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가 만들고 자본시장 전체가 지불하게 된 막대한 비용들
입력 2024.08.01 07:00
    취재노트
    김범수 처벌 여부 별개로 시장에 추정 불가 비용 발생
    경영진 먹튀로 官에 저당 잡히게 된 신산업 성장기회
    연이은 카카오 사태로 당국 내 혁신 세력까지 좌절
    창업가 정신 대체하게 된 신흥 IT 재벌 향한 비난여론
    책임감 보단 차익·정공법 대신 편법 골몰한 '앙팡테리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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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카카오 창업자 김범수 경영쇄신위원회 위원장이 구속됐다. 지난해 검찰 조사로 확인된 SM엔터테인먼트 시세 조종에서 김 위원장 공모 증거가 상당수 확보된 것으로 보인다. 수년간 이어진 김 위원장과 카카오의 위태로운 줄타기가 끝물에 다다른 느낌이다. 

      혐의가 입증돼 김 위원장이 처벌을 받아도 카카오와 구성원들은 남겨진 숙제를 치러야 한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하는 비용을 한국 자본시장 전체가 지속 부담해야 한다는 점이다. 지난 2년간 카카오가 만들어낸 문제는 시장 전체로 퍼졌고 서서히 스며들었다. 지금까지 지불한 비용도 만만치 않지만, 닥쳐올 청구서는 추적도 측정도 불가한 수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경영진 차익 실현 위해 진흙탕에 빠뜨린 혁신 생태계

      "톱라인 성장을 관료들에게 저당잡힌 핀테크·플랫폼 기업들이 어떻게 해외에서 상장을 하나요?" 

      2년 전 한 컨설팅펌 관계자에게 국내 비상장 플랫폼의 조달 움직임과 해외 상장 가능성을 묻자 돌아온 답변이다. 기준금리 인상으로 신산업 전반 유동성 우려가 막 고개를 들던 시점이다. 

      톱라인 성장은 매출액이나 총거래액(GMV) 등 수익성과 별개로 기업의 외형 확대를 가리키는 말이다. 통상 혁신기술을 내세워 창업한 스타트업들은 가파른 톱라인 성장을 근거로 투자금을 유치하고 수익을 끌어올려 기업공개(IPO)에 나서는 방식으로 자금을 융통해 왔다. 투자가들은 그렇게 회수한 돈을 새로운 성장 기업에 투자하며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낸다. 카카오는 이 같은 모험자본 시장에서 신화적 존재로 군림해 왔다. 

      톱라인을 저당 잡혔다는 말은 관료들이 혁신 기업에 수수료 장사 기반을 더 이상 열어주지 않는 상황을 빗댄 표현이다. 규제가 빽빽한 나라인 만큼 당국이 빗장을 열어주지 않으면 기업이 주도적으로 할 수 있는 게 없는 탓이다. 당연히 해외 시장은 물론 국내 시장에서도 가치를 인정받기 어려워진다. 이유는 다음 대목에서 나온다. 

      "카카오뱅크 거품이 터지고 카카오페이 류영준 전 대표의 먹튀 사태까지 벌어지니 그쪽은 사실상 고사 상태다. 여론은 나빠지고 돈은 말라가는데 투자를 더 받거나 상장에 나서지도 못하게 됐다. 특히 금융당국이 괘씸해 하면서 전체 혁신기업에 대한 태도가 뒤집어졌다. 류 전 대표 사례가 시중은행에서 벌어졌다면 중징계감이었다고 실무자들이 이를 갈았다"

      금융당국이 으레 한 번 쥔 규제를 놓기 싫어하고 보수적일 것만 같겠지만 그렇지 않다. 카카오뱅크 같은 인터넷전문은행이나 카카오페이 등 핀테크 기업이 출범한 배경엔 금융위원회의 상당한 지원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된다. 

      자문업계 한 관계자는 "인뱅 출범 초기 적기 자본수혈이 가능하도록 비금융주력자(산업자본) 지분 한도를 34%까지 열어주고, 이를 ICT 기업에만 허용한 것도 반발을 무릅쓰고 상당한 특혜를 준 것이다. 오너 대기업 그룹사 중에선 카카오그룹이 유일하게 이 모든 수혜를 골고루 누린 케이스다"라고 전했다. 

      당국에서 보자면 시중은행이나 산업자본 등 기득권이 기울어진 운동장이라 볼멘소리를 퍼부어도 꿋꿋하게 밀어붙인 결실이 카카오였던 셈이다. 

      그러나 진짜 결실을 누린 건 따로 있었다. 겹치기 상장으로 단기 차익을 듬뿍 누린 카카오그룹과 '깐부' 격인 투자사, 그리고 주식매수선택권(스톡옵션)을 행사한 일부 경영진들이다. 우려 속에 규제 빗장을 풀고 특별법까지 제정해가며 힘을 실어준 당국 실무자들의 입장이 전과 같을 리 만무했다. 

      후폭풍은 국회에 표류하던 전자금융거래법(전금법) 개정안이 끝내 좌초하며 시장 전체로 확산하게 된다.

      "은행업 라이선스를 취득한 카카오뱅크는 모르겠지만 카카오페이는 물론 토스부터 다른 핀테크 업체들까지 앞으로를 낙관하기 어렵다. 유료 서비스에 우호적이지 않은 한국에서 이자수익 없이 수수료만으로 사업을 키우는 건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금융위에서 일찌감치 전금법 개정까지 의욕적으로 추진한 건데, 이것도 공중분해됐다. 좌절한 실무자들은 아예 자리를 비워버렸다"

      자문기관에서 카카오그룹에 합류한 내부자의 전언이다. 실제로 먹튀 사태 이후 금융위에선 카카오뱅크를 비롯한 인터넷은행에 중저신용 대출 비중을 끌어올리라는 무리한 숙제까지 내줬다. 상장으로 체급을 키운 카카오뱅크를 제외한 케이뱅크와 토스뱅크는 1조원 남짓한 자본력 탓에 영업지형의 절반 가까이를 포기하고 발만 동동 굴러야 했다. 

      전금법 개정이 가로막히고 민간 기업으로 자리를 옮긴 인사에게 더 구체적인 정황을 물었다. 

      "전금법 개정안은 금융위 시절 유일하게 통과시키지 못한 아픈 손가락이다. 비은행 금융사들은 물론 여러 혁신기업이 경쟁할 수 있도록 새판을 짜려던 건데 IT 재벌 만드는 법이라고 반대가 거셌다. 마지막엔 한국은행까지 핀테크 등 신산업의 금융결제망 참여를 반대하며 대립각을 세우더라. 결국 무산됐다"

      해당 개정안엔 핀테크·플랫폼 기업을 비롯해 전자금융거래가 필수적인 신산업 전반의 지급결제 비용 부담을 줄여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현행법에선 이들이 은행 계좌를 거쳐야만 결제망에 참여할 수 있어 수수료를 물면서도 사업 확장에선 제약을 받아야 한다. 당국 실무자들은 물론 수많은 핀테크 업체부터 비은행 금융사들이 벽에 가로막힌 것이다. 일각에선 중앙은행인 한은까지 기득권 보호에 동참하며 혁신 인프라 구축을 막아서느냐는 비판도 나왔다. 

      카카오 이후 '신흥 IT 재벌'로 변질된 창업 신화 

      그러나 여기서도 일련의 카카오 사태가 상당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파악된다. 종전 전금법 개정안부터 작년 은행 제도개선 태스크포스(TF)까지 자문을 담당한 국책연구기관 한 인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결제망은 한국은행이 총괄하는 국가 핵심 인프라다. 소규모 라이선스로 결제망을 열어주면 핀테크들이 수신 기능을 탐내서 줄줄이 달려들텐데, 한 곳이라도 사고를 치면 대참사다. 카카오뱅크, 카카오페이가 상장하면서 어떻게 하는지를 봤지 않나. 어린애들에게 폭탄 쥐여주는 꼴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당시 고위 관료들 눈에는 카카오와 같은 신흥 IT 재벌이 기존 재벌들에 비해 사고 칠 확률이 곱절은 된다는 시각이 상당했다. 재벌 2~3세들은 최소한 가문 이름에 먹칠하지 말아야 한다는 압박이라도 받는다" 

      물론 전금법 개정을 둔 각계 잡음이 복잡했던 만큼 이 모든 책임을 카카오에만 물을 수는 없다. 고사 단계의 스타트업 중 당초 역량이 부족했던 곳도 적지 않아 요지부동 규제만을 탓하기도 어렵다. 금융당국 내에서도 일련의 카카오 사태나 선거 정국에 따라 입장이 오락가락하는 관료 사회를 지적하는 목소리를 확인할 수 있었다. 

      금융위 출신 한 관계자는 "업력이 짧은 핀테크나 IT 재벌 등 신산업에 결제망 참여 길을 터주는 위험성을 모르지 않는다. 연이은 카카오 사태로 관료들의 몸이 굳어질 만도 했다. 그러나 새로운 인프라, 시스템을 구축하는 문제를 일부 기업가의 윤리 문제와 등치시키면 곤란하다. 카카오와 같은 기업의 모럴해저드가 시스템 리스크로 번지지 않도록 하는 게 금융당국이 해야 할 일 아닌가"라고 말했다. 

      그러나 지난 2년간 카카오를 둘러싼 시장 관계자들을 접하며 체감하게 된 카카오의 그늘이 너무 짙다. 당시 시중은행을 상대할 때면 카카오가 거품을 만천하에 드러내고 핀테크들의 위세를 꺾어줘서 고맙다는 반응까지 접할 수 있었다. 대부분 카카오 경영진들이 동종 업계 종사자는 물론 그들에게 부를 안겨준 자본시장과 구성원들에게 일말의 책임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다고 입을 모았다. 

      '앙팡테리블' 몰락에 방점 찍은 김범수 구속 사태

      카카오 상장 작업에 관여한 한 투자은행(IB) 업계 인사는 "류 대표가 한 행사장에서 '우리가 한다면 하는 거다'라고 말한 일화는 두고두고 입에 오르내린다. 카카오를 고객으로 모시면서도 오만하다는 뒷말이 무성했다. 그리고 카카오페이가 상장한지 한 달여 만에 류 대표를 위시한 경영진들이 무더기로 주식을 처분해버렸다. 금융당국 관리하에 있는 금융사들은 정말 저래도 되나 하는 반응이 많았다"라고 회상했다. 

      국민연금 책임투자실 출신 한 관계자는 "경영진들이 주주는 나 몰라라 하면서 주식을 팔아버린 것만 문제가 아니다. 그들이 남긴 차익은 연기금을 비롯한 기관 호주머니에서 나왔다. 당시 기관들은 상장 직후 지수 편입 문제로 울며 겨자 먹기로 카카오뱅크나 카카오페이를 매수하며 주가를 밀어올려야 했기 때문이다. '앙팡테리블'들이 시장 왜곡을 틈타 국민 노후자산을 강탈한 것이나 다름없다"라고 분개했다.  

      앙팡테리블(enfant terrible, 무서운 아이)은 프랑스 소설 제목에서 유래한 말로 ▲특정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신인 또는 ▲남을 고려하지 않는 무책임한 사람을 가리킨다. 김범수 위원장 주변에서 수백억 자산가 반열에 오른 경영진들의 성과를 생각하면 대체로 들어맞는 듯하다. 이전까진 국내 굴지 재벌 그룹사에서도 전례가 없던 일이다. 이들이 막대한 부를 거머쥔 대가로 국민적 비난을 받게 됐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화룡점정은 벤처 신화의 상징에서 시세 조종 혐의로 구속 수감된 김 위원장이다. 

      김 위원장 혐의는 법정에서 가려지겠으나 SM엔터테인먼트 인수전을 지켜본 시장 관계자들은 어떻게 대기업이 이런 위험한 일에 뛰어들었는지 여전히 고개를 갸웃거린다. 검찰은 이미 지난해 김 위원장이 시세 조종을 용인했다는 증언까지 확보했다. 적용된 혐의가 사실로 드러날 경우 관련자들만 처벌하고 끝나지 않는다. 현재 시장은 금융당국이 카카오의 대주주 적격성 문제를 어떻게 다룰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사모펀드(PEF) 운용사 한 관계자는 "이미 카카오엔터테인먼트는 다수 투자자를 유치하고 수많은 인수합병(M&A)을 거치면서 너무 많은 이해관계자들에게 회수 보장 약속을 남발한 상태였다. 중동 자금을 끌어들여 SM엔터 인수에 나서며 레버리지는 곱절이 됐다. 그때라도 정공법을 썼으면 좋았겠지만 SM엔터의 위법한 전환사채(CB)를 인수하는 방식으로 또 편법을 썼다. 결국 이게 하이브에 참전 빌미를 제공했고, 이를 수습하느라 시세 조종까지 나섰다. 그 결과물이 김 위원장의 구속이다"라고 꼬집었다. 

      김 위원장까지 구속된 마당에 카카오 수뇌부는 셧다운 상태로 전해진다. 자연히 카카오엔터를 비롯해 아직 상장하지 못한 계열사 투자금들도 기약 없이 묶여 있어야 한다. 그만큼 시장에 돈이 돌지 못하는 것도 문제지만 유사 업종에 대한 투자 심리는 좀처럼 살아날 조짐이 안 보인다. 먹튀 사태 이후 이렇다 할 성장 동력을 찾지 못해 적자를 이어가는 다른 비상장 핀테크·플랫폼 업체에 묶인 자금도 부지기수다. 

      네이버와 함께 국내 IT 생태계를 대표하던 카카오가 위기에 처한 것 자체도 크나큰 손실이다. 더 넓게 보면 업계 최상의 인재풀 상당수가 경영진 모럴해저드로 기회를 박탈당하게 된 셈이다. 투자 업계는 글로벌 빅테크들이 인공지능(AI) 시장에 수십조원을 쏟아붓고 있는 만큼 수년 내 토종 IT 공룡들이 줄지어 자리를 내줘야 할 가능성을 따져보고 있다. 카카오는 글로벌 빅테크와 비교하면 AI 시장 대응 전략이 공백에 가깝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역시 카카오만의 위기로 끝나진 않을테다. 그만큼 카카오가 만들어낸 잠재 비용은 막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