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이노 주주 불리한 비율…그만큼 SK㈜ 의지 강하단 평
SK E&S 배당 여력도 SK온 향할 전망…SK㈜ 주주도 손해
최대주주·FI 이해관계 우선…주주 몫으로 SK온 살리기 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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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그룹 사업조정(리밸런싱)의 첫 발을 떼는 것은 SK이노베이션과 SK E&S 합병이다. 이차전지 밸류체인을 짊어진 SK이노베이션에 그룹의 캐시카우를 붙여 재무 여력을 강화하겠다는 건데 어느 쪽 주주도 선뜻 반기기 어려운 분위기다. SK㈜는 배당 감소를 걱정해야 하고, 주가가 역사점 저점을 지나는 SK이노베이션 주주들도 유리하지 않다. 결국 그룹과 재무적투자자(FI) 이해관계를 위해 주주 몫만 줄어드는 그림이 될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오는 17일 SK이노베이션과 SK E&S는 이사회를 열고 양사 합병을 논의한다. 두 회사 모두 SK㈜가 최대주주인 만큼 합병안을 관철시키는 것이 상대적으로 수월한 상황이다. SK그룹은 양사가 합병해 100조원 규모 대형 에너지 기업이 탄생할 수 있다는 논리를 내세울 것으로 예상된다.
SK이노베이션과 SK E&S의 합병비율은 1대2 수준으로 거론되고 있다. 상장사 SK이노베이션은 최근 주가에 따라, 비상장사 SK E&S는 자산가치와 수익가치를 따져 산정한 것으로 보인다. 상장사가 포함된 합병의 경우 주가 변동 우려 때문에 비밀리에 진행하는 경우가 많지만 별다른 선택지가 없다는 점, 한국거래소의 압박 등 때문에 일정이 공개된 것으로 보인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지난 10일을 전후해 그룹에서 SK이노베이션에 합병비율을 포함한 계획을 전달하고 관련 작업을 준비하라 일러뒀다"라며 "이달 말 경영실적 보고를 위한 이사회도 예정돼 있어 일정 문제로 갈팡질팡하다 거래소 측이 공시위반 여부를 따지자 12일로 못 박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SK그룹의 의지는 강력하지만 SK이노베이션 주주들의 반발은 불가피해 보인다.
처음 양사 합병 계획이 흘러나왔을 때부터 SK이노베이션을 시가로 평가하면 주주에게 불리할 것이란 분석이 많았다. 합병 이사회 공시 당일 SK이노베이션 종가는 10만8100원. 코로나 시기를 제외하면 10년 내 최저점에 가깝다. SK온이 주가를 반토막 아래로 끌어내려 정유·석유화학 가치는 물론 이차전지 사업 가치도 반영하지 못해서다. 시장에선 현재 주가가 정상 구간을 벗어났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비상장사 SK E&S와 합병하면 SK이노베이션 주주들의 지분 가치는 크게 희석된다. 저평가된 만큼 합병을 위해 발행해야 할 신주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기관투자가들은 SK E&S와 합치면서 발생하는 실익이 기존 주가 희석분에 미치지 못할 것이라 우려하고 있다. 합병 가능성이 제기된 후 주가가 상승세를 보인 것도 아니다.
SK㈜ 입장에선 통합회사의 지배력을 끌어올리기에 유리하다. 합병안 통과시 SK㈜의 합병 SK이노베이션에 대한 지분율은 기존 36.22%에서 약 70% 선으로 높아진다.
이는 SK E&S의 우선주에 3조원 이상을 투자한 KKR도 마찬가지다. KKR은 우선주 1주를 보통주 2주로 바꿀 권리가 있다. KKR 입장에선 SK이노베이션 주가가 낮을 때 SK E&S를 합병하는 것이 유리하다. KKR은 당초 SK E&S의 도시가스 자회사를 받아올 계획이었기 때문에 합병을 하더라도 큰 문제가 없지만, 그렇더라도 합병 비율에서 손해를 보면서까지 SK그룹의 계획에 동의할 이유는 없다.
반대로 SK㈜ 주주에게는 득보다 실이 많을 거란 분석이 나온다. SK E&S는 SK㈜의 핵심 캐시카우이자 가치를 지지해 주는 역할을 해왔다. 지난 5년간 각각 7300억원, 6547억원, 3857억원, 6308억원, 5270억원을 배당했는데 지분 90%를 쥔 SK㈜가 최대 수혜자였다. 시장에선 SK이노베이션과 합병하면 과거 수준 배당 여력을 유지하기 어렵다고 본다.
SK그룹에선 두 회사 합병의 시너지 효과를 부각하고 있다. SK 측은 "SK㈜는 자회사 지분가치가 기업가치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지주사기 때문에 자회사 성과가 지주사 성과와 밀접하게 연결된다"며 "이번 합병으로 자회사 경쟁력이 높아지면 지주사 기업가치도 함께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그러나 실제 배경은 SK온 살리기라는 시각이 적지 않다. SK E&S에서 발생하는 수익이 SK온을 향할 경우 그만큼 SK㈜에 대한 배당 여력은 줄어든다. 시장에선 SK온의 올 상반기 적자 규모가 SK E&S 연간 배당액을 훌쩍 넘어설 것으로 보고 있다.
한 투자은행(IB)업계 관계자는 "이전에도 SK E&S 돈이 SK이노베이션 이차전지 사업으로 흘러 들어가긴 했는데 이번 합병은 계열 간 돈이 오갈 필요 없이 호주머니를 하나로 합치는 작업에 가깝다"라며 "작년 SK이노베이션은 SK온에 2조원을 수혈한 직후 조 단위 유상증자를 통해 시장에서 돈을 걷어갔다. 이때 SK㈜가 증자에 참여한 재원이 결국은 SK E&S에서 수취한 배당금이었다"라고 말했다.
양사 합병이 SK이노베이션의 재무 부담을 줄이기 위한 최후의 수단임을 감안해도 상당한 잡음이 따를 전망이다. SK이노베이션은 물론 SK㈜ 일반 주주들에겐 실익이 불투명하고 SK㈜ 최대주주와 SK E&S FI만 뚜렷하게 득을 보는 방식인 탓이다. 주주 몫을 희생하고서도 SK이노베이션 아래 이차전지 사업의 정상화가 늦어질 경우 그룹 평판 부담이 한층 거세질 거란 우려가 많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더 이상 SK온에 FI를 유치하지 못하고, 은행권 한도는 다 찼고, 증권사 자기자본까지 끌어 쓴 뒤 이제 주주 몫으로 땜질하겠단 것으로 시장에 비칠 수밖에 없다"라며 "논란이 큰 방식인 걸 그룹에서도 알고 있을텐데 일단은 그룹에서 SK온을 살리려는 의지가 큰 것으로 받아들여진다"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