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證을 제외하고는 인수 물량 같았는데…발행 직전 변화
일부 증권사는 자체운용한도(북) 부족으로 SPC 세워서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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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온이 재무상태 개선을 위해 5000억 원 규모의 사모 영구채를 발행했다. 이번 발행은 증권사들이 SK온의 재무적 리스크를 감수하고 직접 인수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 각 증권사의 SK그룹에 대한 '충성도'를 보여주는 지표로 꼽힌다.
처음부터 '앵커 투자자'로 나선 한국투자증권을 제외하면, 증권사별로 고심의 흔적이 엿보인다. 일부 증권사는 특수목적회사(SPC)까지 세워 자금을 댔다는 후문이다.
지난 25일 SK온은 5000억원 규모의 채권형 신종자본증권 발행을 공시했다. 30년 만기물로 3년 후 콜옵션을 행사할 수 있으며, 표면 이자율은 6.42%다. 발행사가 콜옵션을 행사하지 못할 경우 금리가 오르는 스텝업 조항이 포함됐다. 2028년 민간채권평가회사의 민평금리에 1.5%를 합한 이자율로 결정된다.
SK온은 반기 결산 전까지 재무상태를 개선할 필요가 있어 자금조달이 시급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부채비율을 낮춰 이후 자금조달을 원활하기 위함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일각에선 은행권의 차입금을 연장하기 위해서 부채비율과 차입의존도를 줄일 필요가 있었을 것이란 분석이 있다.
주목할만한 점은 각 증권사들이 자기 계정에 직접 인수하는 방식을 택했다는 것이다. SK그룹의 국내외 금융기관 차입 한도가 한계에 이른 상황에서, SK온 측에서 증권사가 직접 인수에 나서길 바라는 분위기였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SK그룹 딜을 수임해야 하는 증권사 입장에선 거절하기 쉽지 않다.
일부 증권사는 자체운용한도(북;book)가 부족하자 특수목적회사(SPC)를 세워서 인수에 나섰다. SPC를 세워 자산유동화에 나서면 북오프(자산을 장부에서 털어내는 것)를 할 수 있지만, 유동화 상품을 판매할때 결국 증권사가 자금보충약정을 하기 때문에 사실상 직접 인수와 다르지 않다는 관측이다.
이에 이번 SK온 영구채 발행을 통해 각 증권사의 SK그룹에 대한 충성도가 드러났다는 평가가 나온다. 불투명한 상환 리스크를 감내하는 것은 물론, 차입한도를 한계까지 밀어올린 탓이다. 특히 한국투자증권을 제외하고는 균등하던 인수물량이 발행 직전 변화되며 충성도가 조금 더 극적으로 드러났단 후문이다.
당초 알려진 것과 달리 증권사별 인수 규모는 발행 직전 변경됐다. 업계에 따르면, 한국투자증권이 3000억원, NH투자증권, KB증권, 신한투자증권, 삼성증권이 500억원씩 인수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최종 인수 내역을 보면 ▲한국투자증권(키스이제이제칠차 포함) 2550억원 ▲NH투자증권 900억원 ▲삼성증권 600억원 ▲KB증권 500억원 ▲신한투자증권(그레이트더블에스제일차) 300억원 ▲SK증권 150억원 등으로 인수 규모가 조금씩 달라졌다.
한국투자증권은 SK온 프리 IPO(상장 전 투자유치)에 참여한 한투PE의 계열사로, 가장 큰 금액을 인수하며 SK그룹과의 관계를 강화했다. SK온 익스포저에 대한 내부 우려로 인수 규모를 다소 줄였지만, 여전히 최대 인수자로서의 위치를 지켰다.
NH투자증권은 이번에 인수규모를 400억원 증액하며 SK그룹 눈도장 찍기에 나섰다. NH투자증권은 앞서 SK인천석유화학 사모 영구채 발행 때에도 1900억원을 직접 인수하며 SK그룹 자본조달 어려움 해소에 일조한 바 있다. NH투자증권은 SK에코플랜트 상장 주관사이기도 한데, 딜 유지 및 수임을 위해 적극적으로 리스크를 함께 부담하는 모양새다.
반면 신한투자증권 등은 신한금융그룹 차입 한계 등의 이슈로 인수 금액을 일부 줄였다. 은행과 증권사를 포함해 계열사가 한 그룹에 대출해줄 수 있는 한도가 정해져있고 신한은 거의 한계에 이르렀다는 설명이다. 리스크를 좀 더 보수적으로 보기 때문에 공격적 베팅이 어려웠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SK그룹은 리밸런싱 등의 이슈로 향후 파생 딜이 가장 많이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증권사들도 딜 소싱을 위해 공격적으로 위험감수에 나서는 분위기다"라며 "향후 SK그룹 관련 금융 딜에서 각 증권사의 역할과 입지가 어떻게 변화할지 지켜봐야할 것 같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