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 내 유일하게 캐즘 역풍맞은 현대모비스
영업이익 줄고, 이익률은 제자리 걸음
10년째 박스권에 갇힌 주가
사업 돌파구 못찾자 주주환원책도 무용지물
-
현대차·기아 등 현대차그룹의 주축 계열사들은 역대 최대 실적을 경신하고 있다. 영업이익·이익률 ·판매량 측면에서 나무랄 데 없는 실적을 기록하며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침체)을 비롯한 대외 변수에 따른 우려를 일부 잠재웠다.
현대모비스만이 역성장을 기록하고 있다. 세계 3대 완성차 메이커의 핵심 부품회사이자 그룹 지배구조의 최정점에 위치해 있지만 여전히 뚜렷한 사업적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단 지적이다.
현대모비스는 사업적 성장세보다 언젠가 그리고 반드시 진행될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서의 역할론에만 주목받고 있다. 거버넌스에 대한 불확실성이 걷히기 전까지 투자자들에 외면 받는 상황이 지속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현대모비스는 올해 2분기 매출액 매출 14조6553억원, 영업이익이 6361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매출은 6.6%, 영업이익은 4.2% 감소했다. 영업이익은 지난 분기에 이어 투자자들의 실적 예상치(6800억원)에 못미친 수치다.
최대 고객사인 현대차는 2분기 매출액 45조원, 영업이익 2조8000억원을 기록하며 분기 기준 역대 최대 기록을 갈아치웠고, 기아 역시 매출액(27조5700억원), 영업이익(3조6400억원) 최대 실적을 기록했지만 현대모비스는 후광효과를 누리지 못한 모습이다.
현대모비스는 이번 실적과 관련해 "전동화 부품을 공급하는 완성차 고객사의 생산 감소, 전기차 캐즘 등 친환경차 시장의 정체가 매출과 영업이익에 영향을 끼쳤다"고 설명했다.
사실 현대모비스의 역성장보다 더 주목받고 있는 요인은 낮은 수익성이다.
올 2분기 현대모비스의 영업이익률은 4.6%이다. 현대모비스는 이미 수년 전부터 고객군 다변화를 통한 이익률 향상을 꾀하겠단 의지를 발표해 왔다. 2018년 지배구조 개편 당시 주주들을 설득하는 과정에서 현대모비스 측은 영업이익률 10%를 달성하겠단 목표를 밝혔지만 2022년, 2023년 이익률은 4%에도 미치지 못했다. 지난해와 비교해 현재의 이익률은 다소 반등하긴 했지만 유의미한 수치로 보긴 어렵단 평가다.
현대차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5% 이하의 낮은 이익률은 현대모비스의 가장 고질적인 문제 중 하나"라며 "현대차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수익성 개선을 위한 확실한 방안을 찾지 못하면서 주주환원을 비롯한 유인책들이 기관 및 개인 투자자들에게 어필되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이같은 상황은 현대모비스의 주가에 반영돼 있다. 코스피가 1800선까지 밀렸던 코로나 당시를 제외하고 현대모비스의 주가는 10년째 20만원선에 머물러 있다.
국내 한 증권사 연구원은 "(현대모비스는) 하반기에 변동비(고정비, 물류비)의 부담이 상반기에 비해 가중할 것으로 보인다"이라며 "계열사 밖 수주가 급격하게 늘거나 강력한 주주환원 정책 등의 새로운 모멘텀이 발생하지 않는다면 당분간 투자 선호도는 떨어질 것"이라고 했다.
그룹 내 현대모비스의 위상은 점차 축소하는 모습이 나타난다.
최근 현대차는 현대모비스로부터 수소연료전지사업을 인수했다. 그룹 내 흩어져있던 수소사업 분야를 현대차를 중심으로 일원화하겠단 계획이다. 수소 트램과 선박, 미래항공모빌리티 등 수소모빌리티 사업을 다각적으로 넓혀 가겠다는 계획으로 수소 밸류체인의 전 과정을 현대차가 직접 관할하겠단 의지로 해석된다. 그룹의 차세대 먹거리중 하나로 꼽히는 수소 연료 사업 분야는 현대차그룹이 전세계에서 가장 앞서 있단 평가를 받고 있다.
현대모비스가 주춤(?)한 사이 정의선 회장이 단일 최대주주인 현대글로비스의 위상은 재정립되는 추세다.
현대글로비스는 M&A 부서 인력을 충원하는 한편 최근 아시아나화물사업부 인수를 추진하고 있는 에어인천에 전략적투자자(SI)로 참여할 계획도 밝혔다. 아직 현대차그룹이 항공업에 본격적으로 진출할 것으로 예단하긴 어렵지만 현대글로비스가 사업 확장에 대한 의지를 확실히 내비치고 있단 점은 명확해 보인다. 현대글로비스는 올해 최현만 전 미래에셋증권 대표이사 회장을 사외이사로 선임했는데 직간접적으로 금융업권과의 점접을 늘리려는 시도로 풀이되기도 했다.
고객군 다변화, 수익성 회복을 통한 기업가치 제고란 과제가 오랜 기간 해결되지 않으면서 현대모비스의 기업가치는 정의선 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해 인위적으로 억눌려 있단 의혹(?)을 받고 있다. 과거부터 투자자들 사이에선 만년 저평가 기업이란 꼬리표가 붙어있었으나 더 이상 저평가란 수식어가 어울리지 않는단 냉정한 지적도 나온다.
현대모비스가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현대글로비스가 다각도로 사업 확장을 꾀하고 있는 상황은 정의선 회장의 승계 과정에선 호재로 작용한다. 지난 6월 정몽구 명예회장의 신변 변화설이 시장에 돌면서 현대모비스와 글로비스의 주가는 급등락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서 두 회사의 역할론이 다시 재조명 됐단 평가를 받았다.
현대차그룹은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현대모비스' 등 순환출자 고리가 형성돼 있다. 이 고리를 끊어냄과 동시에 정의선 회장이 현대차와 기아의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정 회장이 현대모비스의 지분을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 정몽구 명예회장의 현대모비스 지분율은 7.24%인데 반해 정의선 회장의 지분율은 0.3%에 불과하다. 정의선 회장이 지분을 승계받기 전 현대모비스의 기업가치가 급등한다면 그만큼 상속에 대한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현시점을 기준으로 정의선 회장이 현대모비스의 지분을 물려받기 위해선 1조5000억원 이상의 현금이 필요하다. 정 회장은 현재 현대글로비스·기아·현대위아·이노션·현대엔지니어링과 보스턴다이내믹스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데, 이중 현대글로비스의 활용가치가 가장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글로벌 완성차 시장에서의 현대차와 기아의 위상은 점점 더 공고해지는 상황이다. 현대차그룹이 소프트웨어 중심, 자율주행 모빌리티 기업으로 변모하기 위해선 핵심 부품회사인 현대모비스의 사업적 역량이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아직까진 그룹의 위상에 걸맞는 역할을 정립하지 못했단 지적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