두고서도 과거와 기조가 변해 업무에 애로사항이 많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