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기업 두산의 흔들리는 리더십…사촌 경영 기조도 막을 내릴까?
입력 2024.10.10 07:00
    취재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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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은 만 8년 이상 재임한 그룹의 역대 최장수 회장이다. 재임 기간엔 정부의 탈(脫) 원전 정책으로 전례없는 위기상황을 맞았지만, 현 정부가 들어서면서 구사일생으로 그룹을 살려낸 수장으로 기록될 것이다.

      박 회장이 언제, 어떤 방식으로 후계구도를 완성할지는 예단하기 이르다. 다만 가장 오랜기간 그룹의 회장으로 재임했고 이 기간 동안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진행한데다, 남은 사업들을 하나둘 본 궤도에 안착시킨 점을 고려하면 소임을 다하고 차기 구도를 완성해 나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그룹사 승계는 빠르고 명확할수록 경영 불확실성이 줄어든다.

      두산그룹은 대표적인 사촌경영 기업이다. 오너일가 2대~3대엔 가족회의를 통해 사촌들에게 회장직을 넘겨왔고 그 전통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룹과 계열사의 지분은 수십명에 달하는 오너일가 개인들에게 분산돼 있다.

      ㈜두산의 특수관계인 지분은 40%에 육박하지만, 박정원 회장의 지분은 7% 남짓. 회장이 경영권 지분을 바탕으로 전권을 쥐는 구조라기보단 차기 몇 년 동안 그룹을 이끌 전문 회장직(?)을 맡기는 구조에 가깝다.

      박정원 회장의 회장직 승계 당시만 해도 그 과정은 비교적 예측이 가능했다. 2016년 고(故) 박두병 두산그룹 초대회장의 5남인 박용만 회장이 박정원 회장에게 전권을 이양하면서 3세대 경영이 4세 경영으로 이어졌다. 박정원 회장은 고(故) 박용곤 명예회장의 장남으로, 박용만 전 회장의 첫 조카이다. 박용성, 박용현, 박용만 등 ‘용(容)’자 돌림의 시대의 종식, ‘원(原)’자 돌림 시대의 시작이었다.

      기존의 순번(?)대로라면 박정원 회장의 후임은 박진원(1968년생) 두산밥캣코리아(舊두산사업차량) 부회장이 유력했다. 박진원 부회장은 박용성 전 회장의 장남으로, 박정원 회장의 사촌동생이다. 현재는 ㈜두산의 지분율 역시 3.6%로 비교적 적지 않은 비중을 보유중이다.

      박진원 부회장은 현재 두산그룹 오너일가가 경기도 광주 선산을 관리하기 위해 설립(2022년)한 ㈜원상의 대표이사로 등재돼 있다. 원상이란 회사이름은 오너일가 4대 돌림자인 ‘원’과 5대 돌림자인 ‘상’에서 착안했다.

      오너일가 구성원으로서의 위치와 무게감과는 달리, 그룹 내에서 사업적으로 두각을 드러냈다고 보기는 어렵다. 박진원 부회장은 2018년 두산메카텍 부회장에 오르며 경영전면에 나섰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나타내진 못했다. 

      산업용 보일러를 제조하던 두산메카텍은 2020년 ㈜두산이 현물출자 방식으로 두산에너빌리티(舊두산중공업)에 넘겼고, 2022년 범한산업에 경영권이 넘어갔다. 사실 박진원 부회장은 현재 두산밥캣코리아에서 미등기 임원으로 재직중인데, 과거 두산메카텍, 두산산업차량 부회장으로 재직할 당시에도 등기 임원직은 맡지 못했다.

      물론 회장직은 전적으로 가족회의에서 최종 결정이 내려지나, 과거 박진원 부회장이 불미스런 사건들에 자주 연루됐다는 점을 비쳐보면 섣불리 후계 구도를 단정하긴 어렵단 평가도 있다.

      사업적으로만 비쳐본다면 박지원 두산에너빌리티 회장(㈜두산 부회장)도 유력한 후보중 하나로 거론된다. 박지원 회장은 박정원 회장의 동생, 고(故) 박용곤 명예회장의 차남이다. 

      두산에너빌리티가 지금이야 위상이 다소 줄어들어 그룹의 완벽한 핵심으로 보긴 어렵지만 오랜기간 그룹의 중추를 맡은 핵심이었다. 박지원 회장(1965년생)은 2001년 현재 두산에너빌리티의 전신인 한국중공업 인수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고 줄곧 두산에너빌리티와 그룹에서 커리어를 쌓아 영향력을 키워왔다.

      실제로 박지원 회장은 그룹 회장에 버금가는 외부 활동, 내부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후계구도에서 가장 유력하게 거론되는 박지원 회장, 박진원 부회장 외에도 박용현 두산연강재단 이사장의 장남 박태원 한컴 부회장도 오너가에서 존재감이 적지 않다. 박태원 부회장 역시 가족기업 원상의 사내이사로 등재돼 있다. 박태원 부회장의 동생 박인원 전 두산에너빌리티부사장은 두산로보틱스 사장은 그룹에서 주력 사업으로 키우고 있는 두산로보틱스로 자리를 옮겨 사장으로 승진하며 존재감을 나타내고 있다.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두산그룹 오너일가의 후계구도에 대한 고민은 최근 두산그룹 지배구조개편에도 뭍어났다. 두산에너빌리티의 독립과 두산밥캣을 활용한 두산로보틱스의 성장 등을 전제로 제시한 것을 비쳐보면 추후 오너일가의 경영권 분리, 더 나아가 계열분리까지 염두에 둔 포석이란 해석이 가능하다.

      물론 현재 이 개편안은 투자자들의 극심한 반발, 금융당국의 제동으로 잠정 보류된 상태이다. 그룹은 두산에너빌리티의 원전 사업이 정상화한다면 주주들이 적극적으로 동의할 것으로 믿었고 또 외국인이 대부분인 두산밥캣의 주주들이 주주가치 훼손이란 화두를 던지며 반발할 것이라고 예상치 못했을 것이다. 정부의 전폭적인 지지로 원전사업을 궤도에 올려놓은 마당에 금융당국이 제동을 걸 것이라곤 상상도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산그룹이 지배구조개편을 끝까지 밀어 부치겠단 의지를 나타낸 것은 어찌보면 불안정한 후계구도를 정리하고, 또 그 작업이 박정원 회장의 마지막 치적으로 기록될 것으로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다만 그 계획이 차질을 빚으면서 후계 구도의 불확실성도 커지게 됐을 것으로 보인다.

      두산그룹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돈으로 메길 수 없는 손실을 입었다. 투자자들은 두산그룹이 언제든 최상단의 이해관계에 의해 그룹의 기조와 방향성이 바뀔 수 있단 사실을 인지하게 됐다. 예측 불가능한 기업은 돈을 벌지 못하는 기업보다 위태롭다.

      두산그룹의 대권은 언제든 바뀔 수 있다. 결정은 가족회의의 몫이지만, 새로운 그룹 경영인에 대한 투자자들의 검증은 더욱 엄격하고 까다로워질 가능성이 높다. 과거의 100년 기업이 미래의 10년 후에도 건재할 수 있을지, 그 무게감은 새로운 오너 경영인에 더 크게 느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