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드 출자자와 부실채권 매도자 일치
빠르게 사업장 정리해 수익낼 유인 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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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최근 저축은행과 여신전문금융회사의 PF 정상화펀드의 운용 방식을 두고 진성매각(True Sale) 논란이 일고 있다. 자신이 만든 펀드에 자신의 부실채권을 파는 행위가 '진성'매각, 즉 장부에서 온전히 털어낸 게 맞느냐는 지적이다. 논란이 불거지자 금융감독원도 해당 펀드의 적법성 조사에 착수했다.
진성매각 논란의 핵심은 펀드 운용사가 부실화한 PF 채권을 매입해 일정 수준 이상의 수익률을 올릴 유인이 부족하다는 데 있다. 저축은행 PF 정상화펀드의 경우, 모자(母子)형 펀드를 활용하고 있다. 저축은행들이 모펀드에 자금을 출자하고 자펀드에서 PF 부실채권을 사들이는 식이다. 출자자이자 PF 채권 매도자가 모두 저축은행들이니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 사실상 부실채권을 펀드로 잠시 옮겨두는 '시간 끌기'를 통해 연체율을 낮추는 효과만 본다는 것이다. 훗날 부동산 시장이 회복하면 저축은행들이 펀드에 넘겼던 사업장을 다시 사오겠다는 암묵적인 약속이 있었을 것이란 의혹도 나온다.
부동산 업계 한 관계자는 "팔이 안으로 굽는 건 당연하다. 저축은행과 여전사들이 펀드 출자자이자 채권 매도자이기 때문에 출자자가 운용사에 사업장을 빨리 정리해 수익을 내라고 재촉할 이유가 전혀 없다"며 "망가진 사업장들을 빠르게 정상화하라는 취지에서 만든 펀드인데, 운용사들이 빨리 정리할 필요성을 못 느낀다면 정책이 요구하는 효과가 나타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저축은행업계는 1차 330억원, 2차 5100억원의 PF 정상화펀드를 조성했다. 펀드 운용사는 웰컴저축은행 계열사인 웰컴자산운용과 한국투자저축은행 계열사인 한국투자리얼에셋운용이다. 여신업계는 1차 1600억원, 2차 2000억원 규모의 펀드를 조성했다. 운용은 한국투자리얼에셋이 맡았다.
저축은행업계는 1차 펀드 모집 당시 저축은행 10곳과 저축은행중앙회의 합산 출자금 330억원에 재무적 투자자(FI) 투자금을 합해 1000억원을 모집한다는 계획이었으나, FI를 구하지 못해 저축은행들의 출자금 330억원을 모으는 데 그쳤다. 반면 2차 펀드는 당초 2000억원 수준으로 조성할 예정이었으나 투자에 참여하는 저축은행이 27곳으로 늘어나면서 규모가 5100억원까지 크게 확대됐다.
금융당국 압박에 겨우 출자해 펀드를 조성했던 1차 때와는 달리, 2차 펀드에 참여한 저축은행이 크게 증가했다는 점이 해당 펀드를 통해 부실률을 낮춰 충당금을 적게 쌓을 수 있다는 계산이 섰던 것으로 보인다는 의혹도 제기된다. 이에 금감원도 2차 펀드의 진성매각 여부를 들여다볼 계획이다.
사실 PF 정상화펀드가 조성될 당시부터 저축은행과 여전사 내부서도 진성매각을 두고 의견이 분분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저축은행 한 관계자는 "처음 펀드가 조성됐을 때부터 실무자들 선에서 저축은행중앙회에 이런 방식으로 채권을 매각해도 되는지에 대해 지속적으로 문의를 했었다"고 전했다.
부실채권 진성매각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시중은행들의 건전성이 악화하자 은행들의 부실채권(NPL)을 정리할 목적으로 세워진 민간 배드뱅크인 연합자산관리(유암코) 또한 초반에 진성매각 논란이 존재했다. 은행들이 부실채권을 유암코에 파킹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에서다. 이후 유암코는 공정가치심의위원회를 구성해 공정한 가격으로 매입했는지 모니터링하고, 기타 NPL투자사들과의 경쟁입찰을 통해 매입하는 방식으로 해당 의혹을 벗어났다.
이에 PF 정상화펀드 또한 부실채권 매도자와 펀드 출자자가 일치한다는 태생적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선 추가적인 조치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NPL 업계 한 관계자는 "운용사가 매입한 PF 부실채권을 빠르게 정리해야 인센티브를 받는 구조가 되어야 해당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며 "운용사가 부실 사업장을 고가에 매입해 담아두고 몇 년 후 다시 팔 요령이라면 '시간 끌기'밖에 되지 않는 구조"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