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구조조정에서도 밀리는 외국계 IB...로펌·회계펌에 '추월' 허용
입력 2024.10.04 07:00
    SK·롯데·신세계 필두로 구조조정 돌입
    수수료 비싼 외국계 IB는 뒤로 밀리고
    회계법인들 IB 인력 흡수하는 등
    구조조정 업무 확대 움직임
    대형사 빈 자리 구조조정 전문 IB들도 ‘군침’
    • (그래픽=윤수민 기자) 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윤수민 기자)

      수면 아래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대기업 구조조정(restructuring) 시장의 구도가 바뀌고 있다. 과거에는 해당 업무를 외국계 IB가 독식했다면 이제는 그 자리를 로펌과 회계법인들이 차지하고 있다.

      기업의 내밀한 속내를 알 수 있을 뿐 아니라 대형 M&A 자문 기회도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대기업 구조조정은 '핵심 영업 목표'로 꼽혀왔다. 시장의 무게추가 로펌과 회계법인으로 넘어가며, 외국계IB들은 절차부심에 한창이다. 외국계 IB 인력이 회계법인으로 넘어가 해당 업무를 담당하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는만큼, 인력관리도 이슈가 됐다는 평가다.

      SK, 롯데, 신세계를 필두로 국내 대기업 구조조정 작업이 한창이다. ‘리밸런싱’이란 이름으로 구조조정 작업을 진행 중인 SK그룹은 SK이노베이션과 E&S 합병을 비롯해 SKC 자회사 매각, SK스퀘어 산하의 자회사 매각 등 사실상 전 사업부문에서 구조조정을 벌이고 있다. 구조조정 작업에서 외국계 IB 들에게 ‘과제’를 내주긴 했지만, 실질적인 일감은 삼일회계법인과 법무법인 광장에 맡긴 상태다. 

      롯데케미칼의 부진에 고전하는 롯데그룹도 물밑에서 구조조정 고민을 이어가고 있다. 대형 매각 거래가 나올 가능성도 거론됐지만 일단은 중소형 규모 거래에 집중하는 분위기다. 일본계 금융사들과 회계법인이 해당 거래 자문에 참여하고 있다. 이 역시나 외국계 IB보단 회계법인과 로펌이 주도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신세계는 유통 부문 수익 부진이 이어지면서 외부자금 조달 및 자산 매각 정리가 한창이다. 공개매수는 신한증권이, 쓱닷컴 투자유치는 광장이 돕고 있다. 현대차그룹 사업조정도 IB를 제외하고 회계법인에 일감을 주는 방향이 논의되는 것으로 전해진다. CJ올리브영 지분매각에선 상장을 맡았던 외국계 IB가 자문실적(크레딧)이라도 얻기 위해 진땀을 뺐다.

      과거 삼성과 한화는 골드만삭스·씨티증권·JP모건이 현대차는 골드만삭스, SK그룹은 UBS가 합병한 크레디트스위스 등이 사실상 ‘인하우스(사내) IB’로 불리던 시절도 있었다. 이들은 그룹의 주요 의사결정에도 관여할 정도로 오랜 친분을 다졌지만, 점점 옛말이 되어가고 있다.

      우수한 IB인력들이 대기업으로 자리를 옮겨가면서 오히려 IB보다 더 많은 경험과 역량을 가진 대기업 M&A 팀이 구성된 상황이다. 일례로 삼성그룹에는 UBS 대표였던 임병일 삼성전자 부사장이, SK그룹에선 골드만삭스 출신의 송재승 SK스퀘어 CIO 등이 활약하고 있다. 시니어급을 제외하면 M&A팀에는 기본적으로 외국계 IB에서 3~4년 경험을 한 인력들이 넘쳐난다.

      한 외국계 IB 관계자는 “이미 대기업이 M&A 업무 역량을 갖춘 상황에서 비싼 수수료를 내고 IB 하우스에 그룹의 주요 의사결정을 맡기는 일은 없어졌다”라며 “더군다나 구조조정 업무는 내부의 기밀한 내용이 노출 될 수밖에 없어서 외국계 IB에 맡기는 일이 더 줄고 있다”라고 말했다.

      대신에 회계법인들이 대기업의 파트너로 각광받고 있다. 리그테이블 1위가 이미 회계법인으로 넘어간지 몇년이 되어가고 있으며, 고착화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나 구조조정 업무는 채무재조정 등 회계실사를 수반한다는 점에서 회계법인과 함께 논의해야 할 부분이 많아지고 있다. 

      회계법인들도 이런 업무에 대응하기 위해 팀을 신설하고 인력을 충원하고 있다. 지난달 삼일회계법인은 ‘대기업 PEF M&A' 전담팀을 꾸렸다. 대기업 네트워크가 탄탄한 곽윤구 파트너가 담당하고, 씨티증권에서 한인섭 상무를 영입했다. 삼정은 양진혁 본부장이 이끄는 구조조정 전문 본부인 2본부를 확대하고 있다. 사업포트폴리오 조정 업무를 비롯해, 채권단 대응까지 대기업과 함께 논의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나 대기업 사업조정이 한 계열사만의 문제가 아니라 그룹 전반에 대한 분석을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회계법인 역할이 커지고 있다. 대기업은 사업이 국내 뿐 아니라 국외까지 펼쳐져 있고, 심지어 해외투자 한 건들이 워낙 많기 때문에 이를 일일이 분석하는 건 대기업 자체 인력만으로는 힘들다는 설명이다. 

      회계법인의 역할은 여기에만 그치지 않는다. 경영진들이 ’쉬쉬‘하는 투자 건들이나 사업 등을 점검하는 역할도 이들의 몫이다. 계열사에 맡겨 놓았으면 드러나지 않았을 부분을 발견하는게 이들의 중요한 ‘임무’(?)로 부상했다. 

      한 IB업계 관계자는 “대기업 계열사 투자건들까지 살펴보려면 상당한 시간과 인력이 투입되어야 한다”라며 “특히 대기업 해외 투자건들은 내부에서도 모르는 것들도 많다 보니 회계법인이 일일이 뜯어서 분석하는 것으로 안다”라고 말했다. 

      과거와 달라진 풍경은 국내보다 오히려 미국 등 해외에서 구조조정 전문 하우스들의 제안이 먼저 온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곳으로 라자드, 에버코어 같은 부띠끄 IB하우스가 꼽힌다. 대기업들 상당수가 코로나 시기 이후 미국에 사업장을 내거나 법인을 세운 경우가 많았다. 해당 사업에서 부실이 난 경우가 많다 보니, 이들이 구조조정 방향을 먼저 제안해 온다는 설명이다.

      비단 미국의 부띠끄만이 아니라 현지 로펌들의 관심도 높아졌다. 일례로 미국에서 국내 기업에 대한 관심은 다양한 행사로도 이어지고 있다. 뉴욕주변호사협회는 이달 서울에서 ‘글로벌 컨퍼런스’를 열고 미국 시장에서 국경간 거래에 발생할 수 있는 M&A 등 다양한 이슈에 대한 세미나를 개최한다. 2018년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행사를 개최했는데, 이번엔 글로벌 차원에서 행사를 확대했다. 과거 뉴욕남부연방파산법원장이 참석하는 등 한국 기업에 대한 관심이 반영된 행사다. 

      다른 재계 관계자는 “요즘은 미국이 국내보다 정보가 빠르다”라며 “팔아야 할 매물들도 해외에 있는 경우가 많다 보니 라자드, 에버코어 등에서 제안을 먼저 해온다”라고 말했다. 

      이러다 보니 국내에 있는 외국계 IB들은 더욱더 PEF에만 목을 맬 수밖에 없다. 그런 PEF도 최근에 추세는 매각자문을 제외하고 인수자문은 잘 안쓰는 분위기다. 

      한 외국계 IB 관계자는 “대기업 인 하우스 개념의 IB 업무는 줄어들고 대형 PEF에 선택을 받는게 점점 중요해졌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