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윤범 회장 잡으려 MBK 들인 영풍그룹…결단 트리거는 서린상사
입력 2024.09.13 10:27|수정 2024.09.13 10:29
    수년간 공동 경영 전선에 균열…올해 서린상사 갈등까지
    고려아연이 장씨 일가 밀어내며 돌이킬 수 없는 강 건너
    영풍, MBK와 함께 최윤범 회장 압박하고 실익도 챙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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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지난 수년간 불안한 동업 관계를 이어가던 영풍그룹과 고려아연이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의 경영 방식에 불만을 가졌던 영풍그룹이 MBK파트너스를 끌어들였고 경영권도 맡기기로 했다. 올해 들어 장세환 사장이 이끌던 서린상사의 경영권을 최 회장 측이 가져가면서 영풍그룹도 결국 결단을 내리게 됐다.

      MBK파트너스는 13일부터 다음달 4일까지 고려아연 공개매수를 진행한다. 매수 가격은 주당 66만원, 매수 지분은 최소 7%에서 최대 14.6%다. 매수 규모는 9537억원에서 1조9964억원에 이른다. MBK파트너스는 고려아연 지분 1.8%를 갖고 있는 영풍정밀도 공개매수 하기로 했다.

      현재 ㈜영풍 및 특수관계인은 고려아연 지분 약 33%를 보유하고 있다. 공개매수 성공 시 ㈜영풍과 MBK파트너스 측 지분율은 50%에 가까이 올라간다. MBK파트너스는주주간계약을 통해 ㈜영풍 및 특수관계인(장씨 일가) 소유 지분 일부에 대해 콜옵션을 받기로 했다. MBK파트너스가 고려아연의 최대주주로서 경영권을 행사하게 된다.

      ㈜영풍과 고려아연은 1949년 장병희, 최기호 두 기업인이 영풍기업사를 공동 창업했고, 이후 70년 넘게 공동 경영을 이어왔다. ㈜영풍은 장씨 일가, 고려아연은 최씨 일가가 맡는다는 전통을 유지해 왔다.

      재작년부터 장씨 일가와 최씨 일가의 사이가 틀어지기 시작했다. 2022년말 최윤범 회장이 취임한 후 고려아연은 적극적인 확장 정책을 폈는데 보수적인 장씨 일가는 이를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 최 회장은 현대차와 한화, LG 등 외부와 손을 잡기도 했는데 이 역시 장씨 일가를 자극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최윤범 회장은 우호 주주를 확보하며 고려아연 지배력을 강화하려 했고 그 과정에서 장씨 일가와 결별하겠다는 뜻도 피력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최 회장의 언행이 여러 차례 장씨 일가 측에 들어가며 감정의 골을 치유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그때까지만 해도 장씨 일가에서 대외적으로 두드러진 입장을 내지는 않았다.

      올해 들어 서린상사 경영권 갈등이 이어지며 두 집안의 갈등은 봉합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서린상사는 비철금속 해외 유통을 담당하는 회사다. 최대주주는 고려아연이지만 경영은 영풍그룹에서 맡아 왔다. 장병희 영풍그룹 창업주의 손자인 장세환 대표가 2013년부터 서린상사를 이끌어 왔다.

      지난 3월 고려아연 측은 이사회를 열어 신임 이사들을 선임하기 위한 주주총회 개최를 의결할 예정이었지만 영풍 측 인사들이 불참하며 무산됐다. 법원이 고려아연의 서린상사 임시 주주총회 개최 청구를 받아들였고, 이후 서린상사 이사회는 고려아연 측 인사로 채워지게 됐다. 서린상사 사명도 KZ트레이딩으로 바뀌었다.

      동업의 상징으로 여겨지던 서린상사마저 고려아연 측으로 넘어가면서 영풍그룹도 더 참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장씨 일가 중에서도 장세환 전 대표가 최윤범 회장에 대해 가장 불편한 감정을 갖는 것으로 알려졌다.

      영풍그룹이 MBK파트너스를 찾았고, 6월 이후 협상 조건이 오가기 시작했다. 스페셜시추에이션 성격의 거래지만 영풍그룹과 관계가 있는 김광일 MBK파트너스 부회장이 직접 이번 거래를 챙기는 것으로 알려졌다. 3개월가량 협의를 거친 끝에 영풍과 MBK파트너스가 손을 잡았다.

      영풍그룹은 고려아연 지분을 가지고 있지만 경영에는 크게 관여하지 않았다. MBK파트너스가 경영권을 행사하게 되면 고려아연 기업가치가 올라가고 배당도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어차피 최윤범 회장에 맡겨두고 실익이 없다면 기조를 달리해 MBK파트너스에 회사를 넘기는 것도 나쁠 것이 없다는 평가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최윤범 회장 입장에선 장씨 일가의 호의에 기대 경영권을 행사하는 것이 불안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움직였을 것"이라며 "서린상사 경영권 갈등이 영풍그룹이 결단을 내린 트리거가 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