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츠 따라가다 가랑이 찢어질 판"...눈높이 높아진 주주, 난감한 은행지주
입력 2024.07.25 07:00
    메리츠, 주주환원 의지 강력…최대수혜자는 대주주
    메리츠의 공격적인 주주환원에 난감한 은행권(?)
    당국의 보수적 기조 그대론데…주주 눈높이 높아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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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어닝 서프라이즈(시장 기대치 이상의 실적)가 아니라, '주주환원 서프라이즈'가 핵심 변수가 됐다." (한 금융지주 관계자) 

      최근 메리츠금융지주의 주주환원책이 업계 안팎서 좋은 평가를 받으면서 은행 중심 금융지주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오너'가 주주환원책의 최대 수혜자인 메리츠와 같은 파격적인 주주환원안을 시장에 제시하긴 어려운 까닭이다. 그럼에도 불구, 이미 높아진 주주들의 눈높이를 맞추려면 무리를 할 수밖에 없을 거란 분석도 나온다. 

      상반기 실적 시즌이 진행 중인 가운데, 은행주 투자자들의 모든 이목은 주주환원에 쏠려있다. 기업 밸류업 정책에 힘입어 주가가 대폭 상승했는데, 이 모멘텀을 유지할 수 있을지가 관심사다. 은행지주 내부에선 어떻게 하면 높아진 눈높이에 부응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분위기다.

      메리츠금융지주가 적극적으로 주주가치 제고에 나서고 있다는 점을 신경쓰지 않을 수 없다는 분석이다. 메리츠는 2025년까지 연결 기준 당기순이익 대비 50%를 주주환원하겠다고 방침을 밝히는 등 주주친화적인 정책을 펴고 있다. 총주주환원율(TSR)을 기준으로 주가수익비율(ROE) 등 경영 상황에 따라 주주 맞춤형 환원책을 준비하겠다는 실천방안도 내놨다.

      문제는 은행지주들이 메리츠와 같은 수준의 주주환원 정책을 펼치기 어렵다는 점이다. 금융당국의 엄격한 감독과 규제로 인해 은행지주들의 주주환원에는 뚜렷한 한계가 있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예컨대 메리츠의 지난해 총주주환원율은 51%에 달했는데, 은행지주의 경우 40%가 상한선일 것이란 시각이 많다. 은행주 중 주주환원율 1위인 KB금융지주의 올해 환원율은 37.5% 수준으로 전망된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은행지주들이 과도한 배당을 실시할 경우 외국인 투자자들에 의한 자본 유출 우려와 건전성 훼손 논란에 직면할 수 있다"라며 "금융당국이 은행들 재무건전성 관리에 신경쓰고 있어 메리츠와 같은 공격적인 주주환원 정책을 펼치기는 어려운 실정"이라고 말했다. 

    • 메리츠는 주주환원이 최대주주의 지배력 강화로 이어지기 때문에, 적극적인 정책을 펼 유인이 크다는 분석이다. 

      메리츠의 최대주주는 조정호 회장이다. 메리츠는 시가총액이 PER 10배가 될때까지 자사주를 매입·소각하고 이후 현금 배당을 늘리겠다고 했는데, 주식 수 감소로 최대주주의 지분은 늘고 조 회장 몫의 배당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조 회장은 메리츠지주의 자사주 매입소각을 통해 2016년말 67% 수준이던 지분율을 76% 가까이 끌어올렸다. 이를 통해 화재ㆍ증권 합병 후에도 46%대 지분율을 유지했다. 이후에도 같은 방식으로 현재 지분율이 51%까지 높아진 상태다. 2023년 조 회장은 배당금 2307억원을 수령해 이재용 삼성그룹 회장 다음으로 배당을 많이 받은 경영자였다. 배당액이 1년만에 20배 늘어나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외부 단체들이 메리츠 주주환원책에 높은 점수를 주면서 다른 은행지주들에 대한 주주들의 기대치도 함께 높아지고 있다. 최근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은 "주주평등원칙을 천명한 메리츠금융에 모든 상장사가 배워야한다"라며 메리츠의 밸류업 계획에 A+학점을 부여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KB금융이나 신한금융 같은 대형 금융지주들은 메리츠와 달리 은행 부문의 비중이 크기 때문에 주주환원 정책에 있어 제약이 많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주들의 기대에 부응해야 하는 부담이 있어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주주환원책에 있어서 KB금융은 업계 추세를 뒤따라가는 팔로워에 가깝다는 평가를 받는다. KB금융은 이번 상반기 실적발표에서 추가로 4000억원의 자사주를 매입할 것이라고 발표했는데, 메리츠를 의식한 행보라는 시각이 제기된다. 메리츠가 올초에 자사주 4000억원어치를 소각한다고 공시한 내용을 떠올리게 한다는 설명이다. KB금융이 실시하는 분기 균등 배당 역시 신한금융이 업계서 가장 먼저 실시한 바 있다. 

      다만, 신한금융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다. 신한금융은 1분기 실적발표에서 2~3분기에 걸쳐 3000억원 규모의 자사주를 매입하겠다고 알렸는데 밸류업 모멘텀을 KB금융에 넘겨줬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KB금융이 이번 실적발표에서 연간 자사주 매입 규모(7200억원)를 이미 발표했기 때문에 3분기 실적발표에서 추가 자사주 매입·소각 규모를 밝힌다 하더라도 KB금융을 따라가는 모양새가 된다. 

      무엇보다 신한·하나금융은 리딩뱅크의 자리를 KB금융에 내준 상황에서 주주환원율 경쟁을 벌이는게 적정한지에 대한 지적이 있다. 주주환원율 경쟁을 벌임으로써 외연확장의 여지가 차단될 수 있어서다. 주주환원을 늘리려면 재무적 여력을 쌓은 상태를 유지해야한다. 성장을 위한 투자에 소홀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양사는 현 재무사정상 팔로워의 입장을 벗어나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앞선 은행지주 회장들은 시장 파이를 키우는 방법론에 관심이 더 많았다. 그러나 리더십이 교체된 이후 은행지주 회장들은 주주환원에 훨씬 더 신경을 쓰는 분위기다. 과연 확장적 주주환원 경쟁이 장기적으로 은행업 성장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지는 두고 봐야할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러한 상황은 금융지주들주의 주가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메리츠 주가가 꾸준히 상승세를 보이는 반면, KB금융과 신한금융 등 은행지주는 주가는 올해서야 밸류업 모멘텀에 힘입어 급상승한 모양새다. 이전까진 상대적으로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증권가에서는 은행지주들이 주주환원책을 강화하지 않으면 주가 상승의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현재 시장에서는 실적보다 주주환원 정책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현재 금융지주 주가 흐름의 핵심 변수는 주주환원책이란 의미로 풀이된다. 

      업계에선 최고경영진 주도로 주주환원 비전을 밝히는 게 투자자들에 신뢰를 주는 한 방법일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국내 금융주에 관심 있는 해외 투자자들이 가장 먼저 요구하는 것은 CEO·CFO 등과의 만남이다. 만나서 주주환원책에 대한 명확한 비전을 보고 싶은 것"이라며 "실적발표 때마다 최고경영진이 나서서 이런 궁금증을 해소해준다면, 그 작은 차이가 퀄리티를 만들어낼 수 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