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 파트너들이 '옹립'...자체 세대교체 어려워
안진은 CEO 측근들이 잇따라 BOP 의장으로 선임
'신사업' 내세우며 인수한 자회사 적자에도 '책임 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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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국내 주요 대형회계법인의 지배구조가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지분을 가진 파트너들의 '사원총회'가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회계법인 특성상, 최고경영자(CEO)가 우호세력을 규합해 '친정 구도'를 만들면 사실상 자정 작용을 기대하기 어려운 까닭이다.
신(新)외감법 도입 등으로 회계법인 독립성 및 투명성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늘어난 것과 대비해 여전히 후진적인 지배구조를 갖고 있다는 비판이다. 금융당국도 잇따른 잡음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모양새다.
삼정회계법인은 최근 내년 5월까지인 김교태 회장 임기를 4년 더 연장하기로 했다. 이로써 김 회장은 2029년까지 총 19년간 최고경영자(CEO)로 재임하게 됐다. 네번째 연임으로, 1958년생(현재 만 66세)인 김 회장이 71세까지 회사를 이끄는 셈이다.
삼정 측은 사원총회에서 파트너들이 '만장일치'로 김 회장의 연임을 원했다고 설명했다. 김 회장을 '만장일치'로 다시 추대한 핵심 인사들은 대부분 긴 업력을 보유한 시니어 파트너들로 파악된다. 이들이 본인들의 임기 연장을 위해 김 회장의 연임 분위기를 만들었다는 분석이다.
삼정은 올해 재무자문 대표로 김이동 대표를 선임하는 등 세대교체를 단행했다. 40대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시니어 파트너들의 거취가 큰 관심사로 떠올랐다. 현재 삼정 내부에는 김 대표보다 개업경력이 긴 파트너가 어림잡아 30명이나 된다.
만약 김 회장이 지난 6월 공언한대로 이번 임기를 끝으로 물러났다면, 이들 시니어 파트너들 역시 김 회장과 함께 물러나며 빠르게 세대교체가 이뤄졌을 것이란 관측이 우세했다. 하지만 시니어 파트너들이 연임 분위기를 조성하고, 김 회장이 '대외 불확실성'을 핑계로 임기 연장을 받아들이며 이들은 모두 최소한 4~5년은 더 회사에 남아있을 가능성이 매우 커졌다. 조직의 안정성 측면에선 긍정적이지만, 대표급만 세대교체가 이뤄진 형국이 됐다는 평가다.
다른 회계법인 관계자는 "김 회장 임기 연장으로 시니어 파트너들도 2029년까지 김 회장 임기 내내 함께할 것으로 보인다"라며 "50대 이상 시니어 파트너들이 김 회장 체제 유지를 지원하는 핵심 이유"라고 말했다.
이렇게 특정 수혜자 집단에 맞춰진 임기 구조는 회계법인 특유의 지배구조에 기인한다. 파트너십 구조로 지배구조가 이뤄진 회계법인의 경우 가장 최상단의 의사결정기구가 파트너 '사원총회'이다. 사원총회에서 CEO 임기를 연장하고, 나이 제한을 두지 않는다면 사실상 '종신제'도 가능한 상황이다.
특히나 삼정이 김 회장을 중심으로한 장기집권을 구축한 건 정치적 파벌싸움의 결과이기도 하다는 평가다. 삼정과 산동회계법인 출신 대립 속에서 산동 출신인 김 회장이 CEO에 오른 이후 내부파벌 정리를 위한 구조조정을 단행하면서, 현재의 지배구조가 이어져 오고 있다.
한 회계법인 관계자는 "산동 출신 파트너들에겐 일종의 '전리품'인만큼 내려놓고 싶지 않은 마음이 클 것"이라며 "최근에 진행된 김 회장 아들 결혼식에는 하객이 인산인해를 이뤄 서울 시내 한 특급호텔의 입구가 마비될 정도였다는 말이 회자되는데, 김 회장의 영향력을 보여준 단적인 예"라고 말했다.
이런 움직임은 빅4 회계법인에 대한 규제 당국의 압박이 강해지고 있는 글로벌 현실과도 다소 동떨어지는 결정이란 평가다. 자본시장에서 회계법인 역할이 중요해지면서, 이들에 대해 더 많은 공공성을 요구하는 게 글로벌 스탠더드가 됐다.
특정 CEO의 장기 집권은 그 자체로 지배구조에 위험한 구도이기 때문에, CEO의 임기 역시 제한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국내에서도 삼정을 제외하고는 재임 정도가 가능한 수준으로 CEO 임기 규정이 만들고 있다. 나이 제한 역시 60~62세면 CEO로 선임할 수 없게 제한하는 곳이 많다.
금융당국은 이 같은 논란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이에 대해 한 금감원 관계자는 "회계법인 CEO 임기에 대한 법이나 규정은 없지만, 이런 사례가 반복된다면 고민해봐야 할 이슈"라고 말했다.
회계법인의 지배구조 이슈는 비단 CEO의 임기 문제에만 그치지 않는다. CEO 성과평가 등 이렇다 할 견제장치가 부재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회계법인은 사원총회 하위 의사결정 기구로 이사회 격인 보드오브파트너스(BOP)가 존재하는데, BOP 의장 선출 역시 파트너 투표로 결정되기 때문에 현직 CEO 및 우호세력이 뭉치면 반대 세력을 소수파로 밀어낼 수 있는 것이다.
일례로 2020년 이후 안진의 BOP 의장은 모두 재무자문 출신이 담당하고 있다. 백인규 전 의장과 현 이종우 의장은 재무자문 출신으로, 재무자문본부장 출신인 현 홍종성 대표와 오래 손발을 맞춰온 인물들이다.
일반 기업으로 따지면 주주총회와 이사회에 영향력을 모두 행사하고 있는 셈이다. 이는 CEO 평가에 대한 투명성 이슈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일례로 안진은 지난 2023회계연도에 회계법인으로서는 드물게 적자를 기록했다. 홍 대표는 지난해 본인의 급여를 30%가량 삭감하긴 했지만, 이전보다 크게 오른 수준의 연봉 및 성과급을 수령했다.
M&A(인수합병) 실패 사례도 회자된다. 안진은 2022년 브랜드 커뮤니케이션 기업인 '피알게이트'를 인수했다. 회계법인이 홍보대행사를 인수한다는 것에 대해 당시 업계에서는 상당한 의구심이 제기됐던 바 있다.
중소기업현황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안진에 인수되기 전인 2021년 8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했던 피알게이트는 2023년 15억원의 당기순손실을 내며 적자 전환했다. 안진은 최근 상장폐지 위기 기업에 자문을 제공하는 '상장유지자문센터'를 출범하며 피알게이트를 통해 IRㆍPR 컨설팅을 제공할 것이라 밝혔는데, 위기에 빠진 관계사를 구하기 위한 무리수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수년째 적자를 지속하고 있지만 상장폐지되지 않는 '좀비 상장사'가 자본시장의 문제로 떠오르고 있는데, 안진은 그 문제기업들에게서 돈을 벌겠다고 나선 셈"이라며 "모양새가 좋지 않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안진은 피알게이트 및 부동산자문법인을 별도의 유한회사를 통해 지배하고 있다. 한국 딜로이트 지분 보유 파트너 전원이 새로 출자한 '한국딜로이트유한책임회사'를 세운 뒤, 그 아래 자회사인 '한국딜로이트에프에이리클레임원유한책임회사'를 통해 피알게이트를 인수하고 안진부동산중개 유한회사를 보유한 것이다.
한국딜로이트유한회사는 안진회계법인과는 별도의 회사로 홍종성 대표(2.83%), 피알게이트의 대표인 강윤정 대표(2.39%) 등이 주주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이를 두고 회사 안팎에서는 외부 감시를 피하기 위해 복잡한 지배구조를 갖춘 게 아니겠느냐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회사는 회계법인 독립성 이슈로 인해 이런 구조를 짰다는 설명이다. 안진 측은 "급변하는 회계업계 경영환경 속에 성장 동력을 위한 신사업 진출을 위해 지분 파트너 전원이 개별 출자해 회사를 설립한 것"이라며 "한국딜로이트유한책임회사 주요 출자자들은 해당 회사에서 월급, 배당 등을 받은 바 없다"고 해명했다.
다른 업계 관계자는 "홍 대표가 임기를 마친 후 차기 대표로 물망에 오르고 있는 사람도 재무자문 출신인 길기완 대표"라며 "전임인 이정희 대표가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2년만에 사임한 이후 감사 및 세무 부문의 세력이 약해지며 홍 대표가 견제 없는 의사결정권을 가졌다는 시각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