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수금융 5%대, 재건축 사업대출 4%대 금리도
먼저 움직인 채권시장, 증시도 금리 인하 기대
금리 인하 추세 이어갈 환경 될 것인지가 관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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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자본시장 관계자들이 지난 수년간 가장 큰 어려움으로 꼽은 것은 금리다. 2022년 이후 조달 금리가 올라가고 투자자들의 기대 수익률도 높아지며 거래가 이뤄지기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M&A나 실물 거래, 주식 투자 할 것 없이 실익이 크지 않았기 때문에 거래에 나서기보다는 관망하려는 움직임이 많았다.
최근 분위기는 달라지고 있다. 당초 시장의 바람보다는 시점이 늦어졌지만 조만간 금리 인하 주기에 진입할 것이란 기대가 많아지고 있다. 미국은 연내 금리 인하가 기정사실화했다. 신중론을 펴온 연방준비제도(Fed)가 하반기 중 금리 인하에 나설 것이 거의 확실시된다. 매파(통화긴축 선호)에서도 금리 인하를 시사하는 발언이 나온다. 금리 인하 자체보다는 횟수가 더 주목받는 모습이다.
아시아에서는 한국이 가장 먼저 미국의 뒤를 따르게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르면 10월 이후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도 점쳐진다. 이에 앞서 22일 중국은 기준금리 성격을 갖는 대출우대금리(LPR)를 0.1%포인트 내리며 선제 대응에 나섰다. 국내에서도 금리 인하에 먼저 대비하려는 움직임이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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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 시장의 주요 지표 중 하나인 인수금융 금리는 하락세다. 2022년 하반기 이후 10% 이상을 주고도 인수금융을 일으키기 어려웠지만 작년 하반기엔 8% 안팎으로 내려왔다. 올해 들어서는 6%대 금리가 많은데 최근엔 5%대 조건도 속속 나타나고 있다. 최근 진행 중인 DN솔루션즈와 DIG에어가스의 조단위 인수금융 리파이낸싱의 차입 금리는 각각 5.3%, 5.7% 수준으로 거론된다. 산업은행이 제공하기로 한 에코비트 매도자금융도 5% 후반대다.
은행의 경우 통상 조달 금리에 2% 이상을 가산해야 손익분기점을 넘는 것으로 본다. 최근 은행채(AAA) 5년물 금리가 3.3% 수준을 오가는 점을 감안하면 5%대 금리의 리파이낸싱 거래는 역마진이거나 먹을 것이 거의 없다. 차입 만기가 짧거나 인프라성 투자로 안정성이 높다는 점을 감안해도 금리가 낮다. 금리 인하 기대감이 먼저 반영된 거래라는 평가가 나온다.
한 M&A 자문사 관계자는 “그간 높은 시장금리 때문에 M&A 시도 자체가 드물었지만 이제는 금리 인하 기대감이 커지면서 물밑에서 거래 시도 움직임이 많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금리 영향이 컸던 건설 시장에서도 변화의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사업비 10조원에 이르는 반포주공 1단지 1·2·4주구 재건축사업 수주를 노리고 있는 현대건설은 최근 조합에 대한 사업비 대출 금리로 4.8%를 제시했다. 사업비 대출이 5% 밑으로 떨어진 것은 이례적이다. 기존에 검토하던 금리는 5.3%였다. 금리 인하 및 주택경기 활성화 기대감이 영향을 미친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자금을 확보해야 하는 쪽에서도 금리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조금만 금리가 높아도 손을 내젓고 있다. 최근 한 외국계 크레딧 펀드 운용사는 10% 중후반대 수익률을 제시했지만 기업의 외면을 받기도 했다. 고금리 영업에 집중하는 메리츠증권도 최근 투자처를 찾기 어려워지면서 수익률 목표치를 낮추는 모습이다.
주식 시장 역시 금리 인하에 촉각을 기울이고 있다. 최근 미국 대선을 둔 불확실성이 커지며 각국 증시가 주춤하고 있지만 이전 수개월 동안에는 완만한 상승세를 이어갔다. 미국 머니마켓펀드(MMF) 자산 규모는 6조달러 이상으로 최대치를 경신 중이고, 한국 MMF 역시 200조원 이상 규모가 유지되고 있다. 증시 부진의 영향이지만 반대로는 금리만 인하되면 이들 자금이 증시로 쏟아져 들어올 가능성이 있다.
올해 증시에선 현대마린솔루션 외 대어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하반기 금리 인하가 이뤄지면 케이뱅크, LS이링크 등 대어급 기업들의 상장(IPO)도 보다 수월하게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최근 뱅크오브아메리카(BofA)가 IPO 전문 인력을 보강한 것처럼 하반기 증시에 기대를 건 행보도 나타나고 있다.
금리에 민감한 채권 시장은 금리 인하를 선반영한 모습이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중 채권형 펀드에는 15조8000억원의 자금이 순유입됐다. 그 중 국내 채권 투자 펀드에 순유입된 자금은 14조4000억원이다. 채권형 공모펀드에선 거래가 용이하고 판매보수가 낮은 ETF의 성장세가 두드러졌다. 채권형(국내) ETF의 순자산총액은 2022년말 12조3000억원에서 작년말 2023년 23조3000억원, 올해 6월말 28조9000억원으로 늘었다.
이런 움직임들은 결국 금리 인하 이후의 성적표를 기대하기 때문인데 그 효과가 어느 정도가 될지는 미지수다. 채권 시장의 경우 단순한 기대를 넘어 이미 세 차례 인하 전망을 모두 반영한 수준이란 평가가 나온다. 올해 반짝 인하에 그치지 않고 내년 이후에도 꾸준히 금리를 낮춰갈 수 있느냐가 관심사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하반기 미국 기준금리 인하가 확실시되면서 기대치를 다소 과하게 반영하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며 “내년 이후 추가로 금리를 내릴 상황이 되지 않으면 먼저 움직인 곳들이 얻을 것이 많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