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 분쟁, 애매한 태도에 수 천억원 기대수익 날린 국민연금
입력 2024.10.21 07:00
    단순투자기업으로 분류한 고려아연
    국민연금 지분율 유지하며 공개매수 불참
    대통령 1% 수익률 제고 국정과제 불구
    애매한 스탠스에 100% 투자 이익 포기한 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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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재계에서 벌어지는 재벌들의 다툼, 그룹 간의 갈등, 기업의 중대한 경영 판단에서 국민연금은 자유롭지 못하다. 거의 모든 대기업 계열사의 대주주로 이름을 올리고 있는 국민연금의 선택은 투자자들의 초미의 관심이다. 비단 일부 이해관계자 뿐만 아니라 개인 투자자들의 손익과도 직결되는 경우가 많다.

      고려아연 사태도 마찬가지다. 국민연금은 현재 지분 약 7.5%를 보유한 단일 대주주이다. 이 가운데 약 4%는 위탁운용사를 통해 보유하고 있고 나머진 직접 운용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아연의 경영권 분쟁은 50만원대 주가에서 불붙기 시작했다. MBK·영풍 연합군과 최윤범 회장의 이른바 쩐의 전쟁을 시작하면서, 양측은 모두 주당 83만원의 공개매수를 결정했다. MBK는 이미 5%이상의 지분을 확보했는데 공개매수를 신청한 모든 주주들은 수익을 확정했다. 장기보유 주주라면 불과 몇 달만에 투자금의 두 배 가량을 회수할 수 있는 장이 펼쳐친 셈이다.

      국민연금 역시 고려아연의 가장 오래된 주주 중 하나다. 지난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대주주 지위를 유지했고 한 때는 10%가 넘는 지분율을 기록하기도 했다.

      국민연금이 만약 '어느 쪽이든' 고려아연의 공개매수에 참여했다면 상당히 높은 확률로 수 천억원의 시세차익을 기대해 볼 수 있었던 상황이었다. 

      다수의 예상대로 국민연금은 판단을 유보했다. 국민연금의 자금을 운용하는 일부 위탁운용사들은 공개매수를 신청해 수익을 일부 확정했을 것으로 보이지만, 표면적으로 국민연금이 이번 공개매수에서 얻은 실익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캐스팅보트,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 국민연금의 지분을 매수하는 쪽이 승기를 잡을 수 있다는 점에서 국민연금의 움직임이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은 이해할만하다. 어느 한 쪽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선 누구나 납득할만한 명분이 필요하다는 판단이 깔려있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어렵고 불편한 판단을 미루는 것이 과연 국민연금의 운용 수익률에 도움이 되는지는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수 천억원의 확정 수익을 포기할 만큼의 신중한 입장이 과연 필요할까에 대한 물음이기도 하다.

      국민연금은 이미 올해 초 고려아연을 일반투자에서 단순투자 대상으로 분류했다. 회사의 경영과 관련해 주주권을 행사할 명분과 목적이 없고 단순히 수익률을 목표로 투자하고 있단 의미다. 언제든 자금을 뺄 수 있고 반대로 필요에 따라 비중을 늘릴 수 있단 뜻과도 같다. 

      국민연금이 투자 수익를 극대화하려 했다면 공개매수를 통해 기대수익을 확정하고, 추후에 다시 매입하는 전략을 취했을 수도 있다. 고려아연의 주식을 보유한 대부분의 기관투자자 심지어 개인 투자자들이 고민했던 전략이다. 앞으로 고려아연의 주가가 현재 상황을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보긴 어렵기 때문에 고점 매도, 저점 재매수의 전략은 유효하다. 반드시 고려아연 지분을 보유하고 있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도 해볼 필요가 있다.

      국민연금이 어느 한 쪽의 손을 들어주는 것을 포기했다고 해서 앞으로의 고민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아직은 확실한 우위를 점한 곳을 특정하기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에 국민연금은 양측이 주주총회에서 부딪힐 때마다 캐스팅보트로서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 당장 이사 선임을 위한 임시주총을 시작해 주주들의 동의를 구하기 위한 수많은 주총 소집이 예상되는데 그 때마다 국민연금은 고민을 거듭해야 한다.

      지난해 국민연금의 기금운용 수익률은 역대 최대치 기록했지만, 과거 5년치 평균수익률(7.2%)만 본다면 글로벌 연기금들에 미치지 못한다. 이 같은 배경에서 대통령의 연금 재원 30년 연장을 위해 운용수익률 1% 제고 방안이 발표됐고 내부적으론 대책 마련에 상당히 분주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 단순히 대통령의 연금개혁 추진에 힘을 싣는 목적이 아니라 국민연금의 영속성과 안정성을 위해선 수익률 제고 노력은 필연적이란 평가를 받는다.

      김태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18일 국정감사에서 "고려아연의 분쟁은 장기수익률 제고 측면에서 판단하겠다"고 했다. 최대 100%에 달하는 기대 수익률을 포기한 상황에서 어떤 전략을 갖고 공언했는지 미지수다. 국민연금 올해 국내주식 잠정 수익률은 7.62%이다.

      기금운용본부의 제1의 목표가 '수익률 제고'여야한다는 점은 누구도 부정하기 어렵다. 국민들의 노후자금을 책임지는 역할을 부여받은 만큼 외풍(外風)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함은 물론이고 법의 테두리안에서 수익률을 목표로 운용의 묘를 발휘해야 한다. 앞으로 사모펀드를 위시한 투자자들의 기업을 향한 공세는 더욱 거세질 가능성이 높다. 고려아연 사태는 시작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