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점 셀러, 소비자, 투자자 등 피해 우려
예견된 사고, 이커머스 전반 위축 불가피
입지 회복 힘쓰던 11번가·지마켓 된서리
정부 뒤늦게 나서지만 피해 치유는 의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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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국내 이커머스사 티몬과 위메프의 정산금 지연 사태의 파장이 일파만파로 퍼지고 있다. 거래 대금이 지급되지 않으면 오픈마켓 내 판매자(셀러)와 소비자들의 피해가 불가피하고, 이는 기업가치 개선에 안간힘을 쓰던 다른 이커머스사의 경쟁력 약화로도 이어질 수 있다.
티몬·위메프, 그리고 거래처의 주주와 투자사도 난처한 상황에 놓이게 될 전망이다. 가뜩이나 소수지분 투자를 둔 시선이 곱지 않고 사모펀드(PEF)의 사회적 책임이 얹어지는 상황에서 또 하나의 달갑지 않은 부담이 더해졌다. 이번 사태는 어느 정도 예견이 됐었다는 점에서 정부 당국의 책임론도 커질 전망이다.
이달 초 위메프에 입점한 셀러들은 정산 예정일이 지나도록 판매 대금을 받지 못했다며 회사에 문제를 제기했다. 회사는 셀러들에 보상안을 제시했지만 티몬까지 정산이 늦어지며 상황은 더 심각해졌다. 결제대행사들이 두 회사의 기존 결제 취소와 신규 결제를 일제히 막음에 따라 소비자가 환불받기도 어려워졌다.
여행업계가 가장 먼저 타격을 입었다. 티몬과 위메프는 3~4월에 여행상품을 할인 판매해 유동성을 확보했었는데 실제 대금을 정산해야 할 휴가철을 앞두고 문제가 터졌다. 하나투어·모두투어 등 주요 여행사들은 25일까지 밀린 대금을 달라고 했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다.
이 외에도 티몬·위메프에 입점한 거의 모든 사업체가 도산 위기에 놓였다. 두 회사와 거래한 PEF 포트폴리오 기업들도 애꿎은 질타를 받고 있다. 티몬·위메프의 월간 거래액이 1조원 이상임을 감안하면 돌아오는 지급일마다 충격파가 더해질 가능성이 크다.
돈 없는 모회사, 자금 돌려막는 자회사…예견된 사태
티몬·위메프 사태는 어느 정도 예견된 사안이었다. 과거 쿠팡과 이커머스 빅3 경쟁을 벌일 때도 있었지만 쿠팡이 압도적 1위로 치고 올라간 후에는 근근이 명맥만 유지하는 수준이었다. 사업부 매각이나 분할 상장(IPO) 등 갖은 수를 검토했지만 큰 실효는 거두지 못했다. PEF나 벤처캐피탈(VC) 주주들에 손을 벌려 연명하는 경우가 많았다.
티몬·위메프는 특히 상품권이나 상품을 최대한 일찍 팔아 유동성을 확보하고 대금 지급 시기를 최대한 늦추는 '돌려막기' 방식의 사업 구조를 갖고 있었다. 시장 존재감이 크지 않다 보니 그렇게 뒤로 미루는 대금 규모가 해마다 늘었다. 이미 여러 해 전부터 이들 기업의 위험성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티몬은 작년 감사보고서도 제출하지 않았다.
티몬·위메프 모회사 큐텐(Qoo10)의 행보에 대한 우려도 많았다. 큐텐은 현금 동원력이 좋은 편이 아니라 M&A 때도 주식을 나눠주는 방식을 주로 활용해 왔다. 티몬과 위메프 인수도 비슷한 형태로 이뤄졌는데, 현금 대신 주식 등을 받아간 곳들은 회수 장벽이 더 높아지게 됐다. 큐텐(Qoo10)과 창업자인 구영배 대표가 백방으로 뛰고 있지만 묘수를 찾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금융사나 투자사들이 선뜻 큐텐과 자회사에 구원의 손길을 내릴 것이라 기대하긴 어려다. 중소 셀러는 물론 이에 대출을 해주고 있는 금융사들도 피해를 입을 수 있다. 금융사들은 오히려 이들 기업과 관련한 여신이 있는지 확인하느라 분주한 모습이다.
이커머스 전반 파장 확산 우려…11번가·지마켓 등 난처
국내 이커머스 플랫폼은 대부분 시장을 열어두고 셀러로부터 수수료를 챙기는 사업 구조다. 큰 자본력을 갖추지 않아도 사업을 할 수 있다. 이는 한창 시장이 성장하고 투자금이 몰릴 때는 문제되지 않았지만 유동성 거품이 꺼진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거래액(GMV)을 늘리기 위해 손실을 내는 전략을 펴기 어렵다.
이커머스 업체들은 최근 테무·알리 등 중국 상거래 업체의 자본력에 밀려 고전하고 있었다. 재무구조가 탄탄하지 않은 이커머스사에 대한 우려는 커질 수밖에 없다. 셀러든 소비자든 국내 1~2위 쿠팡과 네이버처럼 사고가 날 가능성이 적은 곳과만 거래하길 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장 상황이 애매해진 곳은 11번가와 지마켓·쓱닷컴 등이다. 이들은 위로는 쿠팡과 네이버, 아래는 중국 업체 사이에 끼어 입지가 좁아지는 상황이었다. 비슷한 시장 지위를 가진 티몬·위메프가 휘청이면 이들에도 수혜가 돌아갈 가능성도 있지만, 반대로 아직 흑자전환을 하지 못하고 있는 이들 기업에 대한 불안한 시선이 늘어날 수도 있다.
SK그룹은 재무적투자자(FI) 자금을 회수하기 위해 11번가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 신세계그룹은 지마켓과 쓱닷컴의 사업성을 회복하고 쓱닷컴 FI 자금도 돌려주기 위한 작업을 진행 중이다. 티몬·위메프 사태는 이런 일련의 작업에 긍정적이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란 시각이 많다.
SK그룹은 작년 큐텐에 11번가를 넘기려다 실사 끝에 협상 테이블을 접었다. 문어발식 확장을 거치며 큐텐의 사공은 많아졌고, 탄탄하지 못한 사업 구조에 대한 우려도 있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자칫 회사를 매각한 후 문제가 생겼다면 신뢰 회복 노력에 생채기를 입혔을 수 있다.
분주해진 정부,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 비판 불가피
정부의 발걸음도 분주해졌다. 대통령실에선 공정거래위원회와 금융당국을 통해 신속한 대응에 나서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금융감독당국은 티몬·위메프 측에 자금 조달 계획을 요청하는 한편 국내 주요 커머스 플랫폼 기업들에도 티몬·위메프와 거래 내역 및 재무 상황을 제출하라는 공문을 보내기도 했다. 조만간 정부 차원의 대응이 나올 전망이다.
정부가 나섰지만 파장을 얼마나 줄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미지급 정산금은 금융부채가 아니기 때문에 당국과 금융권에서 조율해주는 것은 한계가 있다. 앞으로 전자상거래 관련 각종 제도와 규제를 손보더라도 이미 발생한 손실을 치유하긴 어렵다. 대금을 너무 여유롭게 지급할 수 있도록 풀어놨던 것이 화를 키웠다는 비판이 나올 수도 있다.
그 과정에서 셀러와 소비자의 손실은 늘어나고, 집단 소송이 제기되면 또 한번의 대규모 금융사고가 발생할 것이란 우려는 커지게 된다. 티몬·위메프에 대한 제재를 가하고 투자사와 임원을 불러다 닦달해도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꼴이 될 수밖에 없다.
한 커머스 플랫폼 임원은 "여러 위험 신호가 있었는데 정부 부처들은 내 소관이 아니라며 거리두기에만 급급했다"며 "앞으로 제도를 개선하고 어딘가에 책임을 지우려는 작업을 하겠지만 돈을 떼인 셀러나 소비자들을 얼마나 구제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