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 기업가치 커질수록 구조개편 선택지多
李회장 2심, 삼성물산 합병 정당성 증명이 관건
기업가치 제고 시급한 삼성물산
바이오로직스 집중도 높아질 수밖에 없는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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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그룹의 명실상부한 주축인 삼성전자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단순한 업황의 부침을 넘어 핵심인 반도체 사업의 경쟁력조차 의심받으며 중·장기적 침체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최근 파격적인 주주환원책으로 일시적 주가 반등에 성공했지만 근본적인 사업적 모멘텀을 확보하지 않는다면 장기적인 침체는 피하기 어렵다는 평가다.
'전자'의 부진은 그룹 전반에 걸친 경쟁력 상실과 맞닿아있다. '전자'의 저성장을 상수로 두고 그룹 차원의 성장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는 전제가 유효하다면, 이제까지 '후자'로 취급받던 계열사들에 대한 주목도가 상대적으로 높아질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삼성그룹 내 가장 매서운 성장세를 나타내는 계열사는 단연 삼성바이오로직스(이하 바이오로직스)이다. 올 들어 분기마다 최대 실적을 경신했는데 3분기엔 분기 매출 1조원을 넘겼다. 이미 1~3공장은 풀가동 중이고 가동률을 높이고 있는 4공장에 이어 내년 4월엔 5공장의 가동을 시작한다.
현 시점에서만 본다면 올해 창사 이래 최대 실적 달성은 무난할 것으로 전망된다. 글로벌 빅파마들로부터 수주를 늘리는 상황, 우호적인 환율, 미국 생물보안법에 따른 최대 수혜가 예상된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실적면에선 바이오로직스를 삼성전자의 규모와 비교하긴 어렵다. 그러나 상장회사로서 기업가치를 따지면 얘기가 다르다.
바이오로직스의 시가총액은 약 65조~70조원 수준으로 삼성전자, SK하이닉스, LG에너지솔루션에 이어 유가증권 시장에서 4번째 규모다. 5위인 현대차와의 격차는 20조원이 넘는다.
사업의 종류, 성장성, 투자자들의 기대감 등을 종합적으로 반영하면 국내 시가총액 1위 삼성전자를 위협할만한 기업은 현대차 그리고 바이오로직스가 유일하단 평가가 나오기도 한다.
이같은 기대감에 지난 9월 바이오로직스의 주가는 100만원을 넘어섰다. 경영권 분쟁이란 이벤트로 주가가 급등한 고려아연을 제외하면 2022년 이후 황제주로 등극한 유일한 기업이다. 미국 대통령 선거 이후 국내 증시의 전반적인 침체로 주가가 90만원대로 복귀했으나, 국내외 증권사들은 여전히 목표주가를 130만원 이상으로 책정하며 기대감을 나타내고 있다.
물론 ▲부침이 심한 바이오 업황의 불확실성 ▲바이오 섹터에 대한 기관들의 여전히 보수적인 투자 기조 ▲높은 밸류에이션에 대한 부담 등은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국내 바이오 업계 한 관계자는 "바이오로직스의 성장성에 의심을 갖는 투자자들은 많지 않지만, 현재 밸류에이션을 따져보면 단기간 내 (주가의) 급등을 기대하는 것도 어렵다"며 "사업의 내용과 대외 변수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중·장기적으로 성장 곡선을 그릴 것이란 점에는 이견이 없다"고 말했다.
바이오 사업은 이재용 회장이 부회장으로 재직할 당시 꼽은 신성장 사업중 하나다. 지난 2018년 삼성그룹은 고(故) 이건희 회장 시절 선정한 '5대 신수종사업(태양전지, 자동차용 전지, LED, 바이오, 의료기기)'을 '4대 신성장동력 사업'으로 재편했다.
4대 신사업엔 ▲바이오 ▲인공지능(AI) ▲5세대 이동통신(5G) ▲전장부품 등이 포함돼 있다. 바이오는 이건희 회장 시대부터 주목받아온 사업이었으나 이재용 회장 체제가 본격화 한 이후 대규모 투자와 성장이 가시화했다. 현재로선 이 회장이 꼽은 신성장 사업 가운데 눈에 띄는 성과를 나타내고 있는 곳은 바이오가 유일하다.
바이오로직스가 그룹의 주요한 축으로 자리잡게 된다면,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의 선택지도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바이오로직스는 삼성물산이 최대주주(43%), 삼성전자가(31%) 2대주주이다. 삼성전자는 삼성중공업과 같은 제조업 기반의 계열사들의 최대주주이다. 사업적으로 결이 같지 않은 계열사들에 삼성전자가 대주주로 자리잡은 기형적인 구조가 지속하고 있기 때문에 삼성전자의 지배구조를 단순화하는 작업은 반드시 필요한 과정으로 꼽힌다. 국회가 개원할 때마다 논의됐던 삼성생명법이 이를 가속화할 것이란 전망도 있었으나 현재로선 그 논의가 유의미하진 않다.
3분기 현재 바이오로직스의 이익잉여금은 약 4조7000억원이 넘는다. 이제까지 배당이 없었던 바이오로직스는 내년부터 현금배당의 가능성을 열어뒀다.
실제 배당이 이뤄진다면 기업가치가 수 년째 정체돼 있는 삼성물산의 현금흐름에 상당한 기여를 할 것으로 보인다. 만약 바이오로직스의 대주주가 일원화하는 작업이 진행한다면, 삼성물산 또는 삼성전자는 막대한 현금를 확보하거나 성장성이 담보한 바이오 계열사를 자회사화 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게 된다.
최근 들어선 바이오로직스가 황제주로 등극한만큼 액면분할 가능성도 솔솔 제기되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 2018년, 전년도 역대 최대실적을 발표한 직후 50대 1의 액면분할 계획을 발표했다. 당시 이재용 회장은 구속 수감된 상태였는데, 옥중에서 최종 승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액면분할은 당시 250만원이 넘던 삼성전자 주식의 수급을 개선하기 위한 기술적인 측면도 있었으나 삼성그룹 주주확대를 통한 여론 조성, 즉 '국민주'로 탈바꿈해 삼성과 이 회장에 우호적인 여론을 만들기 위한 작업으로 풀이되기도 했다.
2018년 오너의 구속, 2024년 삼성전자의 전례없던 사업적 침체의 위기는 닮아있다. 삼성전자를 제외하곤 돈 잘버는 계열사를 꼽기 어려운 상황에서 가장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는 바이오로직스의 활용법이 주목받는 형국이다.
삼성물산-제일모직의 합병을 둘러싼 이재용 회장의 재판은 현재 진행형이다. 1심은 이 회장의 무죄를 선고했고 2심 공판이 진행중이다. '유죄'를 주장한 검찰의 논리는 "합병을 통해 삼성물산 주주들이 손해를 입었다"는 것이다.
길게는 대법원까지 지속할 법정공방에서 이재용 회장 측은 삼성물산 합병의 정당성을 입증해야 한다. 삼성물산의 가치를 끌어올리는 것이 가장 큰 과제인데, 이를 위해 바이오로직스의 기업가치를 극대화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한 시점이 됐다는 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