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케미칼, 재무특약 미이행 사채권자 집회
"동원 자산 많다" 해명에도,"현실성 따져봐야"평가
비상경영 체재에도 구조조정 성과는 미미
"위기관리 구심점도 핵심 인사도 안보인다" 지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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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그룹은 유동성 위기설을 진화하기 위해 총력을 다하고 있다. 최악의 경우 그룹 차원의 모라토리엄(채무불이행)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는 위기설의 '진위'를 차치하고, 투자자들의 불안감은 갈수록 증폭하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이는 롯데그룹이 실제로 유동성 위기에 빠질 것인가의 차원을 넘어 ▲그룹이 위기설이 대두한 원인을 얼마나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가 ▲최악의 상황에서 그룹이 '당장' 현금화 할 자산이 얼마나 있는가 ▲그리고 위기 관리의 주도권을 쥐고 이를 타개할 구심점이 있느냐의 문제로 귀결한다.
따져보면 롯데그룹 핵심 사업의 침체가 최근의 일만은 아니다. 그룹의 주요한 축이자 한 때는 신동빈 회장의 최대 업적 중 하나로 꼽혔던 롯데케미칼은 수 년간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2022년 말부터 유동성 위기설이 제기됐던 롯데건설은 여전히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하는 형국이다. 롯데쇼핑으로 대표하는 유통사업은 백화점, 마트, 홈쇼핑, 컬쳐웍스, 이머커스 등 사업부별 희망퇴직을 진행했다.
그룹 대부분의 계열사들이 업황 악화에 직격탄을 맞은 상황에서 신용평가업계는 롯데그룹을 주요 점검 대상으로 등재하고 면밀히 모니터링을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롯데케미칼이 일부 공모 회사채의 사채관리계약 내 재무특약을 준수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했고 이달 사채권자 집회를 열어 특약 일부를 조정하기로 하면서 위기설에 불이 붙었다.
그룹은 롯데케미칼은 사채권자 집회를 앞두고 "최근 석유화학 업황 침체로 인한 롯데케미칼의 수익성 저하로 인해 발생한 상황이며, 회사는 충분한 유동성을 확보하고 있어 회사채 원리금 상환에는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그 근거로 롯데케미칼의 활용 가능한 보유예금(2조원)과 그룹 차원에서 보유한 주식(약 37조5000억원)과 부동산(약 56조원) 등을 들었다.
사실 롯데 측이 밝힌 현금성 자산 외에 주식과 부동산 자산들을 유동성 위기가 발발했을 때 당장 동원할 수 있는 규모로 보긴 어렵다. 비영업용 자산, 즉 언제든 팔아도 사업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 자산들뿐 아니라 현재 사업을 계속 진행하기 위해 보유한 영업용 자산들이 포함돼 있다면 56조원 규모란 부동산 자산의 현금화 가능성은 따져봐야 한다. 또 현재 국내 부동산 시장 상황을 고려하면 실제 매각에 나서 유의미한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진 미지수란 평가다.
투자은행(IB) 업계 한 관계자는 "롯데그룹이 사업적, 재무적으로 위기가 닥칠 수 있단 점은 상당수의 투자자들이 인지하고 있던 내용"이라며 "단순히 보유한 자산이 수십조원에 달한다고 해서 당장 동원할 수 있는 현금이 많은 것은 아니기 때문에, (유동성 위기가 현실화 할 경우) 실제 대응할 수 있는 자산은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위기설'까지 퍼진 기업이 아니더라도 국내 대기업들은 유동성 확보를 위해 사활을 걸고 있다. 글로벌 경기 침체가 장기화하면서 경영 불확실성이 확대한 데 따른 선제적 조치이다.
올해 들어 포트폴리오 리밸런싱을 추진하고 있는 SK그룹은 최근 SK㈜는 자회사 SK스페셜티 매각을 위해 사모펀드(PEF) 운용사 한앤컴퍼니를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다. CJ그룹은 CJ제일제당의 모태 사업인 바이오 사업 매각을 위해 주관사(모건스탠리)를 선정하고 원매자를 찾고 있다.
물론 롯데그룹 역시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그룹 전반에 걸쳐 자산 효율화 작업 및 수익성 중심 경영을 진행한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롯데케미칼은 말레이시아 합성고무 생산법인 LUSR의 청산을 결정했고, 해외 자회사 지분을 활용해 1조3000억원의 확보를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다만 케미칼 재무구조 개선의 핵심으로 꼽히는 말레이시아(타이탄) 사업 매각은 검토만 됐을뿐 여전히 성과를 거두진 못한 상황이다. 롯데건설 역시 금융권 자금조달에는 성공했으나 근본적인 재무개선을 이뤄냈다고 보긴 어렵다. 케미칼, 건설 등 이벤트에 대응하기 위한 산발적인 대책 마련 외에 그룹차원에서 위기설을 잠재우기 위한 근원적인 방향성이 제시되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신동빈 회장은 최근 수년 간 인사를 통해 과거 외형을 확장해 온 핵심 인사들에게 그룹의 외형을 줄이고 체질을 개선하란 임무를 부여했다. 실제로 이훈기 롯데케미칼 사장은 롯데지주에서 케미칼로 자리를 옮기며 사업 슬림화에 특명이 주어진 것으로 알려졌고, 이영구 식품군 총괄 대표 역시 부회장으로 승진하며 사업 포트폴리오 조정이란 과제가 주어졌다.
다만 그룹 전반에 걸친 구조조정은 아직 가시화한 성과가 나오진 않았단 지적도 나온다.
그룹차원의 구조조정은 사실상 신유열 롯데지주 전무의 승계작업의 일환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신 전무 역시 사업적 능력을 검증받고, 재무 관리에서 뚜렷한 성과를 증명하기까진 시일이 더 필요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그룹차원의 방향성이 투자자들에게 명확히 인식된다면 해마다 반복하는 롯데그룹의 위기설이 또 한번의 해프닝으로 인식될 수 있다. 그러나 재무구조 개선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다른 대기업들과 달리, 구조조정의 구심점이 될 조직과 핵심인사를 특정할 수 없다는 점은 투자자들이 롯데그룹의 위기설을 가볍게 넘길 수만은 없는 요인으로 꼽히기도 한다.
롯데그룹 계열사의 CEO들 상당수는 올해 임기 만료가 예정돼 있다. 최고위급 인사가 다소 빨라질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가운데, 연말 위기설의 중심에 또다시 선 신동빈 회장이 인사를 통해 어떤 방향성을 제시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