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소영 관장의 재산 형성 기여도 인정
지분율 낮은 최태원 회장 지배력 흔들
큰 돈 필요한데 활용 카드는 마땅찮아
해외 헤지펀드 참전시 더 골치 아파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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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원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세기의 이혼 소송’ 2심에서 노 관장이 웃었다. 법원이 SK㈜ 주식 포함 1조원을 훌쩍 넘는 재산을 분할하라고 판결함에 따라 SK그룹의 지배구조에도 영향이 불가피해졌다.
SK㈜ 지분율이 높지 않은 최태원 회장이 지배력을 계속 유지하려면 상당한 자금을 조달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재판을 계기로 해외 헤지펀드들이 움직임이 본격화할지도 관심사다.
30일 서울고등법원 가사2부는 최태원 회장과 노소영 관장의 이혼 소송 항소심에서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재산분할로 1조3808억원, 위자료로 20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재산 추산액 약 4조원을 최 회장과 노 관장이 각각 65%, 35%로 나눠야 한다고 봤다.
최태원 회장과 노소영 관장은 1998년 결혼했고, 2015년 이후 갈등을 빚었다. 2017년 이혼 조정을 신청했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하자 2018년 최 회장이 이혼 소송을 냈다. 이듬해 말 노 관장도 반소를 제기하며 핵심 쟁점은 '재산분할' 규모가 됐다.
노소영 관장이 반소를 제기할 때만 해도 '오판'이란 시선이 없지 않았다. 대기업 총수와 법률 싸움을 벌여서는 승산이 없으니, 자신과 자녀의 기대 상속분을 앞세워 결혼 상태를 유지하는 편이 나았다는 것이다.
실제 대형 법무법인은 노 관장 변호를 모두 고사했고, 1심 결과(재산분할 665억원, 위자료 1억원) 역시 노 관장의 판정패였다. 가사 소송에선 이례적으로 높게 책정된 위자료가 더 주목을 받았을 정도다. SK㈜ 주식은 고 최종현 전 회장에게 물려받은 특유재산이라 분할 대상이 아니라는 최태원 회장 측 주장이 받아들여졌다.
그런 상황에서 진행된 2심이다 보니 노소영 관장이 원하는 바를 얻기 쉽지 않을 것이란 예상이 많았다. 1심 판결이 노소영 관장에 박했다고 보는 쪽 역시 재산분할 비율이 10%만 돼도 대성공이란 시선이 있었는데, 2심 결과는 양쪽의 예상을 훌쩍 뛰어넘었다. 재산 분할 규모는 지금까지 알려진 이혼소송 중 역대 최대다.
노소영 관장 입장에선 SK㈜ 주식이 분할 대상에 포함된 것이 최고의 성과다. 재판부는 최종현 전 회장이 노소영 관장의 부친인 노태우 전 대통령과 관계를 활용해 경영활동을 했으며, 노 관장이 SK그룹 가치 상승에 기여했다고 봤다. 노 관장은 항소심에서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 SK그룹에 유입됐다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최태원 회장은 대법원의 판단을 구하려 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일반 민형사 소송과 달리 가사 소송에서는 2심의 판단을 존중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최태원 회장의 재산 분할 부담이 완전히 해소되기는 어려울 것이란 예상도 있다.
윤지상 법무법인 존재 대표변호사는 "SK㈜ 주식도 분할 대상에 포함돼야 한다고 보기는 했지만 예상을 뛰어넘는 판결이 나왔다"며 "대법원은 가사 소송의 경우 2심 판결에 거의 손을 대지 않는데 이대로 확정되면 대기업 이혼 소송의 새로운 지평이 열릴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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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원 회장은 3월말 기준 17.73%의 SK㈜ 지분을 갖고 있다. 기존에도 총수로서 보유 지분이 높지 않다는 평가가 많았는데, 이 중 3분의 1가량을 노소영 관장(지분율 0.01%)에 넘기게 된다면 지주사에 대한 지배력이 상당 부분 약화할 수밖에 없다.
대법원 판단이 달라지지 않는다 가정하고 최태원 회장이 현재 수준으로 지배력을 유지하려면 지분 대신 '돈으로 합의할'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마련해야 할 금액이 작지 않다. 최태원 회장의 주요 재산인 SK㈜ 지분은 판결 전날 종가 기준으론 1조8775억원 수준이었다. 최태원 회장 입장에선 지분을 넘기기도 팔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혼 소송 결과가 나오고 나서 SK㈜ 주가가 급등해 전일보다 9% 이상 상승마감했다. 판결대로 SK㈜ 주식 일부가 노소영 관장에 넘어가고, 노 관장이 경영에 본격적으로 관여하기 시작하면 부부간 주식 매집 경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판단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이혼 소송이 가족 내 분쟁을 넘어 외부 세력이 끼어들 빌미를 주지 않을까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경영권 분쟁 가능성이 있는 국내 대기업은 해외 헤지펀드들이 가장 군침을 흘릴 만한 대상이다. SK그룹은 과거에도 타이거펀드, 소버린 등 해외 헤지펀드의 공격을 받은 바 있다.
해외 헤지펀드가 2심 판결로 '명분이 선' 노소영 관장 쪽에 붙기라도 하면 최태원 회장의 고심은 더 깊어질 수 있다. 노소영 관장-헤지펀드 대 최태원 회장-국내 대형 사모펀드(PEF)간 세대결 양상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는 이른 예상도 나오고 있다. 최태원 회장이 노 관장을 지지한 자녀들의 마음을 얻어 갈등을 봉합하려 할지도 관심사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예상하지 못했던 판결이지만 어쨌든 최태원 회장이 돈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 됐다"며 "이런 상황에 숟가락을 얹으려는 헤지펀드가 나타나면 SK그룹이 국내 PEF와 힘을 모아 대항하는 양상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