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시장 부진 속 발행사·투자사 CB 주목
성장 자금 대신 돌려막기 성격 적지 않아
"가장 만만하지만 큰 실속은 없다" 평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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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연말이 가까워오며 자본시장의 생동감이 점차 잦아드는 가운데 전환사채(CB)의 발행 열기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자금이 필요한 발행사나 자금을 굴릴 기회를 찾는 투자자 모두 가장 부담 적은 CB에 시선을 두는 모습이다.
큰 투자 매력은 없다는 평가도 나온다. CB는 주가가 상승해야 이익이 극대화되는 상품이다. 내년 경기 침체 우려가 점점 커지고 있는 현 상황에선 어울리지 않는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 투자할 자산이 없어 수요가 이어지고 있다는 평가다.
올해 초부터 주요 증권사들은 메자닌 관련 일감이 늘어날 것으로 봤다. 유동성 호황기에 발행했던 CB의 만기가 속속 돌아오며 상환 혹은 차환해야 하는 곳이 많았기 때문이다. 증시 부진 속에 전환권 대신 풋옵션을 행사하는 사례가 많았다.
하이브는 지난달 4000억원 규모 CB(4회)를 발행했다. 2021년 같은 규모로 발행한 3회 CB 자금을 상환하기 위함이다. 3회 CB는 전환가격이 38만원대인데 하이브 주가는 그 절반에도 못 미쳐 투자자들의 풋옵션 행사가 불가피했다.
향후 하이브의 주가가 상승할 것이란 기대가 커지며 증권사들의 발행 주선 경쟁도 치열하게 벌어졌다. 3회 CB 주관사인 미래에셋증권이 낙점됐다. 미래에셋증권은 3회 CB 투자로 별다른 재미를 보진 못했지만 다시 하이브와 손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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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제약(850억원) 역시 2021년 발행한 2회 CB의 상환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3회 CB를 찍었다. 이 외에도 다날(350억원), 티로보틱스(276억원) 등 기업이 지난달 CB를 발행했다. 투자사들의 북이 닫혀가는 시기임에도 CB 투자 수요는 유지되는 분위기다.
기관투자가 입장에서 올해는 눈에 뜨이는 투자 건이 많지 않은 해였다. 주식 시장과 M&A 시장 모두 부진을 이어갔다. 지분 투자를 하기엔 부담되고, 각광받던 기업 대출 금리는 점점 낮아지고 있다. 전반적으로 증시가 침체한 상황이니 주가 상승에 기대를 거는 CB가 인기를 끌 만하다.
한 증권사 임원은 "공제회나 캐피탈사 등 기관투자가로부터 CB에 투자하고 싶다는 연락이 많이 온다"며 "요즘 같은 장에선 지분 투자는 부담되니 하방 위험이 막혀 있고 대출보다 수익성은 좋은 CB에 수요가 쏠리고 있다"고 말했다.
발행사와 투자자들의 이해관계가 맞아 CB 발행이 원활히 이어지는 양상인데 진짜 좋은 투자 자산이 있느냐 하는 의문은 있다. 신사업 추진이나 증설 등 목적인 경우도 있지만 과거 후한 조건으로 발행했던 CB의 풋옵션 행사 부담 때문에 자금을 다시 조달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런 경우라면 향후 주가 상승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실적이나 자금 사정이 좋지 않은 기업은 CB 발행 자체가 어렵고, 발행하더라도 투자자들은 불안할 수밖에 없다. 지난달 제노포커스는 CB 상환에 애를 먹다 CB 시장의 단골 고객인 HLB그룹에 피인수됐다. CB 자금을 상환하지 못해 기한이익상실(EOD)이 되는 경우는 종종 나온다. 최악의 상황은 기업이 도산하는 것이다. 상환전환우선주(RCPS)와 달리 CB는 회생채권으로 인정되긴 하지만 상환 가능성은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기업과 투자자, 증권사 모두 CB가 가장 만만하고 시장에서 소화가 되니 집중하고 있을 뿐"이라며 "향후 주가 상승을 기대하고 투자할 만한 자산은 많지 않아 보인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