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미칼에 발목 잡힌 롯데, '빚 줄이기' 급하고 '리밸런싱' 멀어보이고
입력 2024.08.27 07:00
    롯데그룹 비상경영 체제…케미칼 부진 타격
    실적 반등해도 금융비용 감당하기 쉽지 않아
    케미칼 등 자산 매각 거론되지만 실행 의문
    반전 위해 대형 거래 추진할 가능성도 거론
    빅딜 시 신동빈 회장 지지기반 약화할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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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롯데지주는 최근 비상경영 체제를 공식 선포했다. 지난달 신동빈 회장이 사장단 회의에서 위기 극복을 강조한 데 따른 후속 조치다. 하반기 경기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지주가 나서 그룹 전반의 사업을 살핀다는 것인데 여유로운 상황은 아니다. 롯데지주의 순차입금은 2019년 1조2000억원 수준에서 작년말 3조4000억원 이상으로 늘었다.

      주력 계열사들의 부진이 그룹 전반의 부담을 키우고 있다. 팬데믹 타격을 벗어나는가 했던 유통, 호텔 사업은 경기 침체 속에 다시 부진 우려가 커지는 상황이다. 사업은 주춤한데 차입금 규모는 크니 이익으로 금융비용도 내기 어려운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최근 롯데건설이 회사채 발행에 성공하는 등 건설발 위기는 사그라드는 분위기지만 근본적인 고민이 계속되는 형국이다.

      그룹의 캐시카우 역할을 해온 롯데케미칼의 부진이 뼈아프다. 업황 침체, 설비 과잉, 투자 부담 등 문제가 한꺼번에 겹치며 그룹 전반의 재무 부담을 키우고 있다. 단기간에 상황이 개선될 것이란 예상은 많지 않다. 지난 6월 신용평가사들은 롯데케미칼과 롯데지주 신용등급 전망을 일제히 부정적으로 조정했다. 롯데케미칼 역시 금융비용 부담이 적잖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롯데케미칼은 중국이 급격하게 화학 설비를 늘리는 것을 보면서도 증설을 결정했다"며 "캐시카우가 힘을 쓰지 못하니 그룹 전반이 위기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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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유화학 업계는 증설 부담 완화, 소비와 투자를 동시에 늘린다는 중국의 이구환신(以旧換新) 정책 등에 기대를 걸고 있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저성장 기조가 이어지고, 중국의 소비 회복을 낙관만 할 상황은 아니다. 업황 반등 가능성은 있지만 그 폭은 크지 않을 것이란 예상이 많다.

      롯데케미칼 투자 속도를 조절하고 자산 매각 등 다양한 자구계획을 마련하고 있다. 다만 일부 매각 거래는 좌초하거나 수년째 공회전을 거치는 등 소득이 많지 않다. 이 때문에 추가적으로 다시 활용 가능한 자산을 파악하기도 했다. 인조대리석이나 기타 인프라 성격 사업의 매각 가능성을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계열사의 자금 조달 가능성에도 시장의 관심이 모인다. 롯데칠성음료의 주류 사업은 이미 수년 전부터 사모펀드(PEF)의 구애를 받아 왔다. 한 외국계 대형 PEF는 호텔롯데의 호텔 자산에 관심을 피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상반기엔 세븐일레븐을 운영하는 코리아세븐과 KKR의 협업 가능성이 거론되기도 했다. 코리아세븐은 롯데지주의 자회사다.

      다만 이런 사업들의 매각 가능성은 불투명하다. 롯데케미칼의 인조대리석 사업은 금액이 수천억원 수준으로 재무 부담 완화 효과가 크지 않고, 건설 경기를 타기 때문에 원매자를 찾기 쉽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인프라 성격 사업은 실적이 안정적이기 때문에 지금 급하다고 내놓기 부담스럽다. 주류 사업은 신동빈 회장의 애착이 크다는 평가다.

      롯데그룹은 사업조정에 적극적이지 않은 기업 문화를 갖고 있다. 그룹 지배구조를 개편하기 위한 내부 거래는 많았지만 회사를 자의적으로 매각한 경우는 드물었다. 이훈기 롯데케미칼 총괄대표는 비핵심 사업을 정리한다는 의지가 있지만 그룹 수뇌부가 반대하면 이를 관철하기 쉽지 않을 수 있다. SK그룹 같은 리밸런싱은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한 대형 PEF 대표는 "롯데그룹의 사정이 좋지 않으니 자산을 내놓지 않겠냐는 예상이 있지만 지금까지 자의로 사업을 내놓은 적이 없었기 때문에 큰 기대는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롯데그룹이 대형 거래를 추진하지 않겠냐는 소문도 돌고 있다. 시장에선 그룹 전반의 신용등급이 점점 떨어지며 시장과 투자자들의 불안이 커지는 상황이라 반전의 계기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본업에 가까운 알짜 자산을 활용하기 위해 일본계 금융사와 논의할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롯데그룹에선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이나 잠실 롯데타운 관련 자산들이 핵심 자산으로 꼽혀 왔다.

      다만 이 경우에도 그룹 지배구조나 본업을 흔드는 방식의 결정은 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그룹의 근간이 흔들리면 일본 롯데홀딩스나 일본 종업원 지주회의 경영진에 대한 지지도 약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롯데그룹에서 위기론을 한번에 잠재울 대형 거래를 추진할 것이란 소문도 돌지만 일본 롯데 측 존재감을 감안하면 기존 사업 구조를 크게 흔드는 방식의 거래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롯데그룹 측은 리밸런싱 추진 가능성에 대해 "구체적으로 매각이 진행 중인 사안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