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쿼이아캐피탈 이어 모건스탠리도 찬물 끼얹는 중
전방 AI 투자 주춤하면 삼성전자·SK하이닉스도 영향
과거 '겨울이 온다' 사례 재현?…분위기 확 바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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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비디아의 실적 발표를 앞두고 인공지능(AI)이 이끄는 반도체 업황에 대한 신중론이 세를 불리고 있다. 폭발적으로 늘어난 인공지능(AI) 투자가 한풀 꺾이며 반도체 시장 역시 정점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는 식이다. 업황에 대한 냉정하고 정교한 평가가 늘자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주가도 전과 다른 흐름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오는 28일(현지시각) 예정된 엔비디아의 2분기 실적 발표는 하반기 시장 분위기를 가를 중요한 분기점으로 주목받고 있다. 작년부터 엔비디아가 매 분기 시장 기대치를 훌쩍 뛰어넘는 성적을 내놓으며 시중자금을 AI로 빨아들이는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실적 발표 내용에 따라 향후 증시 방향성은 물론 반도체 업황에 미칠 영향이 상당할 전망이다.
그러나 벌써부터 찬물을 끼얹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지난 20일 모건스탠리는 반도체 업황의 '고점을 대비하라(preparing for a peak)'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놨다. ▲빅테크들의 AI 서버 구축을 위한 투자지출은 내년 사상 최고치를 기록할 것이며 ▲이미 반도체 부문 성장 기울기는 완만해지고 있고 ▲업황은 조만간 정점을 찍고 내려오게 될 것이라는 내용이 담겼다. 통상 반도체 기업 주가는 업황을 6개월가량 앞당겨 반영한다. 조만간 정점을 찍을 것이라는 지적은 주가 기대치를 낮추라는 뜻으로 풀이될 수밖에 없다.
증권사 반도체 담당 한 연구원은 "AI 산업 자체에 대한 거품론이나, 비관이라기보다는 테크업종 전반에 선반영된 AI 기대감을 지적하는 것으로 보인다"라며 "지난 상반기부터 조금씩 고개를 든 AI 투자비 부담에 대한 우려와 비슷한 흐름"이라고 설명했다.
이미 모건스탠리 이전 세쿼이아캐피탈이 'AI 시장의 6000억달러짜리 질문(AI's $600B question)'이라는 보고서로 유사한 문제를 지적한 바 있다. 해당 보고서가 AI 산업에 투입된 6000억달러(원화 약 800조원)의 회수 가능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다면, 이번에는 내년을 기점으로 투자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전망이 나온 셈이다.
이 때문에 시장에선 엔비디아의 2분기 성적과 함께 드러날 3분기 이후 전망치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앞선 보고서들의 지적대로 전방 고객사들의 AI 투자가 줄어들기 시작했다면 엔비디아의 실적이나 가이던스가 이를 가장 먼저 반영하는 구조여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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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장 성장세가 주춤할 경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역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현 시점 기업의 AI 투자비 대부분은 엔비디아 칩 구매에 쓰이고, 이를 통해 양사 메모리 반도체가 직·간접적인 수혜를 받는 구조인 탓이다. 실제로 시장에선 엔비디아에 앞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 눈높이부터 낮추기 시작했다.
일각에선 올해부터 본격화한 온디바이스 AI 투자가 바통을 이어받을 것이란 기대도 내비치고 있다. 챗GPT와 같은 서버 기반 AI 투자가 줄어도 AI를 적용한 스마트폰·PC 시장이 빈자리를 메울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정작 반도체 업계 내에서도 세트 업체 전반이 온디바이스 AI 시장에서 헤매고 있어, 한때의 마케팅 수단에 그칠 수 있다는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엔비디아 실적 발표가 점점 정교해지는 신중론에 부합할 경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3분기 이후 실적에 대한 시장 분위기도 크게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모건스탠리가 수년 전 '겨울이 온다(winter is coming)' 보고서를 냈을 땐 양사가 기관투자가들과 업황을 두고 진실공방을 벌여야 했다"라며 "이번 보고서 역시 다소 예언적 성격이 짙어서, 엔비디아 실적 발표 이후 비슷한 공방이 재현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