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銀, '무조건 담자'에서 '질적 관리' 기조로
예산 소진ㆍ부실 확대에 신한ㆍ우리銀도 소강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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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중은행들의 기업대출 자산 확대 경쟁이 조기 종결 국면에 접어들었다. 은행들이 저마다 여신 금리를 인하하며 치킨게임 양상을 벌여왔지만 부실화 부담도 그만큼 높아진 탓이다. 선두주자였던 하나은행을 시작으로 올해 경쟁을 불사했던 신한은행, 우리은행 도 자산 성장률에서 수익성 관리로 무게중심을 옮기는 분위기다.
31일 은행권에 따르면 하나은행은 이달부터 기업대출, 인수금융 등 IB(투자은행)부문 투자를 줄이고 자산 성장 부문에서 숨고르기에 들어섰다. 연간 배정 받는 투자금융 관련 북(Book)이 일정 비율 이상 소진되면서, 내부에서 자산 확보 속도를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진 까닭이다. 올해 하반기로 예상됐던 금리 인하 전망이 밀린 것도 영향을 줬다.
하나은행은 1년 만에 원화 대출금 성장률을 8% 이상 끌어올렸다. 이 기간 가계대출이 정체였음을 고려하면 대부분 기업대출로 이끌어낸 성장으로 풀이된다. 하나은행의 올해 1분기 말 대기업, 중소기업 대출은 지난해 대비 각각 24.9%, 12.2% 증가했다. 같은 기간 그룹 총자산은 757조원에서 783조원으로 불어났다.
하나은행이 하반기를 앞두고 '질적 관리'로 무게중심을 옮기자, 마찬가지로 기업자산 드라이브를 걸었던 신한은행과 우리은행에서도 달라진 분위기가 감지된다. 최근 시중은행들 내부에서 기업대출 연체율 증가 등 자산 건전성 문제가 지속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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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시중은행들은 가계대출 이자 수익이 줄어들자 이를 만회하기 위해 기업대출 자산을 늘려왔다. 하나은행이 지난해 초부터 가장 적극적으로 나섰고, 뒤를 이어 신한은행과 우리은행도 자산 확대 경쟁에 가세했다.
우량기업의 자산은 한정됐기 때문에 시중은행간 금리 인하 등 출혈 경쟁 양상이 벌어졌다. 이에 경쟁에서 승리하고도 막상 은행에 떨어지는 마진이 높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시중은행 인수금융 관계자는 "연초부터 경쟁이 치열했다. 하반기가 되면 좋은 딜(deal)이 없다는 인식이 있어 1분기엔 자산의 질을 따지지 않고 영업했다"며 "그렇게 진행해보니 실익이 높지 않았고 연체율에 대한 우려도 커진 상황"이라고 말했다.
올해 1분기 기준 국내은행의 원화대출 연체율은 0.43%로, 지난해 동기 대비 0.10%p 상승했다. 이마저도 상각처리와 매각을 통해 줄인 것인 수치다. 실제로 은행들은 올해 1분기 약 4조2000억원 수준의 연체 채권을 정리했다. 지난해 처리한 연체 채권이 2조4000억원 규모임을 감안하면, 1년 만에 연체채권 상ㆍ매각률이 75%나 늘어난 셈이다.
올들어 기업대출 부문에 집중했던 신한은행은 대출 여력이 상당부분 소진된 것으로 분석된다. 1분기에만 SK온과 CJ올리브영, 신세계건설 등 기업자산을 큰 폭으로 늘리면서 배정된 예산을 대량 소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은행도 여유가 많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우리금융지주에서 증권사 및 보험사 인수합병(M&A)을 검토하면서, 내부에 현금을 쌓아둬야 한다는 분위기가 형성된 까닭이다.
이제부터는 상대적으로 과열 경쟁에서 벗어나있던 KB국민은행이 기업자산 확보에 나설 것이란 전망도 제기된다.
한 시중은행 투자금융부 관계자는 "상반기엔 지주 차원에서 기업 자산 확대를 강행했지만, 예산이 소진되고 부실이 쌓이자, 이제 옥석가리기에 나서자는 인식을 공유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