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PL 돌려막기'논란에 촘촘해진 감시망
정부 눈치에 가계대출 늘리는데 한계
기업대출선 우량고객 모시는 은행과 경쟁해야
'미트론' 거론할 정도로 생존전략 마련 고심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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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우리나라 제2금융권 한 축인 저축은행의 위기가 다시 찾아왔다. 주수입원이었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시장이 침체하며 역풍을 고스란히 맞았고 대출의 연체율이 급등하며 재무건전성에 노란불이 켜졌다. 저축은행들은 부실채권을 떨어내기 위해 펀드를 조성하는 등 자구안을 냈지만 금융당국은 저축은행들을 향해 더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기 시작했다.
더 이상 PF시장에서 수입을 기대하기 어려워진 저축은행들은 새로운 수입원을 찾아 나서고 있다. 그러나 정부가 가계대출 추이에 현미경을 들이대고 있는 상황에서 공격적인 영업은 사실상 어렵고, 기업대출을 늘리자니 업력이 부족할뿐더러 경쟁력을 갖추기 쉽지않은 현실적인 문제에 봉착했다.
최근 일부 저축은행들 사이에선 "육류담보대출(미트론; Meat Loan)’과 같은 고위험 상품이라도 취급해야하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로 위기감이 감돌고 있단 평가다.
육류담보대출, 일명 미트론은 수입 쇠고기 또는 돼지고기를 담보로 금융권에서 대출을 일으키는 동산담보대출을 말한다. 2010년 '동산·채권 등의 담보에 관한 법률'이 제정(2012년시행)된 이후 동산을 담보로 한 대출 상품이 속속 출시됐다. 미트론은 냉동창고에 보관한 고기를 담보로 돈을 빌려 고리를 수입하고 고기를 팔아 대출금을 갚는 방식을 반복하는 형태인데 이 역시 제2금융권을 중심으로 활기를 띄기 시작했다.
동산을 담보로 대출하는 것 자체엔 문제가 없다. 2016년 워너기업발(發) 미트론 사태, 즉 같은 고기를 담보로 여러 금융기관에서 담보대출을 받는 사례가 적발되기 전까진 미트론은 저축은행, 캐피탈, 일부 증권사들의 수익원이기도 했다. 지금은 사라진 워너기업이 당시 금융사 10여곳을 대상으로 대출받은 금액은 6000억원에 달했다. 사태는 일부 금융사의 대규모 소송전으로 비화해 사회적으로 논란이 일었고 현재는 취급하는 금융기관이 크게 줄었다.
사실 일부 저축은행들이 미트론을 거론하기 시작한 것은 실제로 해당 상품을 취급하겠단 의미보단 저축은행들이 생존 전략 마련에 사활을 걸고 있단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지난 6월 말 기준 저축은행의 연체율은 약 8.3%를 기록했다. 2022년 말 3% 수준이던 연체율은 가계대출의 부실화가 심화하면서 급격히 치솟았다. 건설 및 부동산업 분야에 대한 대출의 부실은 더욱 심각하다. 올 1분기 저축은행의 대출 가운데 연체기간이 3개월 이상인 고정이하여신은 건설업 19.8%, 부동산업은 14.3%에 달했다.
저축은행들은 연체율을 낮추기 위한 방안으로 PF정상화펀드(1차 330억원, 2차 5100억원)를 조성했다. 부실자산을 펀드에 매각함으로써 연체율과 부실률을 낮추겠단 의도였는데 금감원은 최근 해당 펀드를 통해 매각한 자산의 진성매각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진상조사에 착수했다.
이는 해당 펀드에 출자한 저축은행과 부실채권 매각을 추진한 저축은행들의 일치율이 높게 나타나면서 연체율을 낮추기 위한 '돌려막기'란 지적이 나왔기 때문이다. 이로써 저축은행들은 3차 PF정상화펀드 조성을 잠정 중단한 상태다.
한동안 돈맥경화에 시달리던 건설·부동산 분야는 최근 자금이 도는 움직임이 나타난다. 위치와 사업성을 막론하고 PF 취급을 거부했던 금융기관들은 우량 사업장을 중심으로 검토에 나서기 시작했다. PF 외에 부동산을 담보로 대출해주거나, 현금흐름이 양호한 사업장의 매출 채권을 유동화하는 움직임도 다시 활기를 띄고 있다.
하지만 이제껏 건설·부동산 분야를 주무대로 수익을 거두던 저축은행들은 재무건전성을 높이기 위해 오히려 자산을 매각하는 게 급선무인 상황이기 때문에 최근 부동산 시장에 돌기 시작한 온기는 전해지지 않는다는 평가다.
IB업계 한 관계자는 "저축은행들이 PF 취급을 아예 배제하진 못하지만 과거에 비해 검토하고 출자하는 규모가 크게 줄어든 게 사실이다"며 "금융당국에서 저축은행의 연체율을 꼼꼼하게 관리하고 있는 상황에서 당분간 적극적으로 PF, 부동산 대출에 나서긴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가계대출을 무한정 늘리고 부동산 시장에 다시 발을 들이기까진 시일이 좀 더 필요한 상황. 저축은행들은 기업금융분야에서 새로운 수익원을 찾고 있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는 평가다.
기업들은 시중은행을 통해 자금 조달이 비교적 쉬워졌다. 정부에서 가계대출을 조이면서 은행들이 기업대출을 대폭 늘리고 있기 때문이다. 4대 시중은행의 올해 상반기 원화대출금은 약 1260조원으로, 지난해 말(약 1204조원) 대비 4.4%가량 증가했다. 가계대출이 약 13조원증가할 때 기업대출은 약 43조원 늘어났다.
일부 은행들은 지난해까지 보수적 기조를 유지하며 담보자산을 크게 줄여왔는데 다시 기업들을 향한 대출을 늘리기 위해 상당히 공격적인 영업을 펼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저축은행 및 제 2금융권을 찾아야하는 기업들은 상대적으로 신용등급이 떨어지거나, 비교적 높은 이자를 감수하면서라도 자금이 필요한 곳들이다. 높은 금리라도 돈을 빌리려는 수요가 결코 적지는 않다. 그러나 저축은행이 기업 대출을 늘리기 위한 목적으로 여신 심사와 승인의 문턱을 낮출 순 없기 때문에 저축은행들이 기업대출을 무작정 늘리는데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저축은행들 내부적으로 기업의 현황을 꼼꼼히 파악하고, 현금흐름을 면밀히 읽어내 대출을 승인하고 관리할 수 있는 인력이 충분한지는 또다른 얘기다. 상당수의 저축은행들이 오랜기간 PF, 부동산의 분야에서 업력을 쌓아왔고 '관행'과 '관성'에 의해 수익을 창출해온 탓에 상대적으로 기업금융 분야에서 경쟁력을 갖추기 쉽지 않다는 냉정한 지적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