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턱밑까지 따라온 한투운용 따돌리자'…ETF 사업 쇄신 고삐
문제는 특색없는 ETF 상품…순자산총액 1위 ETF는 파킹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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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자산운용이 ETF(상장지수펀드) 브랜드 교체를 통해 사업 재정비에 나섰다. 한국투자신탁운용과 점유율 격차가 좁혀지면서 ETF 강자 3위 유지가 불안해지자 대응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한때 가치주 투자 및 주주행동주의 대표 주자로 명성을 떨쳤던 KB운용이지만, 최근에는 특색이 사라지고 개성이 없다는 평판이 주류다. 최근 운용사들이 사활을 걸고 있는 ETF 시장에서도 눈에 띄는 상품 출시에 실패하며 '무색무취'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KB자산운용은 지난 2일 ETF브랜드 명칭을 기존 'KBSTAR'에서 '(라이즈)RISE'로 바꾼다고 발표했다. 이미 상장된 109개 ETF의 브랜드명은 오는 17일부터 일괄 적용된다. 올 초 취임한 김영성 KB운용 사장이 준비한 ETF 사업 리뉴얼의 일환이다. 리브랜딩을 통해 KB운용의 새로운 중흥기를 열겠다는 포부를 담고 있다.
KB운용의 브랜드 변경은 한국투자신탁운용의 맹추격과 무관치 않다. 한투운용은 지난 2022년 삼성운용의 배재규 총괄 부사장을 사장으로 영입하면서 순자산액이 가파르게 늘어났다. 한투운용의 순자산이 10조원을 돌파하면서 한때 두 배 넘게 차이나던 KB운용과 ETF 수탁고 차이는 1조원으로 줄었다. 시장 점유율 격차는 2022년말 기준 4.98%포인트 였으나 최근 1%포인트까지 좁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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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 4위였던 한투운용의 약진에 ETF 강자 3위 자리가 위태로운 상황이다. 이에 KB운용이 사업 리뉴얼에 더욱 고삐를 쥐는 모습이다. 지난 5월엔 순자산총액 50억 미만의 ETF 14개를 대거 상장폐지하는 과감한 행보를 보였다. 통상 운용사는 투자자들의 편의성을 고려해 ETF가 상장폐지 조건을 충족한다해도 실행에 옮기지 않는다. KB운용의 사업 쇄신 의지가 크다는 분석이다.
한투운용 대비 차별력 있는 ETF를 기획하지 못한다는 점이 취약점으로 꼽힌다. 한투운용은 글로벌에 투자하는 ETF를 출시하는데 강점을 갖고 있다는 평가다. 나스닥 및 S&P500과 관련해선 순자산액이 삼성자산운용을 넘어서는 ETF가 적지 않다. 한투운용이 지난해 선보인 빅테크 밸류체인 ETF는 올 상반기까지 개인 순매수세가 지속되며 흥행에 성공한 바 있다.
한 운용사 관계자는 "밸류체인 ETF는 미래에셋운용의 TSMC 밸류체인이 원조격이지만, 한투는 이를 인텔 등 다른 IT 부문 대표기업으로 확장해 상품을 구성했다"며 "한투운용이 해당 상품의 인기를 바탕으로 KB운용을 바짝 따라잡으며 ETF 3위를 넘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KB운용은 지난 2010년대까지만 해도 신영자산운용과 버금가는 가치투자 명가로 알려지면서 투자자들의 각광을 받은 바 있다. 대표펀드인 KB밸류포커스는 가치주 투자 열풍 속에 4조원이 넘는 수탁고를 기록했다.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후에는 주주행동주의를 적극적으로 실천했다. 얼라인파트너스 이전에 SM엔터테인먼트의 지배구조에 문제를 제기한 곳이 KB운용이었다.
지금 KB운용엔 당시의 유산이 아예 남아있지 않다는 평가가 많다. 가치 투자 열풍의 주역이었으며, SM엔터를 향한 주주행동주의의 최선봉에 서 있던 스타매니저 최웅필 상무가 퇴사한 이후 스튜어드십 코드에 근거한 주주행동주의 투자는 사내에서 금기시됐다. 가치 투자를 주도할 차세대 매니저도 나타나지 않았다는 게 회사 안팎의 분석이다.
가치 투자를 위시로 한 액티브 펀드 산업이 사양길에 접어들며 KB운용은 뒤늦게 ETF 시장에 뛰어들었다. 미래에셋자산운용과 삼성자산운용의 양강구도가 형성돼 있었기 때문에, 후발주자로서 한계가 있었다는 지적이다. 패스트팔로워(선두기업이 내놓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신속하게 모방해 출시하는 것) 전략을 통해 점유율 3위에 안착하긴 했지만, KB운용만의 색깔을 드러내기가 쉽지 않았단 지적이다.
게다가 이 시기를 이끈 KB운용의 수장들은 ETF 전문가와 거리가 멀었다. 2018년부터 조재민, 이현승 두 대표가 KB운용을 이끌었고 2021년부터 작년까지 이현승 대표 단독 체제였다. 조재민 대표는 자산운용 전문가로서 KB운용이 가치주에 투자하는 펀드 상품을 기획하는데 힘을 쏟았고 이현승 대표는 대체투자 전문가였다. ETF 시장이 중요하다고 해도 이를 전사적으로 지원하는 분위기가 형성되는데 제약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나마 KB운용이 3위를 차지할 수 있었던 비결로 계열사의 지원이 꼽힌다. KB라이프생명과 KB손해보험 등 보험 계열사에서 KB운용에 몰아준 일임자산이 전체 일임자산의 77%에 달한다. 이 중 상당수가 ETF를 통해 투자되고 있다. 또한 현재 KB운용의 순자산총액 1위 ETF는 파킹통장 성격의 KBSTAR 머니마켓액티브(1조8000억원)로, 계열사의 여유자금이 대거 유입된 것으로 추론된다.
업계 관계자들은 KB운용이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과 동시에 ETF 사업 역시 질적 개선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KB금융그룹에선 삼성운용 출신 김영성 공무원연금공단 해외투자팀장을 신임 대표로 선임해 부흥을 꾀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인적 쇄신 과정에서 내부 갈등이 발생하면서 적지 않은 시간을 소모했고, 주요 운용역들의 이탈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KB금융지주에서도 KB운용이 이번 기회를 통해 ETF 시장에서 입지를 굳힐 수 있을지 주시하는 분위기다. ETF 사업의 성공은 단순히 운용사의 실적 향상을 넘어 금융그룹 전체의 자금 순환과 성장에 영향을 미친다는 설명이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최근 금융지주들은 운용사를 키워 수탁받은 자금을 그룹 내에서 선순환하게 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그러나 KB운용은 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라며 "지주에서도 KB운용에 대한 고민이 적지 않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