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한화·신세계 등장에 회사채 시장 '북적'…롯데는 등급 이슈에 '멈춤'
입력 2024.10.04 07:00
    SK그룹, 6조 넘게 발행으로 작년 이어 1위
    삼성바이오 3년 만에 회사채 시장 복귀에
    한화·신세계 및 하림지주까지 수요예측 흥행
    롯데그룹은 신용등급 우려에 발행 중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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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올해 유동성 호황을 맞아 회사채 시장엔 대기업들의 발행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SK그룹이 작년에 이어 올해도 최대 발행 그룹 자리를 지키는 가운데, 삼성그룹의 회사채 시장 복귀 및 한화·신세계 등의 꾸준한 참여가 두드러졌다. 롯데그룹은 신용등급 강등 우려로 존재감이 크게 줄어들면서 대기업간 희비가 교차하는 모양새다. 

      인베스트조선이 집계한 채권자본시장(DCM) 리그테이블에 따르면 SK그룹은 올해 3분기 누적 기준으로 6조2500억원 규모의 회사채를 발행, 작년에 이어 올해도 회사채 시장에서 가장 많은 자금을 조달한 그룹으로 나타났다. 이는 2위 LG그룹(4조2100억원)을 2조원 이상 앞선 수치다. 

      SK그룹 계열사들의 대규모 회사채 발행은 그룹 리밸런싱(사업재편)과 맞물려 더욱 확대된 것으로 분석된다. SK이노베이션에 흡수합병되는 SK E&S는 채무 상환을 위해 5000억원을, 현금 유입이 없는 SK온은 공모채 3000억을 발행해 투자자금을 모집했다. 

      그외 SK리츠(3390억원), SK매직(3000억원), SK인천석유화학(3000억원), SK지오센트릭(3000억원) 등 비주력 계열사들은 대부분 모집액을 웃도는 자금을 확보했다. 중장기적으로 금리 인하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SK'라는 간판을 앞세워 조달 비용을 줄이는 효과를 낼 수 있다는 판단 하에 많은 계열사들이 모두 공모채 시장을 찾았다.  

      올 초부터 이어진 유동성 호황에 삼성그룹도 가세하는 모습이다. 그동안 풍부한 내부 유동성을 바탕으로 회사채 발행에 소극적이었던 삼성그룹은 올해부터 조달 시장에 복귀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삼성물산이 5000억원 규모의 회사채를 발행한 데 이어, 삼성바이오로직스도 4000억 규모의 회사채 발행을 추진하고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회사채 시장에 나온 것은 지난 2021년 이후 3년 만이다.

      한 투자은행(IB) 관계자는 "삼성전자의 회사채 발행 가능성도 시장에서 꾸준히 거론되는 상황"이라며 "기존의 삼성그룹이 신고서에 이재용 회장 관련 기재를 하는 것을 부담스러워해 공모채 시장을 꺼렸지만, 최근 계열사들의 대규모 설비투자 계획이 확고해지면서 언제든지 공모채 시장에 나올 수 있다는 분위기가 형성됐다"고 설명했다.

      한화그룹과 신세계그룹도 각각 2조2240억원, 1조2850억원 규모의 회사채를 발행하며 시장에서 존재감을 과시했다. 한화그룹은 방산과 에너지 부문 투자를 위해, 신세계그룹은 쇼핑몰 및 유통 사업 확장을 위해 자금을 조달했다. 

      그중에서도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수요예측에서 조단위 뭉칫돈이 쏠리며 매번 목표액의 배가 넘는 자금을 확보했다. 수출 호조와 국방 예상 확대 등으로 방산업체에 대한 기관투자자들의 선호도가 높았던 까닭이다.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합병을 앞둔 한진그룹도 회사채 시장에서 1조740억원 규모의 자금을 조달했다. 합병 과정에서 필요한 자금을 선제적으로 확보하려는 움직임으로 해석된다. 한진은 BBB+급 신용등급에도 꾸준히 수요예측에서 흥행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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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회사채 시장 호황으로 중견기업들도 조달 시장을 방문했다. 수요예측 제도가 도입된 2012년 이후 처음으로 하림지주가 공모 회사채 시장에 데뷔해 화제를 모았다. 부정적 신용 전망에도 불구하고 1000억원대 규모로 발행에 성공했는데, 리테일 투자자들을 타깃으로 한 전략이 주효했던 것으로 평가된다.

      한 증권사 기업금융부서 관계자는 "하림지주의 성공적인 데뷔는 연내 회사채 시장의 저변이 확대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며 "저신용등급 기업이라도, 초도 발행을 추진하는 중견기업들이라도 리테일에 기대어 회사채 시장에 진입 할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났다"고 말했다.

      증권가에서는 올해 연말부터 내년 연초까지는 대기업들의 회사채 발행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기준금리 인하 기대감으로 기업들의 자금조달 비용이 낮아졌고, 연초에는 기관투자자들의 신규 자금 유입으로 수요가 늘어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롯데그룹은 지주회사와 롯데케미칼의 신용등급 전망이 악화되면서 차입금 관리에 돌입한 상태다. 올해 롯데그룹의 회사채 발행은 8월 롯데리츠(2400억원) 이후로 명맥이 끊겨 있다. 이달 롯데칠성음료가 700억원 규모 발행을 준비하고 있지만, 지난해 대비 시장 내 존재감이 크게 줄어든 상황이다.

      롯데그룹은 화학, 유통 등 주력 산업의 부진으로 침체기를 겪고 있다. 시장에선 롯데케미칼의 대규모 자본확충, 그룹 차원의 대형 자산 매각이 이뤄질 가능성이 제기된다. 일부 비주력 사업부 매각, 부동산 자산 유동화 등이 우선시될 수 있다는 전망이다.  

      대형 증권사 관계자는 "일단 지주 신용등급 전망에 네거티브(부정적) 딱지가 붙어 있어 연말엔 주로 차입금 관리에 나서겠다는 움직임"이라며 "그룹사들이 회사채 조달보다는 자산 매각을 통한 현금 확보에 힘을 쓰고 있다"고 내다봤다. 

      결국 올해 회사채 시장은 SK, 삼성, LG 등 대기업 그룹들의 대규모 발행이 시장을 주도하는 가운데 중견기업들의 시장 진입 확대와 롯데그룹의 향후 행보가 주목받을 전망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현재 기업들이 발행할 수 있는 기회가 11월 중순과 12월 초 두 차례 정도 남아있다"면서 "미국 대선을 앞둔 불확실성을 감안해 기업들이 선제적으로 자금을 조달하려는 수요가 있어 당분간 발행 시장은 활기를 띨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