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 '테마주와 캐시카우 맞바꾸기' 전략
저가 공개매수로 승계 속도내는 한화
오너家 이익은 뚜렷, 투자자들만 손익계산 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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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에너빌리티가 속해있는 팀코리아가 15년만에 원전 수출에 성공했다. 두산은 문재인 정부에서 원전 사업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까지 몰리며 존폐를 걱정해야 했는데 윤석열 정부의 정책적 뒷받침으로 재기에 성공할 수 있게 됐다. 정부의 수혜 또는 특혜 시비를 떠나 우리나라에서 원전을 지을 수 있는 유일한 기업으로 당분간 주목도가 높을 수밖에 없는 그룹으로 탈바꿈한 건 사실이다.
K-원전의 화려한 부활에 발맞춰 두산그룹도 지배구조 개편에 속도를 내고 있다.
그룹 재건의 중심은 캐시카우인 두산밥캣이다. 빚으로 인수한 두산밥캣은 어느덧 그룹 영업이익의 97%를 차지하는 핵심 계열사로 성장했고 밥캣이 어떤 계열의 자회사로 남느냐가 그룹 중심축을 가늠하는 지표가 됐다.
두산그룹은 밥캣을 에너빌리티의 자회사에서 떼어내 두산로보틱스의 100% 자회사로 만드는 게 목표다. 분할과 합병, 주식교환의 과정에 모두 성공하면 '㈜두산→로보틱스→밥캣'의 지배구조가 완성된다. 만년 적자인 로보틱스는 한해 1조원을 넘게 벌어들이는 밥캣의 모회사가 되고, ㈜두산 역시 밥캣의 간접 지배력이 확대한다. 오너일가가 지분 30%를 넘게 보유하고 있는 ㈜두산이 밥캣을 활용할 여지가 높아졌단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불거질 수 있는 논란은 역시 핵심자회사를 떼내는 에너빌리티 투자자들의 반발이었다. 논란에 막 불이 붙기 시작한 시점, 팀코리아가 원전 수출에 성공하며 에너빌리티 주주들을 달랜 유인책이 마련됐다. 지배구조 개편의 발표 시기, 원전의 수출 확정 시기가 공교롭게 맞아 떨어지며 잘 짜여진 각본을 연상케했다.
또 다른 논란은 역시 밥캣과 로보틱스의 주식교환비율이다. 밥캣의 주주들은 평균 매수단가에도 미치지 못하는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하거나, 만년 적자회사인 로보틱스 주식을 밥캣 1주당 0.63주로 바꾸는 두 가지 선택지 중 하나를 결정해야 한다. 이는 밥캣은 주식시장에서 만년 저평가 기업으로 낙인찍힌 상황, 반대로 지난해 상장한 로보틱스는 테마에 편승해 수 조원의 몸값을 인정받고 있는 시점이기 때문에 가능했다.
주주들에겐 분명 달가운 상황은 아니지만 상법상 상장회사의 주식은 시가로 교환하도록 규정돼 있기 때문에 절차상 문제는 없다. 현행법을 최대한 활용해 편법 논란에선 자유로울 수 있었고, 또 주주들에겐 실익이 불분명한 선택지도 안겨줬다는 명분은 두산그룹이 이번 구조개편에 자신감을 드러낼 수 있는 요인으로 꼽힌다.
IB업계 한 관계자는 "두산 각 계열사에 투자한 주주들의 이익을 추구하기 보단 오너일가를 위해 기획된 일련의 거래들이 밸류업이란 명목으로 빠르게 추진되고 있단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며 "외국인투자자들의 한국 그룹사들에 대한 불신이 커지고 결론적으로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더욱 가속화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한화그룹 역시 현 정부 아래에서 사세가 확장 중이다. 한화는 대우조선해양(한화오션) 인수로 육해공을 아우르는 방산기업으로 자리잡았다. 전차와 자주포는 물론, 레이더에 이르기까지 방산에 대한 산업 집중도가 높아지며 연일 수출 낭보를 전하고 있다. 정부가 수주 총력전에 힘을 실었고, 정책금융까지 가세하며 ㈜한화의 자회사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30조원이 넘는 수주잔고를 기록하고 있다. 한화에어로의 기업가치는 지난 1년 동안 3배 가까이 성장했다.
대체불가능한 방산기업으로 자리매김한 한화그룹은 이제 승계 준비에 한창이다.
김승연 회장의 세 아들이 지분 전량을 보유한 한화에너지는 그룹 최정점인 ㈜한화의 지분에 대해 공개매수를 추진했다. 지분 8%를 확보할 목적으로 ㈜한화의 특수관계인의 지분율 50%를 넘기겠단 계획이었으나, 최종 5.2%를 모집하는데 그쳤다. 당초 오너의 지배력 확대를 위해 진행되는 거래인 게 분명한데, 그 명분에 걸맞지 않은 방식이 도마 위에 올랐다.
㈜한화의 주가순자산비율(PBR)은 재계 다른 지주사와 비교해 가장 낮은 수준으로 평가받는다. 시가총액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에 턱없이 못미치고, 역사적으로 순자산가치(NAV) 대비 할인률이 가장 높은 시점이기도 하다. 오너 일가 입장에선 한화에너지를 통해 최소한의 자본으로 그룹 지배력을 늘릴 수 있는 최적의 타이밍이다.
반면 일반주주들은 손익을 따져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공개매수가격(3만원)은 올해 진행된 공개매수 거래에서 가장 낮은 할증률(약 10%)이 적용된 수치다. 2년전에 비해서 주가도 큰 폭으로 주저앉은 상황이기 떄문에 장기 투자자들은 공개매수에 참여한다면 오히려 손실을 확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주주들은 현 시점에서 주식을 처분하기도 보유하기도 애매한 상황임에는 분명하지만, 이 역시 편법 논란에선 자유롭다. 공개매수 가격은 사실상 매수자의 사정에 의해 책정할 수 있기 때문에 할증률의 높고 낮음으로 편법 여부를 논하긴 어렵다.
국내 한 기관투자가는 "한화그룹은 명실상부 이번 정권의 최고 수혜를 받은 기업 중 하나"라며 "이제껏 주주가치를 제고하기 위한 노력도 없었는데 이번 기회에 승계를 위한 사전작업까지 준비하는 모습을 보고 과연 투자자를 위한 회사가 맞는지 생각해보게 됐다"고 말했다.
두산과 한화그룹이 이번 거래에서 내세우는 명분은 '기업가치 제고', 즉 '밸류업'이다. 두산그룹은 로보틱스와 밥캣의 사업적 시너지를 언급했다. 사실 합병이 성사되고, 두 기업의 완벽한 시너지가 발현되기까진 얼마나 많은 시일이 걸릴지 또 실제로 발현할 수 있을지는 예단하긴 어렵다.
한화에너지는 "안정된 지분율을 바탕으로 ㈜한화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기업가치를 제고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할 예정"이라고 밝혔지만, "지배구조, 재무구조, 사업내용 등에 변경을 가져오는 구체적인 장래계획은 수립하고 있지 않다"고 했다. 구체적인 환원책이 전무한 이번 발표를 두고 "정부의 밸류업 요구에 최소한으로 화답하는 시늉만 하는 것"이란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추상적이고 모호한 밸류업이란 단어로 포장된 전략이 투자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지는 따져봐야 한다. 현재는 정치권을 중심으로 해당 논란에 집중하는 움직임도 나타나지만, 산업적으로 탄력을 받고 있는 대체불가능한 그룹들이 정치권과 정부, 금융당국과 투자자들의 눈치를 살필지는 지켜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