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만에 밸류업 지수 종목 변경한다는 거래소…'7개월' 동안 뭘 했나
입력 2024.09.30 07:00
    취재노트
    7개월 공들여 발표했는데…이틀만에 '삐걱'
    거래소가 중심 못 잡고 시장에 휘둘렸단 평
    "전형적인 '사공 많아 배가 산으로 간 케이스'"
    같은 기준 두고 다른 적용…'자가당착' 신뢰 잃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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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한국거래소가 '코리아 밸류업 지수'에 대해 조기에 종목 변경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야심차게 지수를 발표한 지 이틀 만의 일이다. 이를 두고 업계의 평가는 엇갈리는 상황이다. 선정 기준이 시장의 눈높이와 맞지 않다면 조기에 바로잡아야 한다는 평가가 있는 반면, 중심을 잡아야 할 거래소가 시장에 지나치게 휘둘린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엇갈리는 평가 속에서도 시장의 공통된 의견은 밸류업 지수가 충분한 검토 과정을 거치지 않고 공개됐다는 점이다. 업계에서는 단순히 지수에 편입된 기업 면면(面面)보다는 편입 기준 자체에 의문을 제기하는 상황이다. 이는 결국 한국거래소가 지난 7개월이란 시간 동안 무엇을 했느냐는 문제로 귀결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금융당국은 지난 2월 기업 밸류업 지원방안의 일환으로 올 하반기 중 밸류업 지수 발표 계획을 밝혔다. 기업가치가 우수한 기업을 지수에 편입시켜 투자를 유도하고, 궁극적으로 저평가된 한국 증시를 부양하겠단 목적이었다. 

      정부의 발표 후 시장에서는 갑론을박이 오갔지만, 당국이 국내 증시가 저평가된 데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해결하려는 의지를 보였다는 점 자체에 대해서는 긍적적인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밸류업 참여가 강제성을 띠지 않았고 가이드라인 역시 모호한 영역이 많았지만, 추후 밸류업 지수가 공개되면 구체화 될 것이란 기대감도 있었다.

      지난 24일 시장의 기대감 속에서 발표된 밸류업 지수는 '혹시나'를 '역시나'로 만들었다. 지수에는 이미 고평가된 기업들이 대거 포함됐고, 배당수익률이나 배당성향을 따지지 않은 단순한 주주환원 기준은 시장의 의문을 자아냈다. 통신 등 일부 업종은 포함조차 되지 않으면서, 코스피 200·KRX 300 등 기존 지수와 차별성이 돋보이지도 않았다.

      거래소는 지난 7개월간 밸류업 지수에 상당한 공을 들여온 것으로 전해진다. 정은보 신임 이사장이 취임한 이후 가장 중점적으로 추진해온 정책이 '밸류업 프로그램'이었기에 거래소의 업무도 그에 발맞춰 돌아갔다는 설명이다. 코스닥 및 유가증권시장본부도 업무의 상당 부분을 기업들의 기업가치 제고계획 참여 독려에 할애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중에서도 특히 신경썼던 것이 밸류업 지수였지만, 부담감이 너무 컸던 것으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밸류업 지수 종목 선별 기준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시장의 피드백을 반영하느라 수차례 변경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시장의 평가를 반영하는 것은 당연한 절차지만, 구심점 없이 시장에 휘둘리는 것은 다른 문제란 평가다.

      한 운용업계 관계자는 "이번 거래소의 밸류업 지수는 전형적인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가는 케이스'라고 본다"라며 "거래소가 스스로 어느 정도 중심을 잡고, 세부적인 틀에서만 업계의 의견을 반영하면서 다듬어 나갔어야 했는데 모든 의견을 다 반영하려다 보니 외려 특색이 사라져 버렸다"라고 말했다.

      현재 시장에서 가장 많은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부분은 국내 대표적인 고배당, 저평가 종목인 KB금융과 하나금융의 지수 편입 탈락이다. 이들은 당국의 제도 도입 초기부터 밸류업에 적극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계획을 공시한 곳들이다. PBR 역시 각각 0.51배, 0.4배로 저평가됐다고 평가된다. 

      그럼에도 불구, 이들은 '최근 2년 평균 PBR 순위가 전체 또는 산업군 내 50% 이내'라는 기준에 부합하지 못해 지수에 편입되지 못했다. 반면 SK하이닉스는 '최근 2년 합산 손익 흑자' 기준에 부합하지 않았음에도 포함됐다. 거래소측은 산업과 시장의 대표성 등 다양성을 고려했다는 입장이지만, 이는 스스로 만든 기준을 스스로 깨버리면서 시장의 신뢰를 잃게 했다.

      이는 거래소가 시장의 평가를 지나치게 의식한 결과라는 평가다. 당초 시장에선 밸류업 지수가 참여율이 높은 금융주 위주로 갈 것이란 비판이 많았는데, 이를 의식해 업종별 '기계적 균형'을 맞추느라 거래소가 '자가당착'에 빠지는 결과로 이어졌다는 설명이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지수 발표 전 금융주 쏠림 현상이 있을 것이란 이야기가 있었지만, 지수가 나오고 보니 차라리 금융주가 밸류업 지수를 주도하는 것이 나았을 것이란 평가가 많다"라며 "거래소가 기계적 균형을 맞추느라 일부 지주와 은행을 제외하고 다른 상장사들을 포함시켰는데, 이들이 금융주보다 낫다고 평가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거래소가 7개월 동안 준비한 '첫 번째' 밸류업 지수는 사실상 실패로 돌아가는 분위기다. 보수적인 성향이 강한 거래소가 이틀만에 올해 중으로 밸류업 종목 조기 변경을 검토하겠다고 발표한 것도 이러한 시장의 평가를 어느 정도 수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업계에서는 거래소가 시장에 설득되는 것이 아닌, 거래소가 시장을 설득하려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올해 중 종목이 변경된다고 해도 지금과 똑같은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다른 운용업계 관계자는 "거래소가 업계의 의견을 얼마만큼 수용해 종목 변경에 반영할 지는 모르겠지만, 거래소도 기준을 확실하게 잡고 시장을 설득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