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핵심 기관투자가(LP)인 공제회들이 최근 벤처캐피탈(VC) 출자사업에 잇따라 나서고 있다. 상반기 모태펀드와 성장금융 등을 제외하면 VC 출자가 전무했던 것과 상반되는 행보다. 펀딩 '가뭄'에 가까웠던 VC 업계에 '단비'가 되겠지만 대형 하우스들간의 각축전으로 흘러갈 공산이 크다는 관측이다.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과학기술인공제회와 노란우산공제는 현재 VC 블라인드펀드 출자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각각 1050억원, 1100억원 규모다. 또한 행정공제회가 이르면 이달 말 1000억원 규모의 출자사업을 공고할 계획이며, 국민연금도 하반기 중 2000억원 규모의 출자가 예정돼있다. 

이같은 분위기는 상반기와 대조적이다. 상반기 VC 출자는 정책펀드의 성격이 강한 모태펀드와 성장금융 정도에 그쳤다. 공제회 단에서도 200억원 규모의 건설근로자공제회 출자사업이 끝이었다. 해당 출자사업에서는 DSC인베스트먼트와 한국투자파트너스가 최종 선정돼 각각 100억원을 따냈다.

하반기 주요 기관투자가들의 출자가 집중되면서, 일각에선 한동안 얼어붙었던 VC 펀드레이징 한파가 수그러들 것이란 기대감이 나온다. 다만 이번 출자를 계기로 VC 업계의 '옥석가리기'가 본격화하면서 대형 하우스와 중·소형 하우스간의 격차는 더 커질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한 대형 VC 관계자는 "지금 시장이 VC 입장에서 IPO를 통해 엑시트하기 용이한 장도 아니고, 캐피탈 등 금융사들이 위험가중자산(RWA) 관리를 위해 출자에 소극적이란 것을 기관들도 다 안다"라며 "그런데도 이 시기에 출자를 한다는 것은 결국 대형 하우스 위주로 선정할 가능성이 높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업계에서는 IMM인베스트먼트와 미래에셋벤처투자, TS인베스트먼트 등 대형 하우스들이 하반기 공제회의 출자사업에 뛰어들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이들은 모두 현재 펀드레이징을 진행하고 있다. 

특히 IMM인베스트먼트의 경우 현재 3000억원 이상 규모의 펀드를 조성하고 있다. 지난 5월 산업은행이 진행한 혁신성장펀드 위탁운용사에 선정됐는데, 펀드 최소결성규모가 3000억원이라 산업은행 몫 900억원을 제외하면 2100억원 이상의 자금이 필요하다. 

IMM인베스트먼트는 하반기 공제회의 모든 출자사업에 지원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이미 상반기 건설근로자공제회의 출자사업에서 고배를 마신 바 있다. 서류접수를 마감한 과학기술인공제회의 출자사업에도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래에셋벤처투자도 2년만에 펀드레이징에 나선 상황이다. 펀딩 규모는 2000억원 이상인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해 보건복지부의 'K-바이오·백신 펀드' 위탁운용사에 선정됐지만 자금 모집에 난항을 겪으며 GP 지위를 반납한 이후 첫 펀딩인 만큼 업계의 관심도가 높다.

올해 처음으로 운용규모(AUM) 1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보이는 TS인베스트먼트는 한, 두 군데의 출자사업에 모습을 보일 수 있다는 관측이다. IMM인베스트먼트와 함께 건근공 출자사업에서 아쉽게 고배를 마셨던 TS인베스트먼트는 현재 모태펀드를 앵커LP로 하는 펀드 결성을 계획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상반기 건근공 출자사업을 따낸 한국투자파트너스와 DSC인베스트먼트 등이 재차 지원할 수도 있다. 결국 하반기 공제회의 출자사업도 결국 대형 하우스간의 각축전으로 흘러갈 전망이다.

한 중·소형 VC 관계자는 "공제회마다 GP풀을 늘리는 등 출자 의도가 명확해서 신생 하우스나 트랙 레코드가 부족한 중·소형 하우스에 기회가 돌아올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