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금융 재미 본 메리츠증권, PF '조직 슬림화' 예고
입력 2024.10.25 07:00
    메리츠證, 이례적인 대규모 PF 구조조정
    신규 딜 줄고 수익성 감소한 PF업계
    IB 인력은 '웃돈' 주고 채용 준비
    성장 여력 있는 기업금융 확대 행보 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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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메리츠증권이 연말 인사에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인력 축소에 나설 전망이다. 부동산 PF 시장이 계속해서 금융시장 뇌관으로 남아 있는 가운데 성장 여력이 있는 기업금융 쪽에 힘을 싣기 위한 행보로 풀이된다. 

      22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최근 메리츠증권이 증권가에서 IB 인력 수혈에 공을 들이고 있다. 이세훈 메리츠증권 부사장이 PF 조직을 슬림화해야 한다고 언급한 가운데 PF 인력을 줄이고 기업금융 역량을 강화하는 작업을 병행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메리츠증권 한 관계자는 "PF 부문에서 약 20% 정도 인력을 감축할 것 같다"며 "10월 말까지 구조조정을 할 인력을 취합해 11월 초 보고가 이뤄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고 말했다. 

      회사의 다른 관계자는 "김종민 대표가 지난 7월 부임 이후 올해는 실적으로 PF 성과를 판단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내년에는 실적을 내야 할 거란 뉘앙스를 드러내고 있다"며 "내년에도 인력 감축 불안감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이번 구조조정은 이례적이라는 평이 많다. 그동안 메리츠증권은 관리부실이 발생하거나 실적이 좋지 않은 일부 팀과 계약을 해지한 적은 있지만, 대대적 감축을 준비한 적은 없었다. 

      그동안 국내 부동산 개발 시장에서 메리츠증권의 영향력을 감안하면 충격 역시 작지 않을 전망이다. 메리츠증권은 과거 부동산 업계가 침체기를 겪던 와중에도 PF 시장을 이끌어온 증권사로 꼽혀왔다. 

      그럼에도 메리츠증권이 PF 인력을 정리하는 건 과거와 달리 PF 시장에서 '먹거리' 발굴이 쉽지 않다는 판단 때문으로 풀이된다. 부실 PF는 꾸준히 매물로 나오고 있으며, 부실채권(NPL) 시장은 역대 최대 활황을 맞이하고 있다. 

      PF 업계 한 관계자는 "인건비와 공사비가 오르며 시공사가 신규 수주를 중단하자 PF 업계도 신규 딜이 현저히 줄고 수익성도 감소했다"며 "내년 PF 업황도 부정적으로 판단하고 있으며 일각에서는 PF 시장이 끝물이라는 위기의식도 나오는 상황"이라 밝혔다.

      반면 비(非)부동산 인력 비중을 높일 것으로 보인다. 다른 증권사에서 기업금융을 담당하던 인력들을 대상으로 채용을 준비하고 있다. 이미 이들 중 일부는 기존 연봉 대비 우호적인 조건으로 계약 조건을 협상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메리츠증권은 점차 PF 이외의 부문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 기업들이 유동성 위기에 빠졌을 때 자금을 조달하며 '구원투수' 역할을 하고 있다. 이들 기업의 공통점은 타 금융기관이 쉽사리 자금 조달을 결정하지 못한 곳이다.

      최근 메리츠증권은 고려아연이 발행한 1조원 규모의 사모사채를 인수했다. 금리는 6.5%, 만기는 1년이다. 고려아연은 영풍·MBK파트너스의 공개매수를 저지하기 위한 자사주 공개매수 자금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 메리츠증권에 따르면 고려아연은 회사채 발행 일주일 전 증권업계에 발행 의사를 보였다.

      이외에도 ▲작년 초 롯데건설 지원 위해 1조5000억원 규모의 펀드(수수료 포함 금리 약 12%) 조성 ▲올해 3월 롯데건설에 5000억원 신규 지원 ▲4월 홈플러스 대주주인 MBK파트너스에 1조3000억원 규모의 인수금융 리파이낸싱(금리 10% 안팎 추정) 진행 ▲5월 M캐피탈에 3000억원 자금 지원(표면금리 9%대, 스텝업 조항 발동 시 10% 중반 예상) ▲10월 폴라리스쉬핑 모회사 폴라E&M에 3400억원 대출(금리 12.5%) 실행 등 실적을 기록했다.

      일각에선 이번 연말 인사를 기점으로 메리츠증권의 '색깔'이 PF 전문 증권사에서 기업금융 중심 증권사로 바뀔지 주목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조직의 '무게추'도 김종민 대표에서 장원재 대표로 기울지 관심의 대상이다. 메리츠증권 내부에서 김종민 대표는 부동산 전문가, 장원재 대표는 기업금융 전문가로 입지가 확고하다는 평가다. 전반적인 딜 의사결정은 두 대표가 함께 하지만, 내부 관리는 각자 전문 영역에 따라 따로 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다른 증권사 관계자는 "한국에서 진정한 증권사는 메리츠증권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메리츠증권은 수익성을 확실히 추구해 매력적이다. 시장에서 메리츠증권의 포지션이 명확하고 필요한 역할이다"며 "다만, 기업 자산을 담보로 잡아 고금리로 지원하기에는 여력이 있는 기업이 많지 않아, 지금의 방식으로 시장 점유율을 키워나갈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