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회계제도 빈틈'...보험사 제살깎이식 영업전쟁 '점입가경'
입력 2024.11.20 07:00
    생보·손보사, GA채널서 12~18배 고액 수수료 관행화
    월 10만원 보험 가입하면 설계사에 120만원 '보너스'
    보험사들, 새 회계기준 허점 노려 '영업전쟁' 치열
    "회계제도 바뀌어 비용 인식 덜해"...금융당국 규제 검토
    • 보험사 영업전쟁이 갈수록 ‘점입가경’으로 치닫고 있다. 업계에선 이러다 보험업계가 공멸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회계제도 변경이 '또 다시' 원인으로 지목된다. 회계제도 변경으로 사상최대 이익을 달성한 보험사들이, 회계제도의 빈틈을 노리고 '묻지마 영업'까지 자행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받는 보험료의 12배 이상을 수수료로 주는 게 업계 관행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새 회계제도는 판매수수료를 인식하는 방식이 이전보다 완화된데다, 당장의 미래이익(CSM)이 평가 기준이 되며 벌어진 일이다. 금융당국도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규제방안을 만지작 거리고 있다. 

      보험업계에 따르면 올해 보험사들은 보험판매점(GA) 채널을 통한 영업독려를 위한 월 납입 보험료의 12배 이상의 판매수당을 내거는 게 대새가 됐다. 쉽게 말하면 한 고객이 월 납입 금액이 10만원인 보험에 가입할 경우, 보험을 유치한 설계사에 120만원 이상의 '보너스'를 주는 것이다. 

      일부 손해보험사들은 18배의 판매수당을 내걸기도 하는 등 과열 양상을 보이고 있다. 대형사와 중소형사 너나 할거 없이 GA채널에선 이런 영업행태가 퍼져있다.

      한 보험업계 관계자는 “GA를 중심으로 보험판매 수당으로 판매한 해에 해당 보험료에 12배 이상을 판매수당으로 내걸고 있다”라며 ”GA 설계사 입장에선 더 높은 판매수당을 내건 보험사의 상품 판매에 열을 올릴 수밖에 없는 구조다“라고 말했다. 

      보험사들이 이처럼 판매수당을 높여서라도 보험상품 판매에 열을 올리는 이유는 미래이익(CSM)을 높이기 위함이다. 과거에는 새로운 회계제도인 IFRS17 도입 이전에는 저축성보험 판매를 위해서 일시적으로 판매수당을 높여서 영업확대에 나선 바는 있다. 하지만 IFRS17 도입 이후에는 CSM을 늘리기 위해서 장기 인보험인 보장성 판매가 주를 이루었고, 해당 상품 판매를 위해서 보험료에 12배가 넘는 판매수수료도 보험사는 감내하고 있는 형국이다. 

      보험사 CEO 입장에선 CSM이 연임에 중요한 성과지표가 되었다는 점에서, 이를 늘릴 수만 있다면 무리한 보험영업도 만류할 유인이 별로 없다. 특히나 새로운 회계제도 하에선 판매수수료를 회계적으로 인식하는 방식이 변경되면서 판매수수료를 올리더라도 그 충격은 덜하다는 설명이다. 

      한 계리 전문가는 “회계제도가 바뀌면서 판매수수료를 이전 보다 더 긴 기간에 나누어서 인식할 수 있게 되었다”라며 ”이 때문에 보험사 CEO 입장에선 당장의 비용인식이 작다보니 이전보다 높은 수준의 판매수수료도 감내하고 있는 형국이다“라고 말했다. 

    • 이 때문에 보험업계에선 오히려 ‘공멸’로 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과거 회계 방식에선 영업에 드라이브를 걸 수는 있지만, 그만큼 비용부담을 즉시 떠앉아야 했다. CEO나 경영진 입장에선 극약처방으로 활용하는 수준에 그쳤다. 하지만 현재 회계제도 하에선 이런 부담이 훨씬 덜 하다 보니 과거에 극약처방이 이제는 일상이 되어버렸다는 설명이다. 

      이 관계자는 ”새로운 회계제도가 도입된지 얼마 안돼 당장의 충격은 적지만, 결국 시간이 흐를수록 그 부담은 고스란히 후대가 짊어지어야 한다“라며 ”보험사 실적이 사상최대라고 하는데 건전성 비율은 급격하게 추락하고 있는 것을 눈여겨 봐야 한다“라고 말했다. 

      보험사들도 알면서도 어쩔 수 없는 환경의 변화를 토로한다. 현재 과도한 판매수수료를 지급하는 상품들은 생명보험사와 손해보험사 모두가 경쟁하는 건강보험 등 장기인보험 시장이다. 과거 생보사들이 경쟁하던 시장에 손보사들마저 경쟁에 합류하면서 이전보다 경쟁강도는 두배 이상 강해졌다는 설명이다. 이런 판국에 GA 중심으로 영업채널이 바뀌면서 판매수수료 말고는 이들의 영업을 유도할 마땅할 방법이 없다고 항변한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보험 상품 차별화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보니 어느 보험사나 브랜드만을 제외하곤 차별화가 어렵다“라며 ”판매수수료 유인책 말고는 이렇다 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설명이다“라고 말했다. 

      금융당국도 이에 대한 점검에 들어갔다. 보험사 자율로 맡겨선 해결책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생명보험협회가 내놓은 자료만 보더라도 지난 8월까지 국내 22개 생보사 사업비가 14조5000억원으로, 2022년 8월의 6조2600억원 대비 두 배 이상이 늘어났다. 이를 두고만 볼 수 없다는 기류가 팽배하다. 

      다른 보험업계 관계자는 “금융위원회를 중심으로 보험사 영업관행을 바꾸기 위한 작업반을 가동하기 시작했다”라며 “일테면 판매비 총액 규제 등 강력한 규제가 도입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