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 수익률 포기한 연기금…속내는 "국장 안 들어가고 싶다"
입력 2024.11.14 07:00
    정치권 시선 의식…수익률 사실상 포기
    고려아연은 시작 불과…더 늘어날 듯
    증시 부진 장기화로 '국장' 자체 회의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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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이 장기화하면서, 지분을 보유한 연기금·공제회의 고민도 커지고 있다. 이번 공개매수 과정에서도 수익률은 포기한 채 정치권의 시선을 의식해 '기계적 중립'을 지키느라 피로도가 컸다는 설명이다.

      문제는 이러한 경영권 분쟁 이슈가 일시적 '이벤트'에 그치지 않고,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이에 기관 사이에서는 국내주식 투자 자체에 대한 회의감도 감지된다. 올해 증시 부진으로 수익률이 악화됐단 점도 일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A 기관(LP)은 최근 공개매수 과정에서 고려아연의 주가가 크게 상승했지만, 차익실현을 하지 않았다. MBK·영풍 연합과 최윤범 회장 측 중 어느 편의 공개매수에도 참여하지 않았고, 그렇다고 시장에도 지분을 매도하지 않았다.

      위탁운용사를 통해 간접 보유한 지분에 대해서는, 위탁운용사들에 공개매수에 참여하지 말고 장내매도는 판단에 따라 진행해줄 것을 권고했다. 수익률보다는 어느 한쪽 편에 설 경우 제기될 수 있는 비판을 고려한 선택이었다.

      B 기관(LP)은 고려아연 차익실현 시점을 고민하다, 주가가 공개매수가인 89만원을 초과하자 지분 일부를 장내매도하며 차익을 실현했다. 이와 같은 결정에는 수익률보다 외부적인 시선이 크게 작용했다는 설명이다.

      B 기관 관계자는 "공개매수에서 섣불리 어느 한 쪽 편을 들기가 힘든데, 그렇다고 가만히 있자니 수익률을 포기했다는 비판이 일 수 있다"라며 "그렇다고 공개매수가보다 낮은 가격으로 장내매도를 하면 더 높은 수익률을 포기했다는 비판이 나올 수 있어, 주가가 공개매수가를 초과하자마자 매도했다"라고 말했다.

      통상 연기금과 공제회 등 기관투자가들의 투자 판단에 있어 1순위는 수익률이다. 하지만 이번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만큼은 수익률보다 기관의 책무, 정치권의 시선 등이 더 크게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그 과정에서 기관의 피로도도 커졌다는 설명이다.

      한 대형 LP 관계자는 "기관투자가 입장에서 수익률보다 더 두려운 것이 정치권의 자료요구와 국정감사 소환"이라며 "고려아연 건은 사회적인 관심도가 상당하다보니, 차라리 수익률을 조금 손해보더라도 책 잡히지 않는 편이 낫다"라고 말했다.

      경영권 분쟁 이슈는 앞으로 더 많아질 가능성이 크다. 새 먹거리를 찾는 대형 사모펀드(PEF)는 언제든 명분을 앞세워 경영권을 노릴 수 있는 까닭이다. 벌써부터 시장에서는 고려아연 이후 분쟁 대상이 될 수 있는 기업들을 선별하고 있다. 

      이에 기관투자가 사이에서는 국내주식 투자 자체에 대한 회의적인 분위기도 감지된다. 증시 부진으로 가뜩이나 해위주식 대비 수익률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경영권 분쟁 등 외적으로 고려해야 할 골치아픈 문제들이 많은 탓이다.

      실제로 국내 한 기관은 올해 해외주식에서 20%가 넘는 수익을 거뒀지만, 국내주식이 부진하면서 전체 주식부문 수익률을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관별로 차이가 있지만, 통상 국내와 해외주식의 비중은 3:7에서 4:7 정도다.

      국내주식 비중을 줄이고 싶지만, 기관의 '공공성' 측면을 고려하면 무작정 줄이기도 쉽지 않다. 최근에는 당국도 밸류업 정책의 일환으로 연기금, 공제회의 국내주식 비중 확대를 주문하고 있어 부담이 커지고 있다.

      한 공제회 관계자는 "주식의 투자비중이 높은 기관의 경우 국내주식 성과가 전체 수익률을 좌우할 가능성도 크다"라며 "증시 부진이 길어지고 있고, 고려아연 이슈처럼 신경써야할 일도 많다 보니 '국장'에 대한 고민이 많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