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당선 가능성 커진 9월말 이후 움직임 명확
국내 증시도 자동차ㆍ이차전지 약세 등 직격탄
'AI 투자' 지속여부, 이달말 MS 실적발표 등에서 구체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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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시장은 빠르게 트럼프 당선 가능성을 가격에 반영하고 있다. 달러화 가치와 시중금리, 금과 비트코인 가격 상승으로 대표되는 '트럼프 트레이딩'이 시장을 주도하는 가운데, 인공지능(AI) 관련 산업의 폭발적 성장 지속 가능성에 대한 의문도 서서히 고개를 들고 있다.
시장이 정말로 AI라는 산업에 열광하는지, 아니면 AI 산업에 대한 자본 지출(Capex)에 열광하는지 구분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이다. 엔비디아 AI칩을 위탁 생산하는 대만 TSMC가 깜짝 실적을 내놓은 가운데, 오는 30일로 예정된 '엔비디아 최대 고객' 마이크로소프트의 실적 발표에 관심이 모인다.
최근 미국 국채 10년물 금리는 4.2%를 넘어서면서 지난 7월 말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재정적자가 확대되면서 국채 발행이 증가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미국 베팅사이트(폴리마켓)에서 트럼프 당선 가능성이 높아지기 시작한 9월말 이후 미국 국채 2년물과 10년물 금리는 각각 42.8bp, 47.6bp(1bp=0.01%p) 상승했다.
KB증권에 따르면, 미국 초당파 씽크탱크인 책임연방예산위원회(CRFB)는 트럼프가 당선될 경우 2026년에서 2035년까지 재정적자가 7조5000억달러(약 1경360조원)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카밀라 해리스 민주당 후보가 당선될 경우엔 3조5000억달러(약 4800조원) 증가를 전망했다.
트럼프 후보는 관세로 재정 충당이 가능하다는 입장이지만, 보편 관세 10% 및 중국 60% 관세 적용시 늘어나는 관세 수입은 5990억달러(약 830조원)에 불과해 재정적자 확대는 불가피하다는 계산이다. 부족한 재정은 국채 발행으로 대신할 수밖에 없고, 국채 공급(발행)이 늘어나면 채권의 가격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채권 가격 하락은 곧 시중금리 상승을 뜻한다.
최근 금과 은, 비트코인 가격까지 급등하고 있는 것 역시 이 같은 우려의 연장선상으로 풀이된다. 재정적자 확대 가능성이 화폐 대체 상품의 가격을 들어올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현지시각 21일 뉴욕상품거래소에서 12월물 금 가격은 온스 당 2738.90달러에 거래를 마감하며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장중 2750달러선을 돌파하기도 했다. 다음날인 22일 12월물 은 선물 가격은 전 거래일 대비 2.8% 급등하며 온스 당 35.04달러에 거래됐다. 2012년 11월 이후 12년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었다.
달러 가치도 강세를 보이고 있다. 23일 원달러환율은 장중 1383원을 돌파했다. 9월말 달러당 1312원에서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70원 이상 올랐다. 원화 가치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분석이다. 글로벌 화폐 대비 달러화가 강세를 보이고 있다. 주요 화폐 대비 달러의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한 달 새 4% 가까이 상승했다. 미국 우선주의와 무역분쟁 우려가 미국에 무역흑자를 많이 내는 중국ㆍ멕시코ㆍ한국 등 화폐 가치의 약세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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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대외 변수의 변화는 국내 기준금리 인하 효과를 상쇄시키고 있다는 평가다. 한국은행은 지난 11일 기준금리를 3.50%에서 3,25%로 0.25%포인트 인하했다. 그러나 국채 2년물과 10년물 금리는 오히려 기준금리 인하 당시보다 높아진 상황이다. 같은 기간 주요 시중은행 혼합형 주택담보대출 금리 하한선도 3.99%에서 4.15%로 0.16%포인트 높아졌다.
국내 증시 역시 리스크를 먼저 반영하려는 모습이다. 대표적인 대미 수출 종목인 자동차와 이차전지가 '트럼프 트레이딩'의 직접 영향권에 들었다. 현대자동차는 지난 9월말 단기 고점에서 약 9%, LG에너지솔루션은 10월초 고점에서 11%가량 하락세를 보였다.
2018년 트럼프 전 정권 당시 무역분쟁에서 타격을 입은 반도체, 디스플레이, 전기전자에 대한 위험 회피 현상도 관측된다. LG전자와 LG디스플레이는 트럼프 당선 가능성이 부각한 9월말 이후 각각 11%, 12% 하락했다. 삼성전자는 긴축이 시작되며 시장의 공포가 극에 달했던 2023년 1월 수준까지 주가가 밀렸다. 지속된 주가 하락으로 인해 '지배구조'까지 불똥이 튀며, 이른바 사업지원 태스크포스(TF)가 주목받는 등 내홍이 지속되고 있다.
9월 이후 지속적으로 상승 추세를 보이고 있는 국내 대형주는 사실상 SK하이닉스 정도다. SK하이닉스 주가는 지난달 14일 이후 대략 한 달간 34% 상승하며 다시 주당 20만원선을 눈 앞에 뒀다. SK하이닉스는 삼성전자와는 달리 엔비디아를 주축으로 한 'AI 생태계'에 포함됐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지난 17일 발표된 대만 TSMC의 3분기 실적은 엔비디아 중심 AI 생태계에 대한 비관론에 찬물을 끼얹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AI 관련 매출이 3배 이상 증가하며 전년동기 대비 매출은 36%, 순이익은 54% 증가했고, 향후에도 수 년간 AI 관련 고성능 컴퓨팅(HPC) 부문 매출이 증가할 거라는 전망을 내놓은 것이다.
이는 시중금리 상승과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관련 인사들의 매파적(금리 인하 반대) 발언이라는 악재에도 불구, 미국 나스닥 지수만 강세를 보이는 배경으로도 해석된다. 엔비디아 주가는 현지시간 21일 143.71달러로 거래를 마감하며 사상 최고가를 기록했다. 10월 들어서면 22% 급등했다.
문제는 이런 AI 실적 호조가 언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다. 하이투자증권은 "시장 전반이 AI에 대해 열광하고 있으나, 엄밀히 따지면 AI 소프트웨어 서비스 자체보다는 반도체ㆍ데이터센터ㆍ전력기기 등 빅테크 기업들이 집행하는 'AI Capex'에 열광하고 있는 셈"이라며 "TSMC나 엔비디아 실적보다는 마이크로소프트ㆍ메타ㆍ알파벳 등 빅테크 플랫폼 기업에서 힌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짚었다.
실제로 엔비디아의 가장 큰 고객은 마이크로소프트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올해 1분기에만 4조원이 넘는 엔비디아 AI칩을 사들였다. 엔비디아의 최신 AI칩인 '블랙웰' 역시 마이크로소프트가 핵심 구매자로 알려진다.
연일 사상 최고가를 경신 중인 엔비디아와는 달리, 마이크로소프트 주가는 최근 6개월 사이 400~440달러 사이에서 박스권 정체를 보이고 있다. '코파일럿'으로 대표되는 생성형 AI 서비스로 과연 돈을 벌 수 있을지 투자자들 사이에서도 시각이 엇갈린다는 평가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이달 30일 실적발표를 앞두고 있다. AI 투자 확대 여부에 대한 코멘트의 방향성이 중요하다는 분석이다.
한 자산운용사 주식운용본부장은 "최근 일부 중소형 증권사 리서치에서 용감하게 내년 국내 증시 전망을 매우 보수적으로 보는 의견을 내고 있는데, 공감 가는 내용이 적지 않다"며 "바이오ㆍ방위산업 등 수혜주를 고민하고 있지만 트럼프 당선이 해당 산업에 직접적인 호재가 된다고 보긴 어렵고, 삼성전자ㆍ현대차ㆍLG엔솔 등 대형주가 약세를 띈다면 증시 분위기는 침체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