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얼굴' 많고 '터줏대감' 보좌관들도 사라져
지금은 숨죽일 때…국회 출입 줄이는 대관들
"질의서 직접 써 달라"는 부탁은 차라리 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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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과 10월은 1년 중 기업과 금융회사의 대관 담당자들이 가장 바쁜 시기다. 국회 내에서 '대관의 시간'이라고도 불리는 이 기간 동안, 대관 담당자들은 바쁘게 300개의 의원실을 오간다. 9월은 국정감사를 앞두고 질의사항과 증인 소환 여부를 파악하느라, 10월은 국정감사에 대응하느라 밤을 새우는 일도 부지기수다.
올해도 어김없이 대관의 시간이 다가왔지만, 분위기는 예년같지 않다는 목소리가 많다. 국감이 한달여 앞으로 다가왔지만, 일부 기관에서는 아직까지도 소관 상임위원회 소속 의원실들과 '상견례'도 다 마치지 못한 것으로 파악된다. 대관 담당자들 사이에서는 "올해만큼 예측이 어려운 국감은 처음"이란 볼멘소리도 나온다.
40% 넘은 초선 비중…정무위 83%가 '새얼굴'
22대 국회에서 초선 의원의 비중은 44%다. 20대 국회(44%)와 비슷한 수준이며, 50%가 넘어섰던 21대 국회보다는 오히려 낮다. 초선 의원 비중이 특별히 높다고 볼 수 없다. 그럼에도 유독 이번 국회에 새로운 얼굴들이 많아 보인다는 목소리가 많다.
이는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야당 연합이 압도적인 과반 의석을 차지한 데 더해 과거보다 계파 공천을 통해 당선된 초선 의원의 비중이 늘어난 탓이란 설명이다. 특정 분야에 전문성을 가진 인물 대신 정치논리에 따라 발탁된 초선 의원들이 늘어나면서, 상임위 차원에서도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된다.
실제로 올해 전반기 정무위원회 24명 중 4명(국민의힘 윤한홍·강민국 의원, 더불어민주당 강훈식·민병덕 의원)을 제외한 20명이 정무위 경험이 없는 의원들로 꾸려졌다. 그마저도 금융권 전문성을 갖췄다고 평가받는 인물은 BC카드 출신으로 사무금융노조위원장을 역임한 김현정 의원 정도다.
초선의원 비중이 더 높았던 지난 국회 때와 평가도 상반된다. 21대 국회에서는 미래에셋대우 대표 출신 홍성국 의원, 카카오뱅크 공동대표 출신 이용우 의원, 한국금융연구원장 출신 윤창현 의원 등이 정무위에서 활약한 바 있다. 이 때문에 초선 비중과 무관하게 정무위의 무게감이 상당했단 평가다.
한 은행권 대관 담당자는 "초선 의원실과 이른바 '라포'(Rapport ; 친밀한 관계)를 새롭게 쌓는 것이야 신규 국회가 개원하면 통상적으로 하는 일이라 어려울 것 없지만, 금융권 베이스가 없는 의원실이 많아 이번 국감에서 어떤 부분에 초점이 맞춰질 지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실종된 상임위 '터줏대감' 보좌관들
국감에 있어 의원만큼 중요한 것이 보좌진의 역할이다. 그중에서도 의원 아래에서 실무를 '리딩'하는 4급 보좌관의 역량이 사실상 의원실의 국감을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보좌관들은 의원을 따라 상임위를 이동해 다니기도 하지만, 특정 상임위에 전문성을 갖고 수십 년간 의원실을 옮겨다니며 한 상임위에 머무는 경우도 있다.
올해는 후자와 같은 상임위 '터줏대감' 보좌관들이 예년보다 줄어들었단 평가다. 여당의 경우 의석수가 줄면서 자리를 구하는 것 자체가 어려워졌고, 야당의 경우엔 총선 승리에 일조한 '개국공신'들이 있다 보니 상임위를 고를 수 있는 여력까진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상임위 경험이 풍부해 국감 등 이슈를 이끌어갈 보좌관들이 적어지면서, 국감을 앞두고 쏟아져야 할 자료들의 수도 줄어들고 그마저도 특정 의원실에 쏠려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정무위의 경우 여당은 강민국 의원이, 야당은 강준현, 강훈식, 김현정 의원 정도가 금융권 등 피감기관에서 자료를 받아 활발하게 목소리를 내고 있다고 평가받는다.
국감 준비에 본격적으로 돌입하게 되면, '터줏대감' 보좌관이 근무하는 특정 의원실에 대한 의존도가 더 커질 것이란 관측이다.
한 국회 관계자는 "솔직히 보좌진들도 사람인데, 새로운 상임위를 맡은 첫 해부터 대단한 결과물을 낼 수는 없다"며 "그 상임위에서 오래 일한 보좌진들이 있는 의원실에서 내는 메시지를 팔로우하고, 신청하는 증인을 따라서 신청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혼란 커지는 대관들…"질의서 써달라" 부탁받는 경우도
예년 같았으면 벌써 국감 준비에 바빴을 의원실들이 아직 잠잠하면서, 대관 담당자들의 혼란도 커지는 모양새다. 대관 담당자들은 국감에 앞서 미리 의원실에서 어떠한 질의를 준비하고 있는지 파악해 대비하고, 오너 등 경영진이 증인으로 출석하는 것을 사전에 방지하는 것이 주된 역할이다.
다만 아직 의원실 차원에서도 국감 밑그림이 그려지지 않은 상황이다보니, 대관 담당자 입장에서도 이슈를 파악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이에 오히려 국회에 방문하는 횟수를 줄이는 기관들도 나온다. 괜히 눈에 띄어 관심을 받는 것 보다는, 조용히 있는 것이 더 낫다는 판단에서다.
한 대기업 계열사 대관 담당자는 "요즘 일주일에 1~2번 정도, 의원실에서 찾을 때만 국회로 출근하고 나머지는 회사에 있는 경우가 많다"라며 "어차피 지금 의원실을 찾아가도 특별히 보고할 거리가 나오는 것도 아니고, 괜히 눈에 띄었다가 관심을 받는 것 보단 차라리 숨죽이고 있는 게 더 낫다"고 말했다.
대관 담당자가 의원실로부터 '질의서를 직접 써서 달라'는 부탁을 받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피감기관이 직접 자사를 감사하는 질의서를 써서 의원실에 제출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인 것이다.
한 전직 국회 보좌진은 "상임위별로 피감기관이 수십 곳에 이르는데, 이 모든 곳을 다 스터디해서 질의서를 준비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라며 "일부 피감기관에 직접 질의서를 써서 달라고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한 기관 대관 담당자는 "사실 이렇게 질의서를 직접 써서 주는 경우에는 사전에 답변을 준비해줄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라며 "도대체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지 파악조차 되지 않는 경우가 대관 입장에선 가장 힘든데, 이런 부분에서 올해 국감이 특히 어렵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