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지배력부터 SK실트론 활용 가능성까지 변수 산적
최재원 수석부회장 2차전지 사업에서 다시 중책 맡아
사장단이 머리 맞대고 논의하기엔 사안의 중요성 커
오너일가 의중 중요하지만 부회장단 등 자문역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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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그룹 내부가 중요한 회의를 앞두고 뒤숭숭하다. 사업 조정을 코앞에 두고 이혼 소송으로 가족 문제가 부상하며 경영전략회의 초점을 오롯이 사업에만 맞추기 어려운 분위기가 됐다. 그룹 지배구조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사장들이 의견을 내는 것은 한계가 있고 결국 오너 일가의 생각도 중요하다. 그러나 부회장단이 대거 물러난 상황에서 오너 일가에 혜안을 줄 인사가 마땅치 않다는 평가도 나온다.
현재 SK그룹은 이달 말 예정된 경영전략회의 준비가 한창이다. 지난달 최창원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의 사업 축소 주문에 따라 매주 각 계열사 경영진이 모여 구체적인 실행 방안을 짜왔던 것으로 전해진다. 컨설팅사도 그룹 차원의 방향성 수립에 매달리고 있었다. 단순히 계열사의 의견을 개진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 상황과 원매자까지 살핀 후 '실효성 있는' 사업 조정을 방안을 제시하는 자리다.
최태원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 소송 2심 결과가 찬물을 끼얹은 모양새다. 재판부는 비자금과 정경유착을 통한 재산 형성을 지적하며 최 회장이 노 관장에 약 1조4000억원에 달하는 재산을 분할하라 판시했다. 그룹 정통성과 지배구조 정점에 있는 지주사 지분이 이혼 소송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꼴이다.
SK그룹 입장에선 상고심에서 반전을 이끌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최태원 회장의 재산 대부분이 주식인 점을 감안하면 최악의 경우 SK㈜ 지분 혹은 SK실트론 지분을 활용해야 할 가능성도 있다. SK실트론은 최태원 회장의 핵심 자산 중 하나인데 이혼 소송의 여파는 과거 최 회장의 SK실트론 사익편취 논란까지 끄집어내는 양상이다.
자연히 6월 회의를 둘러싼 안팎 논점은 사업 조정에서 가족 문제로 옮겨가고 있다. 당초 핵심 화두였던 사업조정 외에 SK㈜ 지분을 포함한 일가 지배구조 문제가 다뤄지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
투자 업계 한 관계자는 "원래 핵심은 2차전지 사업 구조조정이고 최소한 어디에 얼마 정도로 매각할 수 있다 정도까지 손에 잡히는 그림을 마련하고 있었다"라며 "그러나 이혼 소송이 지배구조 문제로 부상하면서 당초 논의하던 조정 계획에 영향이 미칠 수밖에 없게 됐다"라고 설명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최재원 수석부회장은 SK온에서 SK이노베이션으로 자리를 옮겼다. SK이노베이션은 SK온 외 2차전지 소재 사업장을 여럿 보유한 그룹 최대 중간지주회사고, 2차전지 사업은 최 수석부회장의 핵심 성과로 꼽혀 왔다. 2차전지 사업에 힘을 싣는 SK그룹의 신호는 더 명확해지고 있다. 이를 두고 이혼 소송에 일가 차원 대응이 시작된 것 아니냐는 시선도 있다.
작년 연말 '서든데스 발언' 이후 그룹의 주축은 최창원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이달 그룹 회의도 최 의장 수펙스가 계열 사장단 보고를 받아보는 형식이 될 가능성이 높다.
다만 지주사 지분 포함, 그룹 지배구조의 미래를 사장단에서 논하기엔 중량감이 떨어진다. 체질 개선을 최우선 화두로 제시하던 SK그룹의 경영 자원이 오너의 사적 문제에 활용되는 것처럼 비칠 가능성도 따져봐야 한다.
재계 한 관계자는 "이미 일부 계열 경영진은 이사회를 앞세워 수펙스의 요청에 대응하기 위한 논리까지 고민하고 있는 상황이기도 하다"라며 "반대로 철저하게 사업 논리만 내세우려 해도 오너일가 지배력 불안이 대두된 때 이 역시 관철되기 어려워 어수선하다"이라고 말했다.
2심 판결은 최 회장을 포함한 일가 전체 재산 문제와도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다. 재판부가 분할 대상으로 지목한 SK㈜ 주식에는 6년 전 최 회장이 친족에 증여한 몫도 포함된다. 3심에서 직전 판결을 뒤집을 수 없다면 당시 증여를 받았던 최재원 수석부회장, 최신원 전 SK네트웍스 회장의 가족까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SK그룹 입장에선 사업 조정, 이혼 소송 승패를 떠나 일가가 지배구조 측면에서 정무적 판단도 고심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일가 가족들은 그룹 계열 경영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SK㈜ 지배력에 변동이 발생할 수 있다면 사업 조정 논의가 뒤로 밀릴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일가 내에서 이와 관련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는 관측도 있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SK그룹이 다른 재벌 대기업처럼 장자승계 원칙이 있는 곳도 아니고, 이혼이나 재혼 문제로 승계 복잡성이 전에 없이 높아졌다"라며 "SK㈜ 지배력을 일가가 나눠지고 있기 때문에 사업보다도 일가 내부 분위기에 대한 시장 관심이 더 높아질 수밖에 없다"라고 전했다.
사장단이 의사 결정을 하는 데는 한계가 있지만 그렇다고 가족끼리 머리를 맞댄다 해도 묘안을 짜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SK그룹은 축소의 시대로 접어들면서 그룹의 살림을 도맡다시피했던 조대식, 장동현, 박정호 등 부회장단의 힘이 약화했다. 그 과정에서 최창원 회장이 부상하며 '가족 경영' 기조가 강해졌지만, 오너 일가에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세력이 사라졌다. 수펙스 등 그룹 수뇌부의 역량도 예전만 못한 터라 오너 일가의 고민과 계열사의 이해관계를 조율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