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억달러 투자 결정한 SGH 주가 급락
지난달 이후 AI 거품 경계론 커진 탓
투자 성적 부진도 장기화 할 가능성
'통신사·후발주자' 한계 명확 평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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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텔레콤은 2분기 실적 발표를 진행하며 글로벌 AI 기업 관련 투자 내용도 밝혔다. 작년까지는 에이닷(A.) 등 플랫폼과 서비스 설명에 주로 집중했다면 이제는 협력 성과를 더 부각하는 모습이다. 작년부터 람다(데이터센터), 퍼블렉시티(검색) 등 AI 관련 기업에 집행한 투자 금액은 3억달러를 웃돈다.
투자 중 가장 큰 것은 미국 Smart Global Holdings(SGH)다. 회사는 지난달 16일 SGH 우선주에 2억달러를 투자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SGH는 AI 클러스터 설계부터 데이터센터 구축 및 운영에 이르는 통합 AI 데이터센터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다. 미국외국인투자위원회(CFIUS) 심사 절차 중이며 연내 거래가 완료될 전망이다. 한 투자사가 이번 거래를 중간에서 조율한 것으로 알려졌다.
SK텔레콤은 SGH와 AI 데이터센터를 포함한 AI 인프라 영역 전반에서 협력하기로 했다. 기존 데이터센터 사업 역량에 글로벌 파트너십을 더해 해외 시장도 공략한다는 계획이다. SGH는 메타(Meta)를 포함한 글로벌 AI 기업의 대규모 클러스터 구축을 맡는 등 역량을 인정받고 있다.
SK텔레콤은 굵직한 투자로 AI 기업으로서의 방향성을 명확히 했다. 통신사의 이점을 앞세워 글로벌 AI 기업과 제휴를 강조하고 있다. 지난달부터는 전 피겨스케이팅 선수 김연아를 앞세운 GTAA(Global Telco AI Alliance) 광고도 진행 중이다.
현 시점에서 아쉬운 면은 있다. SK텔레콤이 투자하기 전 나스닥 상장사 SGH의 주가는 30달러 가까웠지만 계약 체결 이후 크게 하락했다. 거래 전후 주가 부침이 있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지만 계약 체결 후 한 달이 채 되지 않아 30% 이상 주가가 하락하자 회사 내부에서도 난처해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SK텔레콤은 SGH 우선주를 주당 약 33달러에 보통주로 전환할 권리를 확보했다. 이를 감안하면 회사의 기대치와 시장 가치의 괴리가 적지 않다고 볼 여지가 있다. 미국 수소연료전지기업 플러그파워와 비슷한 면이 있다. SK그룹은 2021년 플러그파워에 조단위 자금을 투입했으나 이후 주가가 꾸준히 하락하며 고전하고 있다.
최근 투자시장에서는 AI 거품 경계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지난달 이후 월가와 AI 업계 전문가들은 AI가 과도한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를 쏟아냈다. 작년 이후 자금이 몰린 AI 분야가 증시를 이끌었지만 그만큼 변수에도 취약해졌다는 것이다. 이달 글로벌 증시 급락 역시 AI 종목들이 하락한 영향이 컸다.
SK텔레콤 입장에선 SGH 투자를 전후한 기류 변화가 아쉬울 상황이다. AI가 앞으로도 각광받을 대상인 것은 맞지만 유동성이 다른 투자처를 찾기 시작하면 기업 가치가 '정상화'할 수도 있다. 사업 시너지 효과는 있겠지만 투자 손익계산서는 오랜 기간 적자 상태가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근본적으로는 SK그룹의 AI 전략에서, 나아가 글로벌 시장에서 SK텔레콤이 어느 정도 존재감을 보일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상반기 SK그룹의 경영전략회의의 핵심 화두는 AI와 반도체였다. 2026년까지 80조원을 마련해 AI와 반도체에 투자하겠다고 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도 잇따라 AI 관련 핵심 인사들을 만나고 AI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SK그룹에선 SK텔레콤과 SK네트웍스가 AI 전략의 기수 역할을 하고 있다. 올해 들어 실탄을 마련하고 있는 SK네트웍스보다는 안정적인 현금창출력을 가진 SK텔레콤의 활동 여력이 크지만 글로벌 시장에서 존재감을 키우려면 갈 길이 멀다는 평가다.
최태원 회장은 AI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의 독주가 수년간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가치사슬에서 유의미한 존재감을 보이는 것은 SK하이닉스 정도다. AI가 중요하다는 방향성엔 공감하지만 후발주자인 SK텔레콤이 글로벌 시장에서 존재감을 확보하기까진 갈 길이 멀다.
천문학적 금액이 아니고선 M&A를 시도하기 어렵고, 지분 투자나 제휴 정도로는 사업 주도권을 쥐기 쉽지 않다. 주력하는 데이터센터도 유망하고 중요한 사업 영역이긴 하지만 AI 생태계의 핵심이라기 보다는 부수적으로 필요한 설비 정도로 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 투자회사 테크 담당 임원은 "국내 통신사는 데이터센터든 텔코든 직접 주도할 수 있는 체력이 되지 않고 통신사라는 인식을 넘기 어려워 AI 경쟁력도 낮다"며 "AI에 힘을 주려 하지만 경쟁력은 높지 않고 성과 없이 비용만 나가 배당이 줄어들 수 있기 때문에 투자자도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