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 투자 확대 속 고개드는 AI 과잉투자 우려
입력 2024.08.01 07:00
    SK하이닉스, 하반기까지 걱정 없어도 주가는 조정中
    AI 시대 투자사이클 달라지며 당장 공급 우려 적지만
    빅테크 AI 투자 지속 가능할까…수십조 써도 BM 모호
    엔비디아·SK하이닉스 입장료 수익 둔 갑론을박 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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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상승 기류에 올라탄 SK하이닉스가 투자를 늘리기 시작했으나 주가는 조정 국면이다. 미국 대선 전망으로 인한 거시변수 우려를 발판 삼아 인공지능(AI) 시장에 대한 갑론을박이 재점화한 탓이다. SK하이닉스는 물론 엔비디아 같은 AI 반도체 기업들이 빅테크들의 입장료를 언제까지 걷을 수 있느냐를 두고 여러 전망이 첨예하게 부딪치고 있다.

      SK하이닉스 주가는 이달 초 장중 24만8500원까지 오르며 최고가를 경신하다가 실적 발표를 기점으로 급락해 20만원 선 아래에 머물러 있다. 2분기 33% 수준의 영업이익률을 기록했고 하반기엔 과거 초호황 수준의 수익성이 예상되지만 주가는 숨 고르기에 들어선 것이다. 고대역폭메모리(HBM)와 범용 메모리 반도체 업황까지 개선한 상황임을 감안하면 이례적이란 평가다.

      자연히 연초보다 늘어난 SK하이닉스의 투자 계획이 주목을 받는다. 26일 SK하이닉스 이사회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의 첫 번째 팹(Fab)과 업무 시설 건설에 약 9조4000억원을 투입하기로 결의했다. 기존 전망보다 높아진 HBM 수요에 대응하고 중장기 수급을 감안해 클린룸 등 관련 인프라를 확보하기 위한 목적이다. SK하이닉스는 이번 용인 투자 이전에 청주 M15X 팹 투자도 발표했었다. 경쟁사에 비하면 투자 확대 기조가 뚜렷하다.

      통상 시장에선 반도체 업체의 증설에 공급과잉 우려를 나타내는 경우가 많다. 당장 수익성과 별개로 업황·수급에 따라 언제든지 실적이 변동할 수 있어서다. 그러나 이번 투자 확대에 대한 우려만으로는 현재 주가흐름을 정확히 설명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AI향 HBM 시장이 새로 개화하면서 지난 수십년 지속된 메모리 반도체 사이클의 성질이 많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증권사 반도체 담당 한 연구원은 "HBM이 D램 공급 역량을 상당부분 제한하는데 비해 범용 메모리 업황은 개선세를 보이고 있으니 지금 SK하이닉스 투자 확대를 공급과잉 우려로 보긴 힘들다"며 "그래도 반도체 시장을 떠나 전체 AI 산업의 투자와 회수 관점에서 보면 또 얘기가 달라진다. AI 칩을 파는 곳은 돈을 버는데, 사간 곳이 돈을 못 벌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SK하이닉스는 내년까지 엔비디아향 HBM 공급 계약을 거의 확정 지은 상태다. HBM은 수주 기반 사업이라 증설로 인한 위협이 제한적이다. 반면 범용 메모리 반도체는 작년부터 사실상 신규 투자가 멈춰 있었다. 내년 이후 시장에 대응하려면 지금부터 인프라를 확보해둬야 하니 이 역시 공급과잉을 걱정하긴 이른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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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전체 AI 시장에서 반도체 구매에 들어가는 자금만큼 수익이 나오지 않는 상황을 걱정하는 목소리는 커지고 있다.

      SK하이닉스 실적 발표 직전엔 엔비디아 주가가 급락했다. 엔비디아 주가도 SK하이닉스와 마찬가지로 최고가를 지속 경신하다가 최근 조정 국면에 들어섰다. 투자 업계에선 엔비디아가 올해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할 것이라 확신하고 있지만 이런 상황을 지속할 수 있을지 의문을 나타내고 있다. 지금까진 빅테크들이 AI 기술 확보를 위해 엔비디아 GPU를 무한정 사들였지만, 돈을 벌지 못하는 상태에서도 구매력을 이어갈 수 있겠냐는 지적이다.

      투자 업계 한 관계자는 "페이스북,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이 엔비디아 칩을 15만장, 20만장씩 사들이는데 수십조원을 쓰면서도 사업모델(BM)은 아직도 오리무중이다"라며 "AI 시장 초기 대응이 늦어지면 안 된다는 불안감이 여전하다 해도, GPU를 언제까지 이 속도로 구매할지는 따져봐야 하는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빅테크들 사이에선 엔비디아 GPU는 챗GPT와 같은 생성 AI 서비스를 구축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입장료로 통한다. 올해만 이들의 구매액이 200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회수 성과가 불투명하면 이런 분위기가 뒤집힐 수 있다는 것이다. 엔비디아 칩 판매에 연동된 SK하이닉스의 HBM에도 같은 논리를 적용할 수 있다. 

      전방 고객사들이 지금과 같은 기세로 엔비디아 칩을 구매하지 못할 경우 SK하이닉스는 물론 범용 D램과 낸드 시장에서도 상당한 변수가 발생한다. HBM은 수주받은 만큼 팔려나갈 예정이니 문제가 없고, 이로 인해 부족해진 범용 D램은 증설이 필요하다는 가정이 틀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작년부터 유사한 시각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지만 최근 미국 대선으로 인한 거시경제 불안으로 이런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는 상황으로 전해진다. SK하이닉스는 물론 엔비디아 모두 올 연말까지 좋은 성적을 이어가겠지만 그간 주가에 반영된 프리미엄이 적당한 수준인가 논의가 길어질 거란 전망도 나온다.

      증권사 다른 한 연구원은 "실적 전망이 확실한 상태에서 최근 조정이 과도하다는 목소리도 많긴 한데, 갑자기 GPU 판매가 둔화할 가능성을 감안하면 불가피한 측면도 있다"라며 "엔비디아와 SK하이닉스에 반영된 AI 반도체 프리미엄이 다소 현실적인 수준까지 떨어지는 구간으로 볼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