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10년 이끌 리더들, 초기 성과 중요
시장 침체, 인력 부족, 내부 단속 등 고민
세대 교체 회계법인·부티크와도 경쟁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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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1세대 뱅커들의 장기 집권 구도가 이어지던 한국 투자은행(IB) 시장에 변화의 바람이 일고 있다. 한동안 보이지 않았던 후기지수(後起之秀)들이 각 하우스의 주축으로 부상했다.
1세대 뱅커들은 대부분 1960년대생이었는데 이제는 1970년대가 주축이고 1980년대생 IB 수장도 보이고 있다. 팬데믹 유동성 호황기의 성과를 바탕으로 매니징디렉터(MD)를 달았던 인사들이 본격적으로 존재감을 키우기 시작한 것이다.
올해 JP모건은 조솔로 수석본부장(1980년생)이 투자금융부 총괄로 승진했고, 하진수 ECM 총괄(1973년생)은 서울지점장으로 취임했다. UBS는 크레디트스위스 출신 이경인 부의장(1975년생)과 심종민 전무(1981년생)가 주축이 돼 이끌고 있다. BofA의 조찬희 대표(1977년생)도 2021년부터 IB 대표를 맡아 온 40대 기수 중 하나다.
골드만삭스 IB부문 대표에는 안재훈 SK바이오사이언스 부사장(1976년생)이 부임할 예정이다. 골드만삭스는 올해 초 정형진 대표(1970년생)가 물러난 후 여러 시니어 뱅커들을 중심으로 IB부문 대표 자리를 제안했는데 결국 모건스탠리 IB 출신 전문가가 낙점됐다. SK그룹은 최근 긴축 기조로 전환하면서 신사업 전문가들의 설 자리가 좁아진 상황이다.
그간 국내 외국계 IB의 지배구조는 큰 변화없이 안정적 구조를 유지해왔다. 1세대 뱅커들은 대기업이 주도하는 시장에서 일찌감치 경험과 네트워크를 갖췄기 때문에 오랜 기간 안정적으로 실적을 쌓을 수 있었다. 글로벌 본사 입장에서도 시장 규모가 작고 간간이 나오는 주요 거래만 챙기면 되니 한국 사무소의 지배구조를 바꿀 이유가 많지 않았다.
지난 수년간 승진의 벽을 느낀 시니어 뱅커, 유동성이 풍부한 신산업의 구애를 받은 주니어 뱅커들이 대거 IB 시장을 떠났다. 수십년씩 자리를 지켜 온 터줏대감들의 입지는 더 공고하게 유지됐다. 일을 할 수 있는 허리층이 약해지고 세대 교체도 잘 이뤄지지 않으며, 장기적으로 외국계 IB의 설자리는 더 좁아질 것이란 우려를 낳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해 하반기부터 세대교체 인사가 잇따라 이어지며, 이제 주요 IB 헤드들은 대부분 50세 이하 인사들로 채워지게 됐다. 시장을 과점하던 1세대들의 시대는 저물고 새로운 세대들의 진검승부가 펼쳐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들은 앞으로 길게는 10년 이상 IB를 이끌어가야 한다. 중책을 맡은 초기부터 성과를 내 조직 안팎에서 존재감을 과시하는 것이 중요한 상황이 됐다는 평가다.
새로운 세대가 급부상한 현 시점에 가장 주목을 받는 것은 UBS다. 동양생명, 아시아나항공 화물사업, SK렌터카, 에코비트, CJ올리브영 소수지분 등 화제가 되는 매각 거래에서 주관을 맡고 있다. 이천기 전 CS 부회장과 오랜 기간 손을 맞췄던 이경인 부의장이 다른 후기지수들보다 반발자국 앞서가는 모습이다. 고객 친화적 정책이 빛을 발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다른 IB 수장들도 점차 실적을 내야 할 시기가 다가오는데 현재 시장 환경은 우호적이라 보기는 어렵다. 2022년 이후 이어진 자본시장 침체로 대형 M&A를 추진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2분기엔 지오영, 한온시스템 등 굵직한 거래가 있었지만 예년에 비하면 아쉽다. 현대차 인도법인 상장(씨티, JP모건, 모건스탠리 등 주관), 야놀자 상장(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 등 해외 거래에선 한국 사무소의 역할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주요 기업들은 좀처럼 움직일 생각을 않고 있다. 자본시장의 한 축인 대기업이 주춤하니 IB의 입지도 좁아졌다. 대기업은 국내외에서 새로 일을 벌이기보다는 사업 조정에 힘을 쏟을 가능성이 크다.
특히 SK그룹에서 쏟아져 나올 자금 조달 및 매각 거래를 얼마나 따내느냐에 따라 올해 이후 성적표가 달라질 가능성이 크다. SK그룹 관련 거래는 옛 CS가 독식하다시피 했었는데, UBS가 성과를 이어갈 것인지도 관심사다.
인력을 보강하는 것이 중요하다. IB 수장들의 면면이 젊어지긴 했지만 오랜 기간 고착화된 인력 부족 현상이 단기간에 개선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최근 BofA, 모건스탠리, 씨티 등 주요 IB가 주니어 인력을 충원했거나 채용 절차를 진행하는 상황이다. 당장 일할 사람이 필요하다 보니 인턴십보다는 검증된 인력을 추천받기를 희망하고 있다. IB간 인력 쟁탈전은 불가피하다.
IB 대표들은 내부 분위기도 다잡아야 한다. 오랜 기간 부족한 보상, 막혀있는 승진 가도 등 불만이 누적되며 인력 이탈이 많았기 때문이다. 일감이 넘치는 상황은 아닌 만큼 먹거리를 어떻게 분배하느냐도 중요하다.
골드만삭스는 내부 인사 대신 다른 IB 하우스 출신 인사를 모셔왔는데 내부 불만을 어떻게 달랠 것인지 관심이 모인다. 조기 승진에는 내부 사정이나 정책적 배려 등 운이 작용했다는 평가도 있는데, 대표들은 성과로 이런 시선을 잠재워야 한다.
외국계 IB가 이름값만으로 일감을 따내던 시기는 지났다. 글로벌 시장에서의 명성과 한국 시장에서의 존재감은 다른 경우가 많다. 빅네임들이 주춤하는 사이 BDA파트너스, 라자드, 노무라, 다이와 등 중형급 자문사들도 틈새를 파고 들고 있다. 예전같으면 고사했을 중소형 거래라도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다.
회계법인과의 경쟁도 더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삼정KPMG 김이동 대표(1977년생)가 재무자문 부문을 이끌고 있고, 삼일PwC는 올해 민준선 파트너(1971년생)를 딜부문 대표에 선임했다. 회계법인에도 세대교체의 바람이 불고 있고, 실적 압박은 더 커지는 분위기다. 웬만한 거래는 대형 회계법인들이 싹쓸이하고, 중형 미만 회계법인들도 자문료 수십억원을 받겠다며 IB에 대한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한 외국계 IB 관계자는 “어느 IB 할 것 없이 허리 기수는 부족하고 일손은 모자란데 마음에 드는 인력을 구하기는 쉽지 않다”며 “웬만한 딜은 회계법인들이 쓸어가는 상황인데 주요 IB들도 점점 회계법인과 부티크 자문사의 영역까지 내려와 경쟁할 것인지 관심이 간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