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의 주관사 조사는 진행 중
'고의성'이 핵심…'미리 알았나'
미흡한 내부 리스크 관리 지적도
-
고려아연의 유상증자 계획은 무산됐지만 금융감독원이 대표주관 증권사인 미래에셋증권에 겨눈 칼날은 여전하다. 아직 현장 조사를 이어가고 있는 가운데 증권업계에서는 '고의' 여부와 별개로 증자 추진 과정에서 미래에셋증권이 사전에 법적 리스크 체크를 하지 못한 점에 대해 의문을 던지고 있다.
고객과의 갑을 관계ㆍ유사한 사례 부족 등이 배경으로 추정되는 가운데 조사 결과와 별개로 내부 리스크 관리의 허점을 보였다는 지적이 나온다.
고려아연은 13일 이사회를 열고 2조5000억원 규모 일반공모 유상증자를 철회키로 했다. 앞서 이달 6일 금융감독원이 고려아연의 유상증자가 투자자에게 중대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판단해 정정신고서 제출을 요구한 지 약 2주 만이다.
유상증자 계획 무산과 별개로, 미래에셋증권 등 주관사단에 제기된 의혹에 대한 부담은 계속될 전망이다. 고려아연 사태에 관심을 갖고 있었던 금감원이 유상증자를 명분으로 '개입'할 명분이 생겼고, 여기에 그간 '눈 여겨 보던' 증권사까지 더해지며 이슈가 커졌다는 것이다.
실제로 금감원은 지난달 31일부터 고려아연의 공개매수 주관사이자 유상증자 대표 주관사인 미래에셋증권 현장 조사에 착수했다. 금융감독원은 이달 4일에는 KB증권에 대한 현장 검사로 보폭을 넓혔다. KB증권은 고려아연의 자사주 공개매수 사무취급자이자 유상증자 공동모집주선회사다.
금감원은 고려아연의 유상증자와 관련해 불공정거래에 해당하는지 조사하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유상증자를 위한 기업 실사를 진행한 주관사도 부정거래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주시하고 있다.
현재 금감원은 미래에셋증권 실무진 조사를 진행 중이다. 금감원은 당초 지난달 31일부터 이달 8일까지 미래에셋증권에 대한 현장검사를 진행할 예정이었으나, 11일 조사 기간을 연장키로 결정했다. 현장검사 마감 일정은 밝히지 않았다.
이미 유상증자 추진 계획만으로 주가가 요동친 만큼 금감원에서는 이 사안을 중대하게 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미래에셋증권 내부에서도 긴장감이 고조된 가운데 안건을 언급하는 것 자체가 민감한 분위기다. 그룹 최고경영진까지도 해당 안건을 챙겨보고 있지 않겠느냐는 시선이 많다.
금감원 조사의 핵심은 결국 ‘고의성’ 여부가 꼽힌다. 함용일 금감원 부원장은 앞서 브리핑에서 “미래에셋증권이 고려아연의 유상증자 계획을 인지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고려아연의 부정거래가 확인될 경우 증권사의 방조 여부도 조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래에셋증권이 의심을 받는 지점은 공개매수 사무취급과 유상증자 모집주선 모두 기업금융(IB)2본부 IB1팀에서 담당한 점이다. 해당 실무진들이 두 업무를 모두 처리했다면, 계획을 모르고 있기 어렵다는 시선이 많다.
한 대형 증권사 IB 관계자는 “(우리 회사였으면)해당 업무들을 이어 맡지 않았을 것”이라며 “중요한 고객이고 큰 딜이긴 해도 주관사로서 리스크 고지라도 했을 텐데 진행한 점이 의아하다”고 말했다.
정말 몰랐다면, 미래에셋증권 내부의 의사결정 문제로 초점이 옮겨가게 된다. 유상증자 계획은 고려아연이 먼저 제안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고려아연이 김앤장에서 법률 자문을 받는 점을 고려했을 때 자체적으로 법적 검토를 거쳤을 거란 시각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이와 별개로, 주관사 측에서도 사안이 복잡한 만큼 사법 리스크 및 컴플라이언스 검토가 면밀히 이뤄졌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증권사별로 업무 분장은 각각 다르지만, 공개매수 업무와 유상증자 업무를, 그것도 적대적 M&A와 같은 민감한 상황 중에 같은 팀에서 담당한 점도 드물다는 평가도 나온다. 예로 다른 대형 증권사인 NH투자증권의 경우 공개매수 업무는 투자금융본부에서, 유상증자 업무는 커버리지본부에서 맡고 있다.
실무진 단에서 추진했어도 회사 내 결재 체계 내 리스크 관리가 들어가지 않은 점도 아쉽다는 평이다.
미래에셋증권 IB 부문은 IB1부문과 IB2부문으로 나뉘고, 강성범 IB1부문 대표(부사장)와 주용국 IB2부문 대표가 각각 부문을 담당한다. 주 대표는 이번 인사에서 전무에서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IB1부문이 기업금융 등의 업무를, IB2 사업부는 부동산금융을 수행하고 있다. 이번에 쟁점이 된 부서는 IB1부문 산하 IB 2본부로 이홍석 IB 2본부장이 맡고 있다.
미래에셋증권이 IB 수수료 영업을 위해 무리한 것이 아니냐는 시선도 있다. 그룹이 사업적으로 자산관리(WM)에 힘을 모으면서 IB 입지가 좁아졌다는 평이 있다. 올해 IB 부문에서 베테랑 인사를 포함한 인력 줄이탈이 이어지기도 했다. 이번 연말 인사에서도 IB에선 승진자가 눈에 띄지 않았다.
다만 국내에서 이런 사례가 많지 않았던 배경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란 분석이다.
적대적 공개매수는 국내 시장에서 2000년 초 한두 건 정도였고, 그 외에는 우호적 공개매수가 대부분이었다. 통상 지주사 전환이나 분할 등 그룹 차원에서 진행하다 보니 주주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힐 여지도 적었다. 이렇다 보니 주관사가 법무법인 검토 등 엄밀하게 따질 여유가 적었을 것이란 관측이다.
한 IB 업계 관계자는 “지금까지 적대적 공개매수 사례 자체가 국내에서 많지 않았으니 미래에셋증권 내부에서도 제대로 된 체크리스트 확보나 위험 포인트 인지가 잘되지 않은 상태였을 것”이라며 “일반적인 기업분할이나 합병, 지주사 전환 등의 업무로 생각하고 안일하게 진행한 실수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