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텔, 파운드리 재진입 3년 만에 결국 구조조정
美 지원에도 부진 지속…삼성전자에 나쁘지 않지만
추격 성과 부족한 건 마찬가지…TSMC '1강체제' 격
업계선 삼성전자 점유율 축소·美 투자도 예의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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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텔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사업 매각설이 불쑥 불거졌다. 대만 TSMC와 양강 구도를 펼쳐 온 삼성전자를 따라잡기 위한 전략이 자충수로 드러나고 있다는 평이다. 삼성전자로선 후발주자가 제풀에 지쳐 떨어져 나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TSMC와 격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어 남 일로 보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지난달 2분기 최악의 실적을 발표한 인텔은 대대적인 구조조정 작업에 돌입했다. 시장은 이미 작년부터 인텔의 실적이 바닥을 지나는 것으로 기대해왔으나 부진이 갈수록 심화하는 탓이다. 인텔은 한 달 전 직원 15%를 줄이고 배당을 중단하는 등 비용 절감 방안을 내놨는데, 이달 중 핵심 사업의 분할·매각 및 신규투자 중단을 포함해 구체적인 구조조정 계획을 내놓기로 했다.
현재 파운드리 사업의 매각 여부까지 구조조정 방안으로 거론되고 있으나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갈수록 커지는 파운드리 적자가 부진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만큼 조기에 파운드리 사업을 분할해 투자를 유치하는 등 조치가 이어질 거란 전망이다. 기업공개(IPO)를 추진하기로 했던 프로그래머블 반도체(FPGA) 기업 알테라 역시 매각을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증권사 반도체 담당 한 관계자는 "이사회 결과가 나와봐야겠지만 투자가들의 불만이 상당하기 때문에 강도 높은 대책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라며 "파운드리의 경우 자국 안보·산업정책이랑 직결돼 있어서 매각은 쉽지 않다. 분사 시점을 앞당겨서 투자자를 유치하는 등 방안이 검토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인텔의 위기를 두고 여러 분석이 오가지만 파운드리 재진입에 따른 부담을 이겨내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이 많다. 미국 정부의 반도체지원법을 발판 삼아 자체 선단공정 로드맵을 꾸려 연구개발(R&D)·설비투자에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부었지만 성과는 안 보이고, 재무 부담만 늘어났기 때문이다.
상황 자체는 삼성전자에 나쁠 것이 없다. 인텔이 2030년까지 삼성전자를 따라잡아 TSMC에 이어 파운드리 시장 2위 사업자가 되겠다고 공언해왔기 때문이다. 반도체 업계에선 인텔이 파운드리 사업을 독립된 서비스 기업으로 키워낼 경우 삼성전자의 입지가 위태로워질 수 있다는 시각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구조조정으로 삼성전자의 기술력·인력·자본력 우위가 다시금 조명 받게 된 셈이다.
그간 미국 정부가 인텔과 반도체법을 앞세워 삼성전자를 비롯한 글로벌 반도체 기업에 직·간접적으로 간섭해온 전례를 감안하면 정무적 압박이 줄어들 거란 기대도 나온다. 인텔을 지원해도 자국 반도체 제조업 부활이 어렵다고 판명날 경우 결국 대안은 TSMC와 삼성전자만 남게 된다.
그러나 파운드리 추격전에서 고전하는 상황 자체는 삼성전자도 별반 다르지 않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기준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은 11.0%로 집계됐다. 1위 TSMC와의 점유율 격차는 작년 연말 49.9%에서 50.7%로 또 한 번 벌어졌다. 시장에선 여전히 글로벌 팹리스(반도체 설계전문) 고객사들이 TSMC에만 몰리고 있어 삼성전자의 캡티브(내부 매출)를 제외하면 사실상 양강 구도로 보기도 어렵다는 반응을 내놓고 있다.
인텔에 비해 파운드리에서 공격적인 전략을 취하지 않았고, 캐시카우인 메모리 반도체 부문의 수익성이 회복하고 있을 뿐 수년째 추격 성과가 나오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업계에선 삼성전자가 마땅한 고객사 물량을 확보하기 이전에 추진한 미국 현지 신규 팹(fab) 증설 투자 역시 잠재적인 불안 요소가 될 것으로 주목하고 있다.
반도체 업계 한 관계자는 "인텔이나 삼성전자나 똑같이 관료조직화했다는 비판이 나오지만, 인텔은 이를 해소하려다가 재무 불안을 키우고 삼성전자는 가만히 있었던 덕에 현상을 유지하게 된 구도"라며 "TSMC가 아니면 파운드리 서비스를 제대로 할 수 있는 기업이 없다는 점만 재확인된 장면일 수 있다"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