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 계열사-우량 계열사 통합 방안 분분
당장 재무부담 덜지만 시너지 효과 의문
인사도 파장 최소화에 집중하는 분위기
속도 조절일 뿐 '쇄신 기조'는 이어갈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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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그룹 경영전략회의를 앞두고 여러 사업 조정(리밸런싱) 시나리오가 오르내리고 있다. 시장의 바람이 담긴 매물 리스트가 돌던 연초에 비해선 더 구체성을 띠고 있는데 그 실현 가능성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그룹의 중대 계획이 설익은 상황에서 주목을 받으니 전략의 갈피를 잡기 더 어려워지는 모습이다.
SK그룹 사업 조정은 SK온 정상화, 기존 재무적투자자(FI) 회수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파이낸셜 스토리가 정상 기능할 때는 외부에서 원하는대로 자금을 끌어오고 투자자도 교체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러기 어렵다. 비주력 사업을 제값을 받고 파는 것도, 지분을 나눠 돈을 조달하는 것도 쉽지 않다.
SK그룹은 내부에서 답을 찾으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룹의 중추인 SK이노베이션과 SK E&S 합병, SK온과 SK E&S 자회사 합병, SK에코플랜트와 SK㈜ 자회사 합병 등 가능성이 거론된다. 사업이 부진하거나 재무부담이 큰 계열사를 우량 회사와 합치겠다는 것이다. 각 회사의 지배력이 SK그룹에 있기 때문에 외부와 협상할 때보다는 난이도가 낮다. 그룹 밖으로 팔 때보다 직원들 동요도 적다.
SK그룹 입장에선 충분히 고려할 만한 카드지만 얼마나 깊은 고민을 했는지는 미지수다. 지금까지 거론된 방안들은 대부분 이종 사업간 결합이다. 시너지 효과나 효율성 제고 보다는 당장 숫자로 나타나는 재무적 개선 효과에 집중한 것으로 보인다. 재무 상황을 개선하고 FI 회수 시기를 앞당길 수 있지만 기업의 본원적 경쟁력 강화와는 거리가 멀다. 사업을 다시 합칠 거라면 계열사마다 경쟁적으로 확장해 온 기존 전략을 부정하게 된다.
SK그룹 입장에서 이번 사업 조정에 그룹의 명운을 걸어야 한다. 계열사간 합병으로 위기를 타개할 계획이었다면 발표와 동시에 실행을 마무리할 수 있는 길을 선택했어야 했는데 그 전에 여러 방안들이 거론되며 김이 샌 모양새다. 상장사가 포함된 합병 거래의 경우 알려지는 순간 불확실성에 노출된다. 이해관계자, 특히 FI들의 지지가 필요한데 사전에 FI와 협의된 느낌도 아니다.
투자자 입장에서 SK그룹의 판단에 굳이 반대할 이유는 없지만 실행 가능성이나 이해 득실도 따지지 않을 수 없다. FI의 주판알을 튀기는 속도만 빨라졌다. 초기부터 FI와 긴밀하게 논의했어도 성사를 자신하기 어려운데 시장에 시나리오가 먼저 거론된 경우엔 난이도가 더 높아진다. SK온과 SK엔무브 합병 카드도 SK엔무브 FI의 반대로 없던 일이 됐다.
사정이 이러니 FI도 SK그룹의 행보에 의문 섞인 시선을 보이고 있다. 시장에선 언급되는 합병 카드는 여럿인데 당장 확실한 제안은 없다 보니 의사를 결정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한 계열사 FI 관계자는 “최근 SK그룹의 사업 조정 시나리오는 좋은 회사와 안 좋은 회사를 섞겠다는 것으로 보이는데 어느 정도 실효성이 있을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SK그룹의 사업 조정 작업 전반이 우량 회사와 사정 급한 회사를 섞는 ‘물타기’ 양상인데, 그룹 인사를 둘러싼 분위기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그룹 수뇌부의 날선 시선을 계열사들이 애써 외면하려는 분위기도 보여진다.
SK그룹은 작년 말 최창원 SK디스커버리 부회장이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으로 온 후 긴축 행보를 이어 왔다. 사업 개선 성과가 부족하거나 잡음이 이어지는 계열사의 부담이 커졌다. 지난달 박경일 SK에코플랜트 사장에 이어 이달 박성하 SK스퀘어 사장도 사의를 표명했다.
당사자도 예상치 못한 인사가 잇따르다 보니 시장에선 사장단과 임원진에 대한 대규모 인사가 벌어지는 것 아니냐는 시선이 있었다. 이는 SK그룹이 구상하는 계열사간 통합 청사진과도 무관치 않다. SK그룹은 계열사 통폐합을 염두에 두고 있는데 이는 경영진과 임원진 축소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에 대해 각 계열사는 파장을 최소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선제적으로 ‘희생양’이 나온 만큼 다른 계열사의 경영진이나 임원은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란 희망을 가지기도 했다. 경영전략회의 전 더 이상의 인사 조치는 없을 것이며, 이는 경영진이 주어진 임기를 마칠 수 있다는 걸 의미한다는 것이다. 일부 계열사는 이달 들어 수장들의 치적을 알리는 데 공을 들이는 모습을 보였다. 그룹 내 소용돌이의 영향을 최소화하려는 움직임으로 풀이된다.
다만 이런 노력들도 SK그룹의 위기 앞에서는 큰 의미를 갖기 어려울 것으로 보이다. 일부 계열사는 당분간 추가적인 경영진 인사는 없을 것이라 선을 긋는 분위기지만, 그룹의 기류는 사뭇 다르다. 인적 쇄신을 기본으로 하되 ‘속도조절’ 혹은 ‘용단’을 언급하는 분위기다. 당분간 큰 폭의 개각이 없더라도 그룹의 쇄신 기조는 바뀌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최근 SK그룹 사장 인사는 당사자도 전혀 몰랐을 만큼 전격적으로 단행됐고 전통적인 움직임과는 달랐다"며 "최창원 의장 체제에서는 이런 사례들이 계속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