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단위 M&A 상당수는 GP 손바뀜 거래
늘어난 세컨더리 거래에 기관들 "어차피 우리돈인데"
"대형사보단 색채있는 중소·중견 운용사 찾자" 움직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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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우리나라 자본시장의 중요한 축으로 자리잡은 사모펀드(PEF)는 규모면에서 주춤할 새 없이 성장해왔다. 지난해 금융감독원에 등록된 기관전용 사모펀드는 1126개, 규모(약정액)는 약 135조원에 달했다. 코로나 시기 그 성장세가 잠시 둔화했지만 수익률에 목마른 기관투자가들의 자금은 늘 PEF로 향했고 이로 인해 사모펀드 산업은 외형성장을 지속할 수 있었다.
국내 사모펀드는 최초 기업과 산업의 구조조정을 위한 목적으로 등장했다. 사모펀드가 한국에 자리잡고 8~10년에 걸친 투자와 회수 사이클이 회전했다. 자연스레 자격과 업력를 갖춘 운용사들이 늘어났고 초기 구조조정의 목적보단 모험자본의 색채를 띤 투자자로 변모했다. 운용사의 역할과 위상이 변함과 동시에 과거 기관투자가 핵심 인사들의 면면도 바꼈다.
최근 기관들은 사이에선 시장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을 신선한 운용사를 찾아나서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안정성을 명분으로 관성에 의한 출자를 진행하던 모습에서 탈피하려는 노력이다.
이에 운용사들은 좀 더 명확한 투자전략으로 기관들에 각인시켜야 하는 과제와 핵심 기관투자가와의 네트워크를 새롭게 정립해야 하는 숙제를 안게 됐다.
최근 2~3년 기관투자가들의 안정적인 투자기조는 여느때보다 강했다. 경기침체로 주식·채권·인프라 등 분야를 막론하고 높은 수익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고위험 투자로 분류하는 대체투자분야에서 만큼은 수익률을 방어해야 한다는 목적이 뚜렷했기 때문이다.
이는 기관들의 출자사업에서도 고스란히 나타났다. 국민연금, 산업은행, 우정사업본부 등 소위 앵커 투자자들의 위탁운용사로 선정된 대형사들이 중소·중견 LP들의 출자사업에서도 자금을 받아가는 사례는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출자사업 과정에서 '골목상권 침해'란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로 글로벌 초대형 운용사가 소규모 출자사업에서 자금을 받는가 하면, 치열한 해외 펀딩 대신 국내로 눈을 돌려 자금을 받는 국내 초대형 운용사의 사례도 있었다.
물론 기관들 역시 검증된 운용사들에 자금을 맡김으로써 안정적인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다는 판단이 깔려있었다. 새마을금고 사례와 같이 출자 비위 등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선 역시나 이력이 검증되고 선정에 이견이 없는 운용사들에 자금을 맡기는 것이 안전하단 내부 인식도 있었다.
기관투자가들의 이 같은 기조는 사모펀드 운용사의 양극화를 심화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지난해 말 기준 출자약정액 1조원 기준 대형사는 37곳으로 전체 기관전용 사모펀드 시장의 약 64.6%(2021년 기준 57.6%)를 차지했다. 반면 중형사(1조원 미만), 소형사(1000억원 미만) 운용사들의 비중은 2021년 42%였으나 지난해 35% 수준으로 축소했다.
PEF 업권 내 자금의 쏠림 현상은 금융당국이 관심을 갖고 있는 화두이기도 하다.
금감원은 "GP간 경쟁 심화로 영업 환경이 악화되고 있어 GP의 영업실태 점검 등을 통해 효율적인 관리·감독 방안을 모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금융당국의 현실인식과 궤를 같이하는 기관들은 출자 전략에도 변주를 예고하고 있다. 최근엔 국민연금 출자사업에서 위탁운용사 선정이 유력한 것으로 거론됐던 운용사가 탈락한 사례가 회자되고 있다. 해당 운용사가 2년 연속 국민연금의 선택을 받지 못하면서 PEF 운용사들의 세대교체가 가속화하고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국내 한 대형 기관투자가 관계자는 "금감원의 발표와 같이 PE 쏠림 현상이 심화하고 있단 현상에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며 "내부적으로 (초)대형 운용사들 보다 중소·중견 운용사들에 기회를 줘야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세컨더리 거래, 즉 운용사들간의 손바뀜 거래가 부쩍 늘어나고 있다는 점도 기관투자가들이 새로운 운용사를 찾아나서려는 배경 중 하나로 꼽힌다. 운용사들은 새로운 펀드 조성을 위해선 기존 포트폴리오의 회수 레코드가 반드시 필요하지만 대형 M&A 거래의 경우 매물을 인수할 마땅한 주체들이 많지 않은 게 현실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조 단위 펀드를 보유한 운용사들간 거래가 늘어나게 되는데 그 펀드들의 자금 원천은 대부분 국내 기관투자가들이다.
한국에서 손에 꼽는 한 기관투자가 관계자는 "운용사들간 대형 M&A 상당수는 우리(기관)돈으로 진행되는 거래들인데 이게 맞나 하는 생각이 든다"며 "앞으론 일부 대형사에 국한한 출자사업을 다변화하려고 노력 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기관투자가 역시 "GP들 가운데 LP 자전거래하는 곳들이 있는데 이런 운용사들은 자체적으로 블랙리스트에 올리고 출자를 제한한다"며 "(우리기관은) 단순히 운용사의 이력과 IRR이 아니라 회수기간이 얼마가 걸렸고, 기관의 자금이 얼마나 수익을 냈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출자하는 전략을 세우고 있다"고 말했다.
앞으론 대형사에 집중된 출자보단 중소·중견 운용사들에 자금이 좀 더 집행되는 모습이 나타날 것으로 전망된다. 반면 엔젤 투자와 같은 극초기 단계의 출자는 당분간 활기를 띄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IT·플랫폼 기업들의 버블이 꺼지며 실체가 드러나면서 기관들 역시 유의미한 투자처로 여기지 않는 모습이다.
1000억원 미만의 중소형 거래들의 수요는 여전히 많은 것으로 파악된다. 경영권을 수반한 대규모 M&A 거래가 아니더라도 기업에 자금을 수혈하거나, 기업의 성장을 위한 유동성을 공급하기 위한 목적들의 거래도 포함된다.
최근엔 CB, EB등 메자닌증권 발행을 통한 자금조달 계획을 세우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자본시장법의 개정으로 PEF 운용사들의 다양한 투자가 가능해지면서 소수지분, 메자닌 등의 분야도 PEF의 유의미한 투자처로 자리잡았다. 사실 간혹 등장하는 대기업들의 수천억원 규모의 증권 발행 거래를 제외하면 1000억원 미만의 거래들이 대부분이다. 이런 거래들에 조 단위 펀드가 참여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기관투자가들 이 같은 움직임은 한국 시장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한 크레딧펀드의 태동과 무관하지 않다. 기관들 역시 크레딧 분야를 신설하고, 새로운 방식의 투자를 이끌어 낼 운용사들을 찾아나설 채비를 하고 있다. 운용사들 역시 기관들의 성향과 기조에 맞는 펀드레이징 전략 수립에 분주한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