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기물 효율화 방안부터 의견 합치 안돼"
코로나19 대규모 자금 투입한 신규 설비 포기 못해
-
- 이미지 크게보기
- (그래픽=윤수민 기자)
궁지에 몰린 국내 석유화학업을 살리기 위해 정부가 나서 구조조정을 주도하고 있지만 뚜렷한 해결 방안을 찾지 못하고 있다. 애초 계획대로라면 정부는 이달 말까지 종합지원대책을 내놓아야 하는데 여전히 본격적인 논의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롯데·LG·SK 등 대기업 화학 계열사들의 복잡한 이해관계를 모두 반영하기 어려운 데다 코로나19 당시 늘린 신규 설비를 쉽게 매각하는 것도, 매각에 나선다 하더라도 인수할 주체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는 4월 초 '석유화학산업 경쟁력 강화 방안 협의체(TF)'를 출범시켰다. 산업통상자원부 중심으로 LG화학, 롯데케미칼, SK지오센트릭 등 민간 석유화학 기업들과 산학연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 국내 화학 산업이 처한 위기에 대응한다는 계획이었다. 국내 기업 간 M&A를 통해 공급 과잉을 해소하겠다는 계획이 핵심이다. 중장기 전략을 포함한 종합지원대책을 6월 말까지 내놓는 것이 목표였다.
현재 석유화학 업계 관계자들은 "(석유화학업계의) 전반적인 구조조정 외엔 (생존을 위한) 별다른 해결책이 없는 상황"이라고 입을 모은다. 구조조정을 통해 범용 석유화학제품 생산량을 줄이면서 생산 시스템을 효율화해야 중국과 중동의 대규모 물량 공세에 대응할 수 있어서다. 중국과 중동이 생산하는 석유화학제품이 대규모로 시장에 쏟아지면서 국내 석유화학 기업들의 수익성은 급감하는 상태다. 롯데케미칼은 1분기 1353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하며 영업적자를 이어가고 있고 LG화학 또한 1분기 석유화학 부문에서 312억원의 영업손실을 봤다.
정부까지 팔을 걷어붙여 구조조정 작업에 나섰지만 여전히 석유화학 기업끼리 의견 합치가 이뤄지지 않는 것으로 파악된다. 굵직한 대기업 화학 계열사들의 다양한 의견을 한 데 모으기 어렵다는게 가장 현실적인 이유다. 또한 NCC등 주요 설비를 매각한다 해도 마땅한 인수자를 찾기가 어렵다는 평가다. 구조조정 논의에 앞서 폐기물이나 용수 처리 등 효율화 방안조차 현재로선 전혀 합의가 안 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TF에 소속된 기관의 한 관계자는 "산업단지 내 발생하는 폐기물을 한꺼번에 처리하자는 효율화 방안을 내놓아도 각 기업마다 계약 조건이나 이용하는 업체가 모두 다르니 전혀 합의가 안 되고 있다"며 "폐기물 처리뿐 아니라 10개의 효율화 방안을 가지고 가도 실무자들 선에서 모두 반려당한다. 석유화학 기업들의 이야기가 모두 달라, 누구 하나 총대 메고 뭉치지를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코로나19 특수로 찾아온 단기 호황에 기업들이 설비를 대규모로 늘린 점 또한 구조조정 협상의 걸림돌이란 지적도 있다. 대규모 투자가 진행된 만큼 손실을 감수하고 설비 매각 결정을 내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2020년부터 중국 석유화학 기업들이 NCC를 본격 가동하기 시작했음에도 시장 상황을 멀리 내다보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의 TF출범에 앞서 석유화학 기업의 구조조정에 일찌감치 성공한 일본의 사례가 언급돼 왔지만 현재 우리나라 상황에 대입하기란 쉽지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석유화학업계 관계자는 "일본은 한국보다 훨씬 먼저 석유화학 사업에 뛰어들어 설비들이 굉장히 노후화된 상황이라 구조조정할 동인이 컸다"며 "한국의 경우 신규 설비가 많아 막대한 투자 비용을 생각하면 포기하기 쉽지 않아 정부 차원에서 강제로 구조조정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석유화학 업계에선 국내 석유화학 업황의 반등시점을 최소 2028년 이후로 내다보고 있다. 이마저도 더 늦춰질 수 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이는 약 10조원이 투입된 에쓰오일의 샤힌 프로젝트(울산 정유·석유화학 통합 공장)가 2026년부터 가동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중동과 중국의 해외 공세에 이어 국내 정유사들이 수직계열화를 통해 기존 석유화학 기업의 사업분야까지 진출하는 움직임마저 나타나고 있다.
투자업계 관계자는 "롯데케미칼만 해도 수직계열화가 돼 있어 한 부분만 떼어내 팔기도 어렵고 받기도 어렵다"며 "국내 석유화학 기업들의 구조조정이 가장 확실한 해결 방안이자 시급한 문제라는 건 모두가 인지하고 있지만 M&A는 굉장히 복잡한 문제라 누구 하나 쉽게 풀지 못할 것"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