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크는 롯데케미칼이 떠안는다"…메리츠發 '변종 PRS' 구조 들여다보니
입력 2024.11.04 07:00
    메리츠證, 롯데케미칼 美법인 담보 6600억원 PRS 단독 주선
    증권사 신용 부담 줄이고 기업이 리스크 책임지는 이례적 구조
    "힘들때 도와준 증권사 배제" VS "양사 이해관계 맞춘 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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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메리츠증권이 롯데케미칼의 1조4000억원 자금조달 계획 중 절반에 가까운 7000억원의 주가수익스왑(PRS) 계약을 단독으로 따내면서 업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통상 대형 PRS 거래가 전통적 기업금융 강자들의 영역으로 여겨졌다는 점에서, 메리츠증권의 약진은 이례적이란 평가다.

      메리츠증권은 통상적인 PRS 계약과는 달리 증권사의 리스크를 낮춰, 보다 저렴한 금리를 제시한 것으로 알려진다. 아울러 롯데케미칼은 이번 거래에서 소수의 증권사와 계약하는 것을 선호했는데 막대한 자금력을 갖춘 메리츠증권과 이해가 맞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1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메리츠증권은 롯데케미칼과 미국 자회사 LCLA 지분 40%를 담보로 한 6600억원 규모의 PRS 계약을 체결했다. 이는 롯데케미칼이 해외 자회사 지분을 활용해 추진 중인 1조4000억원 규모 자금조달 계획의 일환이다.

      주목할 만한 점은 이번 PRS 계약의 구조다. 메리츠증권은 통상적인 PRS와는 다른 방식으로 거래 위험을 대폭 낮추고, 이를 토대로 파격적인 저금리를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IB업계의 한 관계자는 "일반적인 PRS 거래에서는 증권사가 지는 신용 리스크를 이번에는 롯데케미칼이 떠안는 구조"라며 "덕분에 메리츠증권이 매우 낮은 수수료율을 제시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PRS는 기업이 금융기관과 일정기간 계약을 맺고 정산 시기에 기초자산의 주식가치가 계약 당시 보다 높으면 차액을 기업이 가져가고, 반대의 경우엔 손실금액을 투자자(금융기관)에 보전하는 파생상품이다. 총수익스와프(TRS)와 유사하지만 PRS는 배당권, 의결권 등 주요 권리를 제외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TRS와 달리 파킹거래 논란을 잠재울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일반적으로 증권사는 PRS 거래시 장단기 금리 차이를 이용해 그 차익을 수익으로 삼는다. 증권사는 3~5년의 계약기간 동안 기업으로부터 연간 수수료를 받고, 매입한 자산을 담보로 단기 채권(ABCP 등)을 발행한다. 기업으로부터 받는 수수료에서 단기 채권 이자를 제외한 금액이 증권사의 수익이 되는 구조다.

      이 과정에서 발행되는 단기 채권에 대한 상환(신용) 책임은 증권사가 지게 되며, 증권사는 이런 리스크에 대한 비용을 책정해둔다. 그러나 이번 거래에서는 이 위험을 모두 롯데케미칼이 부담하기로 한 것으로 전해진다. 상환 부담 면에선 사실상 롯데케미칼의 우발채무라는 것이 업계 중론이다. 다만, 롯데케미칼 측에선 회계상으로는 우발채무로 분류되진 않을 것이란 입장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롯데케미칼의 경우 부채비율이 낮은 편이어서 단기채권이 우발채무로 잡히더라도 큰 부담이 되지 않는다"며 "오히려 저금리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메리츠증권과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고 봐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특히 롯데케미칼이 거래 상대방을 최소화하길 원했다는 점도 메리츠증권이 딜을 따낸 배경으로 꼽힌다. 7000억원에 달하는 대규모 자금을 단독으로 운용할 수 있는 증권사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 메리츠증권의 든든한 자금력이 장점으로 작용했다는 평가다.

      일각에서는 롯데케미칼의 이 같은 선택이 미국 LCLA 지분 매각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다수의 증권사와 복잡한 계약관계를 맺는 것보다 단일 증권사와의 거래가 향후 지분 매각 시 용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메리츠증권의 이번 행보를 두고 업계의 평가는 엇갈린다. 롯데그룹이 어려울때 자금조달을 도왔던 증권사들이 배제된 것에 대해 메리츠증권이 '얄밉다'라는 반응이 적지 않다. 실제로 지난 9월 롯데지주의 영구채 발행에는 NH투자증권, 한국투자증권, 신한투자증권, KB증권, 키움증권, 대신증권 등 대형사들이 대부분 참여했다.

      '딜을 발굴하는 감각이 좋다'는 상반된 의견도 나온다. 신용부담을 기업에 맡기고, 대신 금리를 낮추며, 7000억원에 달하는 전체 금액에 대해 단독으로 딜을 제안할 수 있는 건 메리츠 정도 뿐이라는 평가가 뒤따른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롯데그룹이 힘들때 적극적으로 지원했던 증권사들이 이번 거래에는 포함되지 않으면서 업계 반발이 있는 걸로 알고 있다"면서 "다만 대형 거래의 기회를 포착한 메리츠증권도 안목이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