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에 약속한 IPO 지키기 위한 몸 만들기란 평가 多
SK에코플랜트 판박이…쪼개기 상장에서 붙이기로
난이도는 더 올라갈 전망…결국 SK온 본업이 관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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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온은 그룹 사업조정(리밸런싱)을 통해 SK엔텀과 SK트레이딩인터내셔널을 넘겨받게 됐다. 회사는 재무 안정성을 높이기 위한 조치라 설명하지만 재무적투자자(FI)를 고려한 몸만들기로 보는 시각이 많다. 상장(IPO) 약속을 지키려 쪼개기 대신 합치기를 택한 셈인데, 다른 계열사들처럼 쉽지만은 않을 거란 평이 나온다.
17일 SK온은 이사회를 열고 SK엔텀과 SK트레이딩인터내셔널을 각각 흡수합병하기로 결의했다. 각 합병비율은 약 1대 16.9, 1대 2.6 수준에서 결정됐다. SK온은 오는 8월27일 합병 주주총회를 거쳐 11월엔 SK트레이딩인터내셔널을, 내년 2월엔 SK엔텀을 흡수합병할 예정이다.
회사는 3사를 합병하면 사업·재무적 시너지가 상당할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SK트레이딩인터내셔널은 원유·석유제품 중계무역을 맡아 온 계열사고 SK엔텀은 올초 SK이노베이션 내 탱크터미널 사업부를 분할해 신설한 계열사다. 합병으로 SK온의 원자재 소싱 경쟁력을 강화하는 동시에 연 5000억원을 초과하는 상각전영업익(EBITDA)이 발생할 거란 애기다.
투자업계에선 18일 결정된 SK에코플랜트와 SK머티리얼즈에어플러스 사례와 똑같은 구조로 보고 있다. FI를 위한 체력 보강으로 받아들여지는 셈이다.
자문시장 한 관계자는 "SK온 적격상장(Q-IPO) 조건을 충족하지 못했을 때 SK이노베이션에서 감당해야 할 자금이 4조원에 달한다"라며 "11번가 사태로 콜옵션(주식매수청구권)에서 빠져나갈 구멍도 사실상 막혔고, 달리 적자를 면할 방법도 없으니 그룹 여기저기서 현금주머니 달아주는 작업을 병행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SK온 중심 3사 합병이 실효를 거둘지 지켜봐야 한다는 시각이 많다. 상장 외엔 회수 방법이 불투명한 FI의 동의를 구하기는 수월하겠지만 실제로 상장에 나서기까지 문턱은 여전히 높다.
SK엔텀이나 SK트레이딩인터내셔널은 넓게 보면 보관창고업·중계무역업이 주다. 이론적으로는 2차전지 원자재 조달 역량에 수익성이 오르내리는 SK온과 사업 시너지를 낼 수 있다. 그러나 각사 모두 원유나 석유 같은 화석연료 시장에 뿌리를 두고 있다. 여기서 발생하는 수익을 SK온으로 옮기면 적자폭을 줄여 자금조달에 도움을 줄 수는 있지만 상장 시점 친환경 사업 가치에 보탬이 될지는 알기 어렵다.
덩치가 커지는 만큼 시장에서 공모 규모를 소화하기 어려워질 가능성도 따져봐야 한다. 당초 SK온이 FI에 약속한 조건을 감안하면 2026~2027년을 전후해 40조원 안팎의 가치를 시장에서 인정받아야 한다. 이번 합병 이후 FI와 Q-IPO 조건을 어떻게 손볼 것인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으나, IB업계에선 우려하는 목소리가 좀 더 우세한 편이다.
합병을 떠나 SK온 본업인 배터리 사업이 본 궤도에 올라서야 한다는 조건엔 변함이 없다. 전기차·배터리 업계에선 연말 미국 대선과 내년 유럽연합의 새 규제 정책 등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경쟁사들이 리튬인산철(LFP) 및 신규 폼팩터(제형)를 두루 갖추는 식으로 포트폴리오를 넓히고 있어 SK온이 향후 어떤 전략을 펼칠지도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IB업계 한 관계자는 "지난 수년 계열 전반에서 성장 사업을 분할해 중복상장 구조를 늘리다가 사실상 합치기 상장으로 선회한 셈"이라며 "외부 조달이 안 되니 그룹에서 마련한 고육책이긴 한데, SK온을 포함해서 이 같은 방식으로 상장 난이도는 더 올라갈 가능성이 높다. 가시적인 성과가 안 나오면 미봉책이란 지적이 나올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