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1兆 M&A를 하지"...외국인 탈출구만 마련해 준 삼성전자 자사주 매입
입력 2024.11.21 07:00
    매입 결정 이후 주가 급등분 벌써 상당폭 되돌려
    外人, 오전 순매수로 매수 유인? 오후엔 매도 폭탄
    이전 자사주 매입서도 외국인 지분율은 오히려 줄어
    "3兆 중 절반만 HBM 투자했어도 주가 부양 필요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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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성전자의 10조원 규모 자사주 매입에 대한 시장의 비판 여론이 하루가 다르게 커져가고 있다. 최근 주가 하락의 배경은 중장기적 성장 동력 상실에 따른 실망성 매물로 인한 것인데, 10조원이라는 적지 않은 자금을 큰 의미 없는 자사주 매입에 '탕진'한다는 시각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것이다.

      앞서 삼성전자의 자사주 매입은 결국 외국인이 안전하게 주식을 매도하고 떠날 수 있는 '탈출구' 역할만 해왔다는 비판이 적지 않았다. 이번 사례에서도 같은 상황이 뒤따르며, 수급 기반이 오히려 악화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20일 삼성전자 주가는 장중 2% 가까이 하락하며 한때 5만5000원선을 다시 내주기도 했다. 자사주 매입을 발표한 15일 이후 2거래일간 저점에서 최고 15% 넘게 주가가 오르기도 했지만, 이후 불과 사흘만에 상승분 중 3분의 1을 벌써 토해낸 것이다.

      자사주 매입 결정 후 주가 하락세 역시 외국인이 주도하고 있다. 15일 하루 반짝 1300억여원을 순매수한 외국인들은 18일 이후 3거래일 연속 이전과 비슷한 수준의 매도 물량을 시장에 쏟아내고 있다. 

      패턴은 거의 동일했다. 오전 중 순매수로 주가를 끌어올리다, 오후에 대규모 물량을 던지며 순매도로 돌아섰다. 18일에는 오전 중 300억원 순매수에서 장 막판 1600억원 순매도로, 19일에는 오전 중 800억원 순매수에서 장 막판 1300억원 순매도로 손바닥을 뒤집었다. 20일에도 장 초반 30억원의 순매수 우위를 보이다, 곧바로 매도세로 돌아서며 800억원 이상의 물량을 쏟아냈다. 

      이 물량은 주로 연기금과 개인투자자, 그리고 자사주 매입으로 추정되는 매수세가 받아냈다. 시장에서는 '외국인들이 자사주 매입 호재를 틈타 매수세를 유도한 뒤, 수급이 붙으면 팔고 나가는 모양새'라는 지적이 나왔다.

      삼성전자의 자사주 매입 발표를 두고 증권가 일각에서는 '이전의 사례로 미루어볼 때, 외국인들이 안전하게 주식을 더 매도할 수 있는 수단만 마련해주는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실제로 지난 2015년(11조원), 2017년(9조원) 진행된 삼성전자의 자사주 매입 때 외국인 지분율은 각각 1.25%포인트, 0.5%포인트 감소했던 바 있다.

      이번에도 이전 자사주 매입 때와 같은 상황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주가마저 지지부진하게 하락세로 돌아서자, 금융권에서는 자사주 매입에 대한 비판 여론이 점점 커지고 있다. 경쟁력 강화에 투입해도 아쉬운 자금을, 큰 효력이 없는 주가 방어에 탕진한다는 게 비판의 핵심이다.

      한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10조원을 자사주 매입에 쓸 여력이 있었다면 차라리 1조원 규모로 신성장동력 기업을 인수합병(M&A)하는 게 주가에 훨씬 도움이 됐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삼성전자는 2016년 11월 음향업체 하만(HARMAN)을 약 9조원에 인수한 후 이렇다 할 M&A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1월 협동로봇업체 레인보우로보틱스 지분을 취득하며 '경영참여'를 선언했지만, 지분을 59%까지 취득 가능한 콜옵션을 확보하고도 경영권 인수에 나서진 않았다.

      다른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소각한다는 3조원 중 절반만 고대역폭메모리(HBM)에 제 때 투자했어도 10조원씩이나 들여 주가를 부양할 필요 자체가 없었을 것"이라며 "8월 이후 외국인이 18조원을 순매도하며 삼성전자 주가가 무너졌는데, 외국인들이 자사주 매입을 기회삼아 매도 규모를 늘린다면 주가에 긍정적일 수 없다"고 말했다.

      주로 낙관적인 전망만 내놓는 국내 증권사 리서치에서도 묘한 기류가 감지된다. 국내 증권사들이 제시하고 있는 삼성전자 평균 목표주가는 8만6000원선이다. 현 주가 대비 50% 이상 상승여력이 남아있는 셈이다. 그러나 향후 6개월간 시장 수익률을 30% 이상 초과 달성할 것으로 예상될 때의 투자의견인'강력 매수'(Strong Buy)를 제시한 증권사는 찾아보기 어렵다.

      한 증권사 반도체 담당 연구원은 "자사주 매입은 주가 하방 경직성 확보에는 도움이 되나, 지속적 상승을 위해서는 메모리 업황 개선과 HBM 부문 성과, 어드밴스드 공정 전환 가속화가 필수"라고 지적했다.

      다른 증권사 연구원 역시 "주가 부양의지는 긍정적이나 시장이 확인하고자하는 부분이 여전히 많아 주가 반응은 서서히 불확실성을 제거해 나가며 나타날 것"이라며 "이번 자사주 매입 총액은 과거 대비 효과는 가장 적은 규모"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