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극화된 증권, 눈치보는 은행…금융사 인센티브 눈치싸움 시작?
입력 2024.11.21 07:00
    한투증권 PF부서 분기 500억 순익…전세역전 이뤄
    하나증권도 PF실적 호조, 메리츠는 축소 기조로 선회
    은행권, 사상 최대 실적에도 성과급 동결 기조 유지
    ELS 사태 여파에 은행 KPI 개편…IB인력 이탈 우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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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작년엔 PF 충당금 때문에 고생했는데, 올해는 PF 덕분에 IB부서가 한숨 돌렸다는 말이 있다." (증권사 IB부문 관계자)

      "대출 이자수익이 역대 최대치를 이어가고 있지만, 성과급은 작년부터 동결에 가깝다. ELS 사태 이후 당국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A 시중은행 임원)

      연말이 다가오면서 성과급을 두고 금융사들의 눈치싸움이 시작됐다. 올해는 증권가와 은행권간의 온도차가 뚜렷하다. 실적 호조를 보인 일부 증권사는 한 부서에만 수백억원대 성과급이 예상되는 반면, 은행들은 사상 최대 실적에도 당국 눈치를 보느라 성과급 억제 기조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는 분위기가 짙다. 

      증권업계에서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부동산 PF(프로젝트파이낸싱) 부서의 '전세역전'이다. 지난해 시작된 PF 부실 우려 여파로 국내 증권사들이 총 4조원대 충당금을 쌓으면서 전사(全社)가 충당금 적립에 고심했던 것과는 정반대 상황이 전개된 것이다. 

      한국투자증권의 경우 올해 3분기 누적 당기순이익이 1조415억원을 기록하며 전년 동기 대비 67% 급증했다. 특히 PF와 인수합병(M&A)금융을 비롯한 IB부문 수익은 분기당 500억원 이상의 순영업수익을 내며 실적을 견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방창진 PF그룹장 등이 CP(기업어음) 자금까지 적극 활용하며 시장의 PF딜을 공격적으로 확보한 것이 주효했다"며 "실적 반등을 이끈 PF부서에 대한 파격적인 성과급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하나증권도 PF부문을 중심으로 한 실적 개선이 두드러진다. 올해 하반기에만 사당3동 지역주택조합 본PF(4500억원), 경기 고양 데이터센터 본PF(2700억원), 충주 드림파크산업단지(2000억원) 등 굵직한 거래에 참여하면서 실적을 올렸다. 

      이에 증권가에서는 PF부서의 입지가 완전히 달라졌다는 평가도 나온다. 지난해 IB부서의 수익성을 악화시키는 주범으로 지목됐던 PF부서가 이제는 오히려 실적을 견인하는 핵심 수익원으로 자리잡으면서, 타 부서와의 성과급 분배를 재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등장했다. PF부서가 지난해 떠안았던 충당금이라는 '할부금'을 완납한 것이 아니냐는 표현도 나오고 있다.  

      다만 증권사별로 상황은 엇갈린다. PF부서가 전사 실적을 견인했던 메리츠증권은 부동산금융 축소 기조로 전환하며 기업금융 확대에 주력하고 있어, PF 부서의 성과급은 전년 대비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신한증권의 경우도 최근 발생한 ETF LP(유동성공급자) 1300억원 손실 사태로 인해 트레이딩과 영업 본부의 성과급이 영향을 받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중소형 증권사 임원은 "올해는 증권사별로 실적 차이가 크고, 같은 회사 안에서도 부서별 성과 편차가 더 커졌다"며 "특히 PF 사업 확대와 축소 전략에 따라 보상 체계도 완전히 달라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은행권은 사상 최대 실적에도 불구하고 성과급 억제 기조를 보이고 있다. 금융감독원 자료에 따르면 2024년 3분기까지 국내 은행의 누적 당기순이익은 18조8000억원 수준이다. 특히 가계대출과 기업대출 확대에 따른 이자수익이 역대 최대치에 근접했다.

      그러나 홍콩H지수 ELS 사태를 계기로 금융당국이 은행 KPI(핵심성과지표) 개편을 강조하면서, 은행들은 성과급 결정에 신중을 기하고 있다. 지난해 통상 300~400%에 달하던 성과급 수준을 200~300% 선으로 낮췄지만, 이를 인상하는 것에 대해서는 당국의 시선을 의식해 엄두도 내지 못하는 분위기다.

      특히 우리은행의 경우 동양생명 인수를 앞두고 CET1(보통주자본) 비율 관리를 위해 11월부터 신규 기업대출 실적을 KPI에서 제외하는 등 보수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대출 잔액을 줄이면 KPI에 가산점을 주는 방식으로 전략을 선회했다. 

      실제로 당국은 은행권의 KPI 개편이 실질적인 영업행태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모니터링을 강화할 방침이다. 특히 ELS 등 고위험 금융상품 판매와 관련된 성과지표는 더욱 엄격하게 관리될 전망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이자수익이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했지만, 현 시점에서 성과급을 확대하긴 어렵다"며 "우리금융처럼 당국의 허가가 필요한 보험사 인수를 앞두고 있는 경우 KPI 조정에 더욱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연말 성과급 지급을 앞두고 금융권 인력 시장에도 변화가 감지된다. 은행의 보수적인 성과급 정책이 이어질 경우, 일부 우수 인력이 상대적으로 보상 체계가 유연한 증권사 IB부문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실제로 일부 은행 IB부서에선 이미 증권사로의 이직 사례가 포착되고 있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은행 IB부서 주니어급이 증권사로 이직하는 것은 일반적인 현상이지만, 성과급 규모와 지급 방식에 따라 내년 초 금융권 인력 이동이 어느 때보다 활발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