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유럽은행서 돈 빌려 K9·천무 사는 폴란드…방산 성장 보폭 못 맞춘 수출금융
입력 2024.10.25 07:00
    취재노트
    폴란드, 한국 대신 유럽은행서 자금 조달해
    한화에어로 K9 자주포, 천무 구매하기로
    수은 한도 부족으로 금융지원 지연돼
    금융지원, 방산 성장 속도 못 맞췄다는 지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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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국책은행인 수출입은행을 통한 금융지원을 고집하던 폴란드가 복수의 유럽은행 대출을 통해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K9 자주포와 천무를 구매한다. 폴란드 방위산업(방산) 수출 지원을 위해 수출입은행법 개정과 시중은행 신디케이트론 제안 등 1년여 동안 많은 시도가 있었으나, 결국 기간 내 적절한 금융지원 방안을 찾지 못한 까닭이다. 국내 방산업체들이 빠르게 성장한 속도를 수출금융이 뒷받침해주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복수의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폴란드 군비청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K9 자주포와 천무의 금융지원을 유럽 상업은행을 통해 대출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유럽은행들이 한국의 수출입은행이 제공할 수 있는 금리에 비견하는 수준의 금리를 제안한 것으로 전해진다. 업계에서는 계약 은행들로 소시에테제네랄과 BNP파리바 등이 거론된다.

      2022년 7월 폴란드는 국내 방산업계와 초대형 규모의 무기 수출 기본계약을 체결했다. 그로부터 한 달 만에 체결한 1차 계약만 해도 124억달러(약 17조원)규모에 이른다. 2차 수출 계약 규모는 약 30조~40조원에 달하는데, 단일 차주에 자기자본의 최대 40%까지만 신용거래가 가능한 수출입은행은 이미 1차 계약에서 대부분의 한도를 소진했다.

      수출입은행의 한도 부족으로 인해 금융지원은 차일피일 미뤄졌다. 작년 12월 폴란드 군비청과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계약한 K9 자주포 152문 계약은 지난 6월까지 별도 금융 계약 체결의 조건이 달려있었지만 6월 내 금융지원은 끝내 이뤄지지 못했다. 올해 2월 수출입은행법이 개정되면서 수출입은행의 법정 자본금 한도가 15조원에서 25조원으로 상향됐지만, 자본금을 넣을 수 있는 주머니만 늘어났을 뿐 실제 출자가 이뤄진 건 2조원뿐이기 때문이다. 수출입은행법 개정 또한 순탄치 않았다. 법안 개정은 지난해 여러 의원을 통해 발의됐으나 법안심사소위에서 계속 후순위로 밀려나며 논의가 길어졌다. 

      관련 이해관계자들은 오랜 시간 머리를 맞댔지만 결국 뾰족한 수를 찾지 못했다. 국내 시중은행의 신디케이트론을 통한 지원 방식이 강력하게 논의됐으나, 무기 구매 대출에 생소한 시중은행들과 국책은행을 통한 지원만을 고집하는 폴란드의 엇박자로 계약은 끝내 체결되지 못했다. 폴란드는 저리로 금융을 조달하는 것뿐만 아니라 국책은행을 통한 금융지원이라는 명분을 중요하게 여긴 것으로 전해진다. 

      폴란드가 유럽은행을 통한 대출로 돌연 선회한 것을 두고 업계에선 여러 의견이 나온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폴란드의 국방 강화 필요성이 높아졌다거나, 대규모 금융지원을 두고 한국 내 정쟁이 길어지는 걸 본 폴란드가 기간 내 한국의 금융지원을 받는 건 가망이 없다 생각했다 등 여러 추측이 나오는 상황이다.

      여러 가설이 존재하지만, 결론은 한국의 금융지원이 너무 늦었다는 사실 하나로 귀결된다. 무기나 원전 등 정부 간 거래(G2G)에선 수출국의 국책은행이 수입국에 저리로 금융지원을 해주는 건 국제적 관례다. 체코 원전이나 폴란드 무기 등 수입국에 수출입은행이 대규모로 저리 대출을 지원해주는 것이 맞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지만, 유럽과 미국 등 오랜 기간 무기 수출을 해왔던 국가에선 상식적인 일로 통한다. 

      전세계적으로 안보 불안이 높아지면서 '가성비'와 빠른 납기능력이란 장점을 가진 국내 방산업체의 무기 수요는 높아지고 있다. 폴란드 무기 수출을 교훈 삼아 방산업체들이 빠르게 성장한 만큼 수출금융 또한 발맞춰 성숙해져야 한다는 필요성이 제기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