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피탈 PF 정상화펀드, 반년 만에 1호 소진
출자금 확대해 2호 이어 3호도 조성 계획
PF 사업장 '돌려막기' 의혹 지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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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국내 주요 캐피탈사들이 조성한 민간 부동산PF 정상화펀드가 두 번째 출범을 앞두고 있다. 캐피탈사들은 지난해 9월 마련한 1600억원 규모의 1호 펀드를 빠르게 소진했다. 2000억원으로 출자금을 확대한 2호 펀드를 조성하면서, 동시에 3호 펀딩까지 계획 중이다. 다음 3호 펀드도 수천억원대 출자금이 언급된다.
같은 시기 출범한 캠코 펀드는 3개 사업장 출자에 그치면서 겨우 두자릿대의 소진율을 기록하고 있다. 반면 여신업계 정상화 펀드는 벌써 2호 자금이 사용될 8개 사업장도 선정이 끝난 것으로 알려졌다.
투자업계에선 캐피탈 업계의 빠른 펀드 소진율을 두고 의구심이 높아지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PF 정상화에 속도를 내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돌려막기’에 가깝다는 지적이다.
캐피탈사들이 조성한 펀드는 운용사인 한국투자리얼에셋운용이 각 회사가 보유하고 있는 PF 대출채권이나 개발 부지를 사들이는 형식으로 사용된다. 캐피탈사들은 정상화 펀드에 일부 사업장을 떠넘겨 장부(Book)에서 털어낼 수 있다. 금융당국이 기한이익상실(EOD)이 발생한 부실 사업장의 경우 원금만큼 충당금을 쌓으라고 지시했기 때문에, 위험 사업장을 장부에서 떼어 내면 그만큼 충당금 부담에서 자유로워 진다.
부동산업계에선 한투리얼에셋이 인수한 사업장을 향후 각 캐피탈사들이 재매입 해줄 것이라는 데 뜻을 모은다. 통상 3~4년 주기로 부동산 시장이 불황과 회복을 오가기 때문에, 부동산 시장 경기가 회복되면 매도자(캐피탈사)가 다시 사주기로 암묵적 약속을 했다는 것이다.
2호 펀드의 8개 대상 사업장도 각 회사의 이해관계를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각 회사가 돌아가면서 '잠깐 맡길 사업장'을 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번 2호 펀드 출자에 나선 캐피탈사는 신한ㆍKBㆍ우리ㆍ하나ㆍBNKㆍDGBㆍIBKㆍ메리츠ㆍ한국투자캐피탈 등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캐피탈사들이 PF 정상화펀드를 일종의 '파킹통장' 개념으로 생각하고 있다"며 "한투리얼에셋에 사업장을 넘기고 몇년 후 건설사들이 분양용 토지를 찾으면 꺼내겠다는 구상"이라고 설명했다.
한투리얼에셋이 캠코 대비 높은 금액으로 부실 사업장을 인수 중인 것도 의구심을 가중시키고 있다. 캠코가 자금을 집행한 사업장은 중구 삼부빌딩, 마포구 주택개발사업 등으로 모두 서울에 위치하고 있다.
캠코가 인수할 당시 각 사업장 토지 할인율은 40% 이상으로 알려졌다. 그나마 우량한 수도권 사업장은 지가(地價)가 50%에 달하는데, 이를 절반 가까이 할인해 인수하는 셈이다.
이에 비해 캐피탈 정상화 펀드는 지방, 그것도 수익성이 낮은 민간주택 사업장도 검토하고 있고, 인수시 할인율도 높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지방의 경우 PF 사업 비용에서 토지가는 20%도 채 되지 않는다. 인기가 없는 땅을 '제값'에 가깝게 산다는 의미다. '옥석 가리기'라는 정부의 PF 구조조정 방침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지방 PF 사업장은 토지가격을 0원으로 헤어컷(채무 재조정)해도 안 팔리는 분위기"라며 "공사비가 계속 오르고 있고 조달 비용도 만만치 않은데, 굳이 가져가겠다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결국 캐피탈사들은 지방 부실 사업장에 대해 수익성 판단을 내리지 않고, 관망세를 유지하기로 선택한 것처럼 해석된다. 민간에서 조성한 자금을 파킹통장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해서 곧바로 부정적인 의도가 있었다고 단정 지을 순 없다. 다만 리스크 선제 관리 차원에서 진행된 PF 정상화 펀드가 토지 가격 거품을 꺼뜨리지 않는 한, 부동산 경기 연착륙이라는 공동 목표를 이루긴 어렵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