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병 비율 수정은 사실상 어려울 듯
"실패 자인하는 철회는 부담…강행시 반대 무릅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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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그룹의 지배구조개편 작업에 일단 제동이 걸렸다. 금융감독원이 계열사 분할·합병 등과 관련해 증권신고서를 정정할 것을 요구한 상태로 두산그룹은 조만간 답을 내놔야 한다.
일단 지배구조개편에 관련한 계열사 3곳의 대표이사들은 주주서한을 발표하며 강행할 의지를 나타냈는데 실제 완주여부는 좀 더 지켜봐야할 것으로 보인다.
애초 논란이 됐던 합병 비율은 차치하고, 예상 못한 난관들이 잇따라 기다리고 있는 모양새다. 그룹이 기대했던 원전 수출의 효과는 이미 사그라들었고, 최근 두산밥캣 내부에서 대규모 배임 사건까지 불거지며 이번 개편의 성공을 더욱 장담하기 어려워졌단 평가가 나온다.
현 시점에서 두산그룹이 합병 비율을 대폭 수정하는 건 사실상 어렵다는 평가다. 그렇다고 기존안을 밀어붙이기엔 주주 및 투자자들의 반발이 극대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딜레마'일 거란 지적이다.
두산그룹의 증권신고서 정정 기한은 앞으로 약 세 달이 남아있다. 금감원이 정정을 요청한 시점(7월24일)부터 정정신고서를 제출할 때까지 기존안은 효력이 정지된다. 두산로보틱스와 두산밥캣의 합병 비율은 현행법(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176조)을 따르고 있기 때문에 대폭 수정은 불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핵심투자위험 및 투자위험요소 등 일부 주주 보호장치를 추가할 가능성이 거론된다. 합병 비율 변경이 없다면 주주들의 구체적인 실익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점은 기존과 다르지 않다. 이 때문에 금융당국에서 해당 정정신고서를 최종적으로 승인할지는 미지수라는 전망이다.
두산그룹에 따르면 이번 지배구조개편작업은 ▲두산에너빌리티를 중심으로 한 친환경 에너지 사업 ▲첨단 미래기술 융합 지능형 기계 ▲반도체 및 첨단소재 사업 확대 등 3개의 사업축으로 재편하기 위한 목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이 가운데 두산밥캣의 위치를 현행 에너빌리티 자회사에서 로보틱스로 100% 자회사로 옮기는게 이번 구조개편의 핵심이다. 첨단 미래기술 융합 지능형 기계 사업을 확대하겠다는 게 명분이다.
두산그룹이 금융감독원의 제동, 주주들의 반발로 기존 계획을 철회하게 된다면 앞서 제시한 사업재편의 목적도 사라지게 된다. 때문에 철회는 선뜻 고르기 쉽지 않은 선택지로 꼽힌다.
과거 삼성그룹은 삼성엔지니어링과 삼성중공업의 합병 작업을 강행하다 주식매수청구권으로 인해 철회한 전례가 있다.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를 분할합병하려던 현대차그룹 역시 반발에 부딪혀 철회한 이후 5년이 넘게 새로운 방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두산그룹도 이번 개편 전 이런 사례들을 면밀히 검토했을 거란 게 시장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이번 지배구조개편을 철회할 경우 상당한 기회비용을 감수해야한다는 점 역시 염두에 두고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배경이다.
투자은행(IB) 업계 한 관계자는 "두산그룹이 어느 정도 반발을 예상하고 지배구조개편안을 꺼낸 것으로 보이는데, 현 시점에서 철회한다면 투자자의 눈높이에 맞지 않은 그룹의 수준을 자인하는 꼴이 된다"며 "무형의 손실을 감수하고 철회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지만 강행한다고 해서 성공을 장담하긴 어려운 상황이다"고 말했다.
주주들은 여전히 손익 계산에 분주하다.
두산밥캣을 자회사에서 떼어내야하는 에너빌리티 주주들의 선택이 지배구조개편 성공을 가늠할 시금석으로 평가받는다.
두산그룹은 에너빌리티가 밥캣을 로보틱스로 넘기는 과정에서 1조2000억원에 가까운 부채감축 및 현금유입 효과가 생긴다고 강조했다. 차입금 약 7200억원의 이관과 투자주식 처분으로 유동성(4330억원)을 확보할 수 있단 설명이다. 실제로 차입금 약 7200억원에 대한 연 이자율만 5.5~6.3% 수준으로 밥캣을 통해 확보하는 한 해 배당금의 상당 부분을 이자비용으로 쓰고 있다.
두산그룹은 분할·합병은 에너빌리티의 신용도 측면에서 긍정적인 요인이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으나, 정작 신용평가사들의 관점은 다르다.
나이스신용평가는 "밥캣을 통한 배당수익 기반이 소멸되는 점은 에너빌리티의 관점에서 볼 때 직접적인 부정적 요인에 해당한다"며 "순자산이 1조5000억원 감소한는 부분도 부채비율 상승을 초래함에 따라 재무안정성에 부정적이다"고 평가했다.
에너빌리티는 주식매수청구금액의 상한을 6000억원으로 설정했다. 당초 논란이 예상됐던 두산밥캣의 경우엔 1조5000억원으로 비교적 여유가 있지만, 에너빌리티의 주식매수청구금액의 상한은 개인 투자자들의 일부만 반대해도 충분히 넘길 수 있는 수치다. 현재 지분 5% 미만을 보유한 주주들은 전체의 63%, 약 7조5000억원 규모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
또 국민연금이 에너빌리티의 주식 약 8000억원(약 6.8%) 규모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국민연금이 보유 주식 전량에 대해 반대 의결권을 행사한다면 에너빌리티의 밥캣 분할은 실패로 돌아간다.
사회적 논란이 예상되는 자본시장의 거래의 경우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가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에 의결권 행사 방향을 일임하게 된다.일단 두산밥캣 방지법이 국회에서 발의가 됐고 점점 정치권에서 관심을 갖고 있단 점이 변수다. 이외에도 수탁위에 자본시장 전문가들이 늘어난 점 등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 지켜봐야할 것이란 평가다.
당초 체코 원전 수출 효과가 지속적으로 부각해 주가에 영향을 미쳤다면 상황이 반전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이미 에너빌리티의 주식가격은 주식매수청구가격(2만890원)을 한참 밑도는 수준으로 돌아갔다. 주가가 주식매수청구가격보다 크게 밑돌 경우 개인들의 매수 청구가 급격히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특히 블랙먼데이 당일 두산에너빌리티, 두산로보틱스의 주가는 코스피의 낙폭보다 더 큰 하락세를 기록하며 주주들의 주식매수청구 유인이 더욱 커졌단 평가를 받는다.
현 시점에선 기관투자가들 또한 '찬성(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하지 않을 경우)'에 대한 명확한 근거가 필요하기 때문에 보수적인 선택을 할 가능성이 높단 평가가 나온다. 금감원의 정정신고서 제출 요구로 두산그룹 계열사들의 주가가 큰 폭으로 하락한 것 역시 변수다. 기관투자자들 사이에선 이번 지배구조개편 추진으로 인해 두산그룹 계열사 전반에 대한 디스카운트가 가속화 할 것이란 우려섞인 목소리도 적지 않다.
국내 기관투자가 한 관계자는 "에너빌리티의 경우 원전 사업의 성장보단 지배구조개편에 따른 부작용에 더욱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주가가 매수청구가에 근접했을 땐 계속 (주식을) 보유할 명분이 있었는데 현재 주가 상황에선 매수청구권 행사를 고민해봐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